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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덮인 들녘 빨갛게 벗은 발로...                    이용분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니 문득 아주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 여름이나 겨울방학이 되면 종종 찾아 가곤 했던 깊은 시골 나의 외가댁 생각이 떠올랐다. 그곳은 대전근교 시골인데 그때만 해도 버스도 없고 호남선 완행열차가 하루에 한두 번은 오갔는지 교통이 아주 불편하였다.

대전 큰 시장에서 동태 두어 마리를 사서 새끼줄에 매단 것을 달랑달랑 들고 작은 외삼촌을 따라 대전서부터 큰 행길로 몇 십리인지 모를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가야 되었다. 가수원이라는 곳에서는 큰 행길을 벗어나 넓디넓은 야산(野山)을 한참을 가노라면 여름철이면 오렌지색 점박이 나리꽃이 여기저기 곱게 피어 있었다.

구부라진 길을 한참을 더 가서 드디어 나지막한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저 아래 보이는 마을에 멀리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 있는 조가비 같은 초가집들...

땅거미가 낮게 지는 저녁 무렵 집집마다 저녁밥을 짓는 연기에 자욱하게 둘러 쌓인 초가마을 풍경이 얼마나 정겨운지 한 다름에 달려가 그 곳에 얼른 안기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한 여름 큰 외삼촌네가 모를 심는 날이면 넓은 마당에 큰 멍석을 두어 장 잇대어 깐다. 품아시 모를 심으로 온 친인척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죽 둘러 앉아 너도 나도 한죽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갸름하고 중간 크기 바가지에 콩나물 호박나물 가지나물 열무김치등 온갖 나물을 보리밥에 올려놓고 고추장과 들기름을 듬뿍 치고 쓱쓱 비벼서 왁자지껄 점심을 먹던 정겨운 풍경.

무더운 여름 날 암소가 뒷산 감나무 밑에서 송아지를 낳았다. 큰 외삼촌이 혀를 끌끌 차며 소가 더운데서 얼마나 고생을 했겠냐며 두 팔안에 번쩍 들어서 안고 들어 올때 본 간난 송아지의 초롱초롱 했던 눈망울, 헛간 잿더미 위에 용변을 보고 재를 덮는 일. 이런 모든 것들이 도회지에 살던 나에게는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 큰외삼촌 내외간은 누가 못 낳았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자손이 없었다. 마을에서 큰 외삼촌을 제치거나 그의 말에 감히 거역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기골이 장대하고 눈이 부리부리하게 아주 컸다. '눈이 큰사람이 겁이 많다'는 말도 헛말인 것처럼 그 동리에서는 힘이 아주 세고 말발에 영(令)이 서는 어른이었던 것 같았다.

종가집인데다 가세가 비교적 넉넉했던 큰외삼촌은 정 반대로 아들딸들을 줄줄이 낳아서 아이가 많은 작은 외삼촌네 아이들 중에 인물도 제일 좋고 잘난 큰아들을 양자로 들였다.

비록 시골이지만 아주 어렸을 때 데려다 애지중지 키우면서 공부를 시키고 서울로 보내서 명문대학까지 공부를 시켰지만 자기 자신의 아이를 가져 보고자 하는 굴뚝같은 마음은 끝끝내 접지는 못 하였다.

그 내외분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다정한 부부였다. 요새 세상 같으면 불임치료라도 받아서 누가 문제인지 진찰도 받고 어찌 해 보기도 했으련만 그 시절엔 꿈도 꿀 수 없는 일, 그 문제는 오직 천지신명만이 알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삼신의 영역이었다.

여동생의 아이인 우리가 방학에 놀러 가면은 언제나 극진히 칙사 대접을 하여 따로 먹는 밥상이라도
"어디, 우리 서울 큰 손님들 뭐 자실 반찬이나 있나 ? ^^"

하고 부리부리 황소같이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우리 밥상을 넌지시 넘겨다 보며
'맛있는 것 좀 많이 해주라'고 외숙모에게 당부하곤 하였다.

어떤 날은 동네에서 잡은 소고기를 샀다면서 그 시절 시골에선 정말 귀한 빨간 쇠고기 덩어리를 한칼 새끼줄에 매달아서 쪽 대문 안에 들고 오면서
"우리 서울 귀염둥이들 고기 국 끓여 주라고 사왔지 허허허 "
밤이면 마을에 마실을 갔다 돌아오면은 꼭
"우리 귀한 손님한테 무어 밤참 대접을 해야 될 텐데... "
말끝마다 우리 귀한... 을 붙이며 은근히 채근을 한다.

큰외숙모께서 바느질하던 손을 멈추고 뒤꼍 단지 속에 꽁꽁 숨겨 두었던 얼음처럼 차디찬 연시를 꺼내서 나무 쟁반에 바쳐다 준다. 한 겨울 따뜻한 구들방에 앉아서 먹던 말랑말랑 달콤한 그 맛이 얼마나 좋던지 내 평생 그렇게 맛있는 연시는 먹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바로 뒤 곁에 고염나무가 있어서 고염 삭힌 것도 먹어 보곤 했는데 그때는 그런 게 모두 아주 귀한 시절이었다.

또 같은 동리에 외가쪽 나의 친정어머니의 사촌 남동생들이 많아서 연신 서로 초대를 했다. 방바닥에 진흙을 곱게 바르고 그 위에 들기름으로 길을 들인 지금으로 보면 진짜 웰빙 황토진흙 방에 살고 있었다.그 시절부터 황토 흙의 효능이 알려져 있었던건지 지금 생각 해 보면 아주 신기하다.

그중 넷째집의 동생 부인인 한 아주머니는 언제나 우리를 초대해서 마음이 더 따뜻하고 정성스레 밥을 해 주곤 했다. 우거지 국에 하다못해 며루치 같은 조미료라던가 아무것도 넣지 않고 쌀뜨물로만 끓인 된장국도 너무나 구수하고 맛이 좋았다. 우리는 손님이라고 귀한 하얀 쌀밥을 수북하게 담아 주고 자기들은 대용식인 고구마를 쪄서 한옆에서 먹고는 했다. 사실 우리가 진짜 먹고 싶은 건 겉껍질 색갈이 빨갛면서 속이 샛노랗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고구마였었는데 그들이 그 마음을 알리는 없었으리라.

뒷산 밑에 깊게 파놓은 토굴 안에 고구마나 무를 저장했는데 깊어서 그 안에 들어갔다 나오려 면은 누군가가 꼭 손을 잡아 끌어 내 주어야 되었다. 아주 신기한 경험인데 이곳에 저장한 고구마는 아삭아삭 맛이 아주 달고 알밤보다 더 맛이 좋은 것 같았다. 좀 머물다 보면 좀 무료 해 하는 우리를 위해 아주머니는

"우리 세뱅이 잡으러 안 갈래 " 하고 잔뜩 우리의 신명을 돋운다. 겨울에 버선을 벗어 빨갛게 언 맨발로 헌 얼개미 체를 들고 앞장을 서서 간다. 들녘 논 한가운데 있는 꽁꽁 얼어붙은 조그만 둠벙의 어름을 깨고 고인 어름 물을 헌 이남박으로 모두 다 혼자서 퍼 내다시피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세뱅이라고 민물새우인 조금은 검회색 빛이 도는 새우와 한겨울에 잠을 자다가 뜻밖에 청천벽력 날벼락을 맞고 놀라서 펄떡거리는 붕어와 미꾸라지도 잡혔다. 물속에 젖은 지푸라기 속에 몸을 숨긴 '날도래라'는 이상한 벌레와 '장구아비'라는 벌레도 생전 처음 보았다.

징그러운 벌레는 얼른 모두 골라내어 버린다. 이것들을 마을 논 한가운데 있는 바가지로 푸는 나지막한 샘물터로 가져간다. 샘물이 넘쳐서 돌 사이로 졸졸 흐르는 조금은 김이 나고 따뜻한 물에 흘려서 티검불을 가려내고 깨끗이 행군다. 무를 나박하게 썰고 고추장을 풀어 넣는다. 우리 모두도 함께 부엌 황토부뚜막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볏짚으로 아궁이에 '후후' 불을 지펴 끓이면 빨갛게 색이 변해 시원하고 담백하던 세뱅이 무국은 아주 일품이었다.

눈 두덩이가 약간은 두터워서 눈이 좀 작고 피부는 하얀데 조금은 빛깔이 낡은 검정 무명치마에 흰저고리를 입고 있었던 그 아주머니의 소박하고 따뜻한 얼굴에 띄운 웃음을 영 잊혀지지 않는다.

그 시절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후라 세상살이가 너무 궁핍하고 어려운 시절이었다. 모처럼 서울에서 다니러 온 나의 바로 밑 두 살 터울의 남동생과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한 겨울에 그런 힘든 재미거리를 만들어 하였던 것 같다. 그 아주머니는 육이오 때 아저씨가 북으로 납치를 당해서 행방불명이 되어 평생을 홀로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수절하신 순정형 부인이었다.

평생은 물론 어릴 때에도 한번도 시골에 산적이 없었던 나로서는 유일하게 시골의 따뜻한 정취와 서정적인 정서를 심어 주었던 시절이다. 큰 외삼촌과 그 아주머니에 대한 생각은 나이가 잔뜩 먹어 버린 지금도 한 폭의 예쁘고 따뜻한 동화를 보는 듯 나의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영상으로 남아 있어서 언제나 가슴 한편이 따뜻하다.

그 후 그곳은 개발에 밀려 국내 굴지의 대 기업체가 들어오고 마을은 뿔뿔이 헤어 졌다는 말을 들었다. 결혼을 하고는 한번도 가볼 기회가 없었던 나는 믿어지지 않는 현실로 그 곳은 내 마음속에 어린시절의 영원한 고향처럼 자리를 잡은 채 잊을 수도 떠날 수도 없다.

('月刊文學 5월호 수필'에 게재)







  • ?
    이용분 2011.05.10 16:23
    '눈덮인 들녘 빨갛게 벗은 발로...'

    이 수필을 '한국문인협회' 발간 '월간문학'(月刊文學) 에 기고한 바
    채택이 되어 5월호에 실리게 되었슴을 알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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