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에 꽃씨를 심어 보자. 청초 세월은 걷잡을 새 없이 흘러간다.여기 저기 피어있는 봄꽃들에게 혼을 빼았기다 보니 세월의 흐름을 잊었다. 이틀전 봄비답지 않게 내려치는 비바람에 자주색 모란이 미처 펴 보지도 못하고 뚝뚝 떨어져 버렸다. 유리창 넘어 우연히 눈길을 돌려서 본 연초록색 풍경들, 새순이 돋아 난 커다란 나무들이 이미 봄은 물러갔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다. 이제 봄이 좀 깊어지면 뜨락 한 귀퉁이에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고 받아 두었던 꽃 씨앗을뿌리고 물을 주며 이 자그만 생명이 꽃눈을 틔우고 자라나는 모양을 보며 즐겼을 계절이다. 언제인가는 심으리라고 생각을 하고 기회만 닿으면 꽃씨를 받아서는 꼭 신문지나 종이에 싸서 보관을 하곤 했다. 밥을 사먹으러 가던 식당 길섶에 피어 있던 빨간 접시 꽃 씨앗 봉지와 뒷쪽에 있는 돌마 초등학교에서 받아둔 색색이 채송화 씨앗을 비롯 몇 년째 책장 위에서 잠을 자던 여러가지 꽃 씨앗도 해묵으면 소용이 안닿으니 이제는 버리고 없다. 습관적으로 예하던대로 꽃만 보면 받아 놓곤 하던 꽃씨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부터 공연한 헛일이 되곤 하였기 때문이다. 물건을 산 뒤에 써비스로 받은 채송화 꽃씨 나팔꽃 씨도 있었지만 이들도 이제는 해가 묵어서 싹이 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씨앗은 공기가 전연 통하지 않는 비닐봉지에 넣어서 팔면 이 꽃씨는 이미 질식을 해서 생명력이 없어졌을 것이다. 꽃의 생김새를 알리기 위해 예쁜 사진이 찍힌 이런 숨막히는 봉투가 오히려 꽃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된다는 걸 알고도 하는지를 모를 일이다.외손주 아이가 놀러 왔다가 학교에서 가저 오라고 했다면서 꽃씨를 달란다. 앗차 하여 버린 꽃씨를 생각하며 우연히 현관 신장 서랍에 보관했던 하와이 무궁화 꽃이 던가, 큰 행길가에 피어 있던 여러가지 색갈의 꽃송이가 아주 큰 꽃씨를 받아 보관 했던 게 마침 있어 챙겨 주었다. 요즘 학교에서도 씨앗심기 공부를 시키는 것에 대해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쁘기도 하다. 요즘이야 꽃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보통 농사보다는 수입이 더 좋은 작물로 꽃씨를 뿌려 어린 묘목을 만든다. 꽃봉오리가 생겨 거의 피게 될 즈음에 시장에 내다 파는 걸 화분이나 마당에 심어 가꾸기만 하면 되는 편리한 세상이 되어 있다. 예전에는 이웃집에 피는 꽃을 눈여겨보아 두거나 길을 지나다가도 보이기만 하면 소중하게 꽃씨를 받아다 두곤 했다. 봄이 오면 기다렸다가 뿌려서 싹이 트고 좀 크게 되면 비 오는 날에는 비 맞는 걸 개의치 않고 서로 꽃 모종을 바꾸어 심으며 서로 이웃의 애뜻한 정을 나누었다. 낯선 땅에 옮겨 심은 과꽃이나 봉숭아 채송화 꽃모종들이 시들시들 죽을 듯이 몸살을 하면 특별히 물을 더 훔뻑 준다. 신문지로 잘 씌워 그늘을 만들어 주고 몇 일간 마음을 조려가면서 아픈 아기 돌보듯이 하면 기사회생 살아나는 꽃을 보며 그 짜릿한 기쁨도 맛을 보았었건만... 어떤 꽃은 옮겨 심으면 그냥 죽어 버리는 꽃도 있어서 모종을 하기가 힘이 드는 꽃도 있었다. 아마 양귀비꽃이 그러하지 않았나 하고 기억이 된다. 꽃을 좋아하는 친구라면 불원천리 꽃모종을 날라서 가져다주기도 했었지만 이제는 이런 미풍양속도 우리들 추억속의 이야기거리로 남아 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잊어버리고 잊혀져 버린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다 키워 놓은 꽃들만 보고 자라는 아이들. 꽃이 지면 좀 추하기는 하지만 씨앗이 영그는 과정도 보지도 않고 요즘은 그냥 화분째 쏟아 버리고 만다. 모든 게 빨리빨리 성급하기들만 한게 요즈음 들어 차차 부각되는 문제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부터 멀어진 살가운 이웃과 더불어 잃어버린 것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 편리함이라는 게 모두 좋은 것은 아니련만 현대인들은 신이 내린 이런 자연 속에 작은 기쁨을 알지도 못하고 누려 보지도 못한다. 어딘가에 커다란 행복이 뭉텅이로 있는가 해서 오늘도 너나없이 황량한 길거리에서 오염된 공기를 잔뜩 들여 마시며 바쁜 일상에서 종종 걸음으로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다. 이제 무엇인가 잊혀진게 있는 듯 마음이 허전한 것은 바로 꽃씨 뿌리는 일이 아닐까... 07년 5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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