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렸던 시절이 그립다.

by 이용분 posted Sep 0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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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렸던 시절이 그립다.                      청초  
        
    내가 요즘 다니는 골다공 치료 병원은 버스를 타고 한 20분은 가야 된다. 그간 아파 온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전에 다니던 병원에 몇 년을 두고 다녀도 영 낫지를 않았다. 하루는 약국에서 어떤 아주머니로 부터 이 병원을 알게 되어 찾아 가게 되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은 그후 잦아들듯 나아졌다.

    처음에 다닐 적에는 직접 한번에 가는 버스가 있었다. 세달 간격으로 가게 되니 어느 날 아무리 기다려도 그 버스가 오지를 않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직선 버스가 없어졌다 한다. 나는 버스타기에 서툴다.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하차 한 후 그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30분 안에 갈아타면 다시 요금을 내지 않고 환승이 되는 요즘 체계를 몰라 무조건 기다린 것이다.

    어제만 해도 우선 2-1번 버스를 탔다. 교통카드를 댔는데 엉뚱한 곳에, 이를테면 사람 이마박 같은데 댔더니 '삑삑' 무어라고 이 기계가 말을 한다. 버스 기사가 카드를 다시 대란다. 다시 댔는데 얼마가 찍혔는지 순간 버스는 움직이고 정신이 아뜩하여 확인을 못하겠다. 현금이라면 내가 똑똑하게 세어서 내면 될 일이지만 기계가 하는 노릇을 어찌 알겠는가. 될 대로 되겠지. 잘못하면 이제는 늙어서 제법 할머니 측에 끼게 된 내 외모에 핀잔이나 맞게 되겠지... 요즘은 사람이 두렵다. 친절한 사람이 드물다.

    승객이 드물어 마침 자리에 앉아 가게 됬다. 어떤 아가씨가 씩씩대며 자기 카드에 1600원이 찍혔다나. 항의 차 버스 뒷쪽에서 앞에 앉은 버스기사한테 온 모양이다. 운전 중인 버스기사와는 대적이 안되겠는지 그냥 꿍얼대다 내려 버린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있어야지. 가는 길에는 그럭저럭 병원에 잘 도착했다.

    평소에는 되게 친절하던 의사가 오늘 따라 불친절하다. 작년 10월부터 일 년여 약을 먹어 온 내 골다공 수치가 사진을 찍어 검사를 해 본 결과 별 차도가 나지 않는단다. 그간 먹은 약의 효과가 헛이라는 결과가 나와서 그런지 약을 바꿔야 된다고 한다. 새 약은 열도 나고 배도 아프고 의사 설명대로라면 진정제를 먹어야 될 정도로 괴롭대나. 받아들이는 내 마음이 얼어서 그런지 그 의사가 무섭기까지 하다. 우선 한 달치만 먹고 한 달 후에 또 오란다.

    그러잖아도 요즘 남편이 약독에 의한 병이 생겨서 약에 대한 공포가 이만저만 아닌 터다. 돌아오는 길. 날씨가 덥다. 오는 버스는 많은데 우리 집 쪽으로 가는 아까 그 버스가 영 오지를 않는다. 감직한 버스를 골라 물어타니 어차피 중간에 갈아타기는 마찬 가지지만 제대로 타긴 했다. 그런데 버스마다 사람얼굴이 다르듯 달라 카드 대기에 또 실수를 했다.

    그럴 때마다 '삑삑' 반응을 한다. 내가 물었다.
    "이렇게 하면 공연히 여러 번 내게 되는 게 아닌가요? ^^"
    보기에 수더분하게 생긴 중년 버스기사다. 궁금한 나는 중간쯤 앉았다가 바로 기사 옆 건너 문간 자리에 옮겨 앉았다.

    "아닙니다. 아무리 다시대도 버스요금은 900원만 냅니다. 어떤 고집이 센 노인들은 아까 탈적에 이미 "삑삑"소리가 났다며 영 막무가내 응하지를 않는단다.
    "정말 노인들 고집은 못 당 합니다"

    내릴 때 카드를 다시 찍어야 되는데 모르고 그냥 내리면 계속 차를 탄게 되나요?"
    "아니요, 아마 1600원 정도 나올 것입니다"

    '아하 아까 그 어떤 아가씨의 항의가 그런 경우로구나...’
    그때 나는 영문도 모르고 버스요금이 그리 올랐나 했었다.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니 우리 나이에는 정말 적응해서 살아 나가기가 힘들어요."
    "맞습니다. 저도 이렇게 차를 몰고 다니지만 일단 차에서 내리면 모르는 거 투성입니다."
    그래도 오늘 사람 냄새가 조금 나는 버스기사를 만난 덕에 이모저모 물을 수 있었다.

    모든 게 다 기계화되고 편리해진 세상이다. 사람이 편리하려고 만들어 놓은 기계에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쫒겨나 소외되고...사람들도 기계처럼 냉냉하고 오불관(吾不關)인심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웬만하면 거의 자가용을 끌고 다닌다. 힘든 세상 물정을 알기나 하는지 어떻든 간에 당장은 편리하고 편하게 살고 있다.  젊을 때 고생과 수많은 역경을 넘으며 산 우리 세대는 어지간하면 참고 옛날 습관을 고수하며 살고 있다. 우리야 말로 옛날 사람이다.

    차라리 사람이 손으로 움직이던 느릿한 세상이 그립기도 하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여서 긍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곳은 어디일까. 얼마전 까지만 해도 집집마다 손수 콩으로 메주를 쑤고 아랫목에 띄워서 장을 담궈 먹던 시절이 있었다. 이런 장독 문화를 멀리하고 빠른 훼스트후드를 즐기다 보니 사람들이 암도 많이 걸리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옛 사람이 살던 요순시절 처럼 느릿한 시절이 그립기 조차 하다.

                                                        201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