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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올 추석 지낸이야기.                          청초

    올 추석은 남편이 편찮음으로 해서 추석차례도 지내지 않기로 정하였다.
    아이들도 아버지 병환중에 전력투구 힘을 쏟아 모두 애를 썼다. 다들 너무 피곤이 겹쳤을 터이니 휴식을 갖기로 했다. 특히 막내는 전주에서 온가족을 데리고 그 복잡한 귀성길을 오기는 여간 신경이 쓰이고 힘들기 때문이다.

    의논 끝에 정해 놓고도 막상 생각을 해보니 작년까지 지냈던 추석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했는지 한편으로는 그립고 눈물겹다. 아이들이 오지 않음으로 해서 남편을 안정되게 집중해서 더 자상하게 돌볼 수는 있겠지...

    "그러면 긴 추석연휴를 어찌 보내지... "
    하는 남편의 말에 그리 하기로 한게 영 마음이 편치 않다. 큰 아들네에게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하게 추석 준비를 해 오도록 했다. 추석에는 음식을 파는 곳이 없을 터이니까.

    그러던 중 뜻하지않게 막내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한참 전 퇴직한 대학교 때 지도교수님댁에 재학시절 같은 연구실 후배들과 함께 추석때 찾아 뵙기로 해서 상경을 하게 됐다고 알린다. 말은 그리 하지만 실은 아버지를 꼭 찾아 뵈려는 깊은 뜻이 내재 되어있다.

    추석 이틀 전날 작은 며느리가 만들어 준 반찬들을 미리 집에 갖다 놓고 부랴부랴 나간다. 밤이 꽤 이슥해서야 내가 따로 부탁한 생수에 몇가지 반찬거리를 사들고 분당집에 돌아 왔다.

    밤이 꽤 늦은 시간이다. 병원에서 퇴원을 한후 처음 보는 부자지간이다. 아버지께 반가운 표시로 얼굴을 비벼대며 이마 양볼에 마구 뽀뽀를 한다. 우리 아이들은 얘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만나면 모두 이런식이다. 막내아들을 본 아버지의 안색이 알아보게 좋아진다.

    다음 날에는 집으로 돌아 갈듯하던 아이가 아버지 곁에 붙어서 마치 어린아이가 된듯 웃음을 'ㅎㅎㅎ' 흘리면서 재롱도 떨고 아버지의 기분이 좋게 만들어 드린다. 아버지의 몸이 회복되는데 큰 보탬이 되겠지...
    조금은 무뚝뚝한 성품인 얘는 제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달라진것 같다.

    해마다 노교수를 찾아 뵈면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남편은 말을 한다. 그 교수는
    몇 해전 부인을 먼저 사별하고 중풍에 걸려 파출부를 두고 사는 형편이란다.

    집에 머무르면서 여기저기 손볼 곳은 없나 찾아 고쳐준다. 막힌 세면대 하수구도 뚫어 주고, 가스렌지 튀김식용 기름이 날아 내려 붙어 끈적대는 부엌 바닥도 퐁퐁을 뿌리고 철사쑤세미로 힘들여 닦아 준다.

    우아 해야만 되는 엄마의 살림살이 찻물 끓이는 주전자가 어째 그리 시커멓게 그울렸느냐 한다. 우리를 데리고 나가 외식도 하고 근처 킴스클럽에서 최신형 멋진 차주전자와 커다란 새 국 냄비를 사 준다. 사실 아이들에게는 자주 돈을 건네 주면서도 막상 내가 바꾸어야 될 이런 자질그레한 그릇들을 사는 데는 망설인다. 물건은 오래 쓰면 바짝 태우기도 하고 낡게 마련이다. 아직 쓸만하니까 그냥 지내오던 것이다. 나는 짐짓 못이기는 척 받기로 했다.

    추석날이다. 큰 아들 내외가 불고기.생선전, 호박전, 천정 부지 비싼 시금치나물에 잡채, 사라다, 조개를 넣어 끓인 미역국등을 힘들게 장만하여 제 차에 잔뜩 싣고 찾아 왔다.
    오랜만에 온 식구 식탁에 둘러 앉아 맛갈스런 점심을 오붓하게 먹을 수 있었다.

    조금 있으니 현관 인터폰이 울린다. 화면을 드려다 보니 웃는 여자들 얼굴이 보인다.
    물색도 없이 추석날 어인 교회사람들이 전도를 나왔나 했다.
    "누구세요" 열고 보니 딸네 가족이다. 모두 오지 말랬는데 이렇게 찾아 오다니...
    손에 무언가 선물꾸러미를 잔뜩 들고 희색이 만면으로 처 들어 온것이다.

    딸도 종가집 맏며느리인터라 추석 봉제사 받들기가 힘들것이다. 이번에는 집에 가서 편히 쉬도록 조처를 했었다. 화곡동 오빠네 집이면 목동에서 지나는 길 오기가 쉽다. 여기는
    분당이니 거슬러 오려면 귀성차량들과 뒤엉켜서 길에서 너무나 힘이 들것 같아 말렸었다.

    그러찮아도 추석에 모이면 나누어 주려고 마을 부녀회에서 물에 깨끗이 씼은 깨로 짠  참기름을 미리 사 놓고 기다리던 터였다. 모이지 않게 되면 공연한 짓을 했었구나 하고 마음을 책하고 있던 참인데 잘 되었다.

    막내아들은 무언가 전선 기구들을 잔뜩 사들고 와서 아버지가 매번 전기료를 아끼려고 화면이 큰 T.V.의 전기코드를 끼었다 뺐다 애를 쓰신다며 쉽게 키고 끄는 소켓을 사다가 방방이 바꾸어 준다. 방마다 비치된 비상벨 밧테리도 바꾸어 주고 긴 잠을 자고있는 시계에도 밧테리를 새로 바꾸어 척척 가게 해 준다. 집안이 원활히 돌게 하는 일을 도맡아 해 준다. 지난 번에는 현관 화장실 비데를 바꾸어 주고 갔었는데...

    막내아들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사니 큰형보다 우리를 자주 돌보지 못하는 걸 자책하는 모양이다. 새삼 아이들은 우리 삶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생각지도 않은 추석모임을 갖게 되었다. 큰 밥상을 두개씩이나 잇대어 놓고 준비 해 온 음식을 차려 놓고 올해도 즐거운 추석을 지낼 수 있었다.

    여전히 앞 발코니에서는 귀뚜라미가 올 추석을 찬미 하듯 '찌릿찌릿"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기예보에서 서울에서는 둥근 보름달을 볼수 있다고 했는데...

    빨리 큰 앞창가로 나가서 앞동산 나무사이를 뚫고 솟아 오르는 둥근 보름달을 쳐다 보며 우리 온가족의 건강과 영원한 행복을 빌어야 하겠다.


                                                          2011.9.13 추석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