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꽃 향기

by 이용분 posted Sep 2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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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꽃 향기                                  청초

    전에 없이 무덥던 늦여름 더위는 힘없이 물러갔다. 하늘은 끝 모르게 드높고 하얀뭉게
    구름이 두둥실 떠간다. 이제는 초가을답게 날씨는 제법 쌀쌀하다. 아파트 앞뜰에 하얀
    취나물꽃이 한가로히 초가을바람에 한들거린다.

    오랜 만에 핀 난초향이 내 서재에 가득하다. 이 꽃은 하루에 몇 번씩 향기를 '퐁퐁'  
    품어 내는 모양인지 유난히 짙은 향이 날 때가 있다. 지금은 문을 닫아 놓았던  터라
    내 서재가 온통 짙은 향으로 채워 있다. 이 꽃만을 피우려고 밤낮으로 애를 태웠다면
    못할 노릇일 게다.

    발코니의 50여개 있는 화분 중에는 여러 개의 양란도 있다. 그중 사시사철 꽃을
    피우는 제라늄이 제일 상석을 차지하고 있다. 처음에 사올 적에는 물론 꽃이
    피었기에 사왔을 것이다.

    언제나 피어 있으려니 하던 기대와는 다르게 어떤 것은 사올 때 피고는 꽃 보기는
    감감 무소식이다. 앞으로도 언제 필지 모르는 이 꽃들을 남편은 매주 정성스레
    물을 주고 보살피니 어느 날 이렇게 영화로운 날이 찾아 온 것이다.

    단 한 뼘의 땅이 없는 아파트라 발코니에서 그는 꽃을 키우는 것으로 온갖 시름을
    달랜다. 아름다운 꽃도 생물인지라 꽃이 시들면 진 꽃들이 지저분하게 매달려 있다.
    떡잎도 지니 수시로 그를 따주지 않으면 멀쩡한 나무도 주접이 든듯 생기가 없어
    보인다. 이따끔 나는 주로 이 떡잎을 따주는 걸로 그나마 꽃을 키우는데 일조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어떤 관엽수는 잎이 넓적하니 아주 크다. 달려 있는 많은 이파리를 유지하려면은 시들
    시들 기운이 모자라 보여 하는 수 없이 묵은 순서대로 따 주곤 한다. 그 대표적인 식물이
    몬스텔라다. 우리 집 몬스텔라는 유난히 잎이 크다.

    새잎이 돋아나면서 마치 간난아기가 손가락 펴듯이 오그렸던 이파리를 아무도 모르는
    밤 사이 서서히 펴나는 정경을 보는 것도 신비한 일이다. 답답하다고 조금이라도 인위적
    으로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그 잎은 영 못쓰게 망가져 버린다.마치 피려고 드는 장미 꽃
    송이를 억지로 열면 꽃이 기형이 되는것과 같은 이치다.

    언제인가 미국에 여행을 가는 길에 하와이에 들러 간적이 있다. 그곳 공항 곳곳에
    이 식물을 심어 놓아 나직하게 손질을 해 놓은걸 본적이 있다. 우리 집 몬스텔라는
    전에 살던 집 우리 뒷집에 세 들어 살던 어떤 노인 부부가 이사를 가면서 무겁다고
    우리 집에 선물로 주고 간 것이다. 나는 공짜로 얻기가 미안 음료수 두어 병을 대신
    사서 그 고마움을 표하였다.

    사올 때 작은 화분에 심긴 채 양지 바른 곳인 키가 큰 피닉스 큰 화분 흙위에 올려
    두었더니 영 크지도 꽃이 피지도 않는 붉은 이파리 사랑초를 스트로폼 상자에
    이사를 시켰다. 민들레 꽃 뿌리를 밀치고 심어 주었다. 한동안 도무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비실비실 거려서 이 꽃은 안될 모양이다 포기를 했었다.

    요즘 그 흙의 영양을 모두 저 혼자 빨아들이며 크는 모양이다. 그 이파리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며 화토장 만큼 커 있어서 우리들이 감탄을 낳게 한다. 이파리 색깔도
    짙은 자주 색깔에 꽃도 연분홍색 빛으로 피어나 가히 장관이다. 이 꽃은  전에
    북유럽여행을 갔을 때 작곡가 '그리그 기념관' 유리창 가에 작은 화분에 심겨 놓여
    있었다. 온세계에 퍼져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관음죽 화분도 몇 개가 있다. 오래된 것은 이십여 년이 되어 우리 집 역사와 함께
    한다. 너무 크니 화분 흙 갈이도 쉽지 않아 보약 거름을 주는 것으로 명맥을 이어 간다.
    지난여름 모란시장에서 사온 들깻묵을 쌀뜨물에 썩혀서 그 물을 희석을 해서 주었다.
    여름날 그 썩은 거름이 풍기던 역한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던지... 무엇이든 노력과
    큰 댓가를 지불하지 않고 얻어 지는 결과는 없는 법이다.

    요즘은 그 귀뚜라미라는 녀석이 오며 가며 그 나무 아래 터전을 잡고 살면서
    그의 가을날들을 낭낭 하게 연주하며 지내고 있다. 어떤 이파리는 쭉쭉 뻗기도 하고
    낭창하고 멋들어지게 늘어진 좁고 기다란 난잎 사이에 연갈색 난 꽃이 고상하게
    피어났다. 이제 가을이 문턱에 닿았으니 귀뚜라미가 우리 집에서 노래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올 가을은 고상하게 핀 동양란 향기와 낭낭하게 울어 대는 귀뚜라미 소리로
    어느 해 보다 생동감 있고 화려한 가을을 마지하고 있다.                                                                                                                                                                                         2011.9.24


                                       (관음죽)


                                       (제라늄)


                                       (알로카시아)


                                    (사랑초와 민들레)


                                       (몬스텔라)


                                       (피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