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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귀뚜라미가 아주 손톱만금 조그매?” 갑자기 남편이 묻는다. “응, 왜 귀뚜라미를 보았어요.” “응, 아까 발코니 앞 걸상에 앉아 있는데 웬 조그맣고 까만 게 화분 뒤에서 기어 나오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요. 어떻게 했어요.?” 나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 되어 다급하게 되물었다. 그녀석이 낮에는 잘 나다니지 않는데 답답 했나... 아니면 우리를 친하게 생각이 들었나... 그는 벌레를 아주 싫어해서 당장에 밟아 버리거나 어떻게 했을까봐 잠시인데도 조급증이 앞 선다. 우리가 신혼초 큰아들 찬진이를 낳아서 아랫목 이불위에 뉘어 놓고 애지중지, 저 귀한 우리 아기를 무얼 먹여 키우나 맘속으로 전전긍긍 조바심을 하던 시절이었다. 하루는 벽에 걸린 하얀광목천 옷가리게 위에 커다란 신바리(일명 돈벌레) 한마리가 기어 다니다가 문득 멈춰 섰다. 이놈은 아주 재빠르다. 내가 깜짝 놀라서 “어마 저 벌레 봐” 했더니 남편은 어디서 그렇게도 잽싸게 파리채를 찾아 들고 와서는 힘껏 내리쳤다. 그 벌래가 어찌 됐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그냥 살짝 치고 떨어지면 다시 확인 사살을 하면 될 일을 단칼에 묵사발이 되게 쳐 버렸다.그 벌레가 싼 오줌이 아기 피부에 닿으면 부어오르고 큰일이 난다하여 그리 한 것이다. 그 후로 차차 알게 된 건데 그는 되게 겁이 많다. 어쩌다 안방에서 벌레가 기어 다니면 아주 질색을 하여 멀리 저희들 방에 있는 아이들을 그연히 불러서 잡게 하곤 했다. 대단한 양면성을 가진 터라 귀뚜라미의 생사가 경각에 달렸다는 생각이 펏떡 들었다. “그래서 스리퍼 앞을 쳐 들고...” “그래서 밟아 버렸어요?” 말도 채 끝나기 전에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튀어 오를까봐 스리퍼 앞 굼치를 쳐들었더니 이 녀석이 잠간 쳐다 보는듯 하더니 어찌도 눈치가 빠른지 얼른 화분 뒤에 숨더라고,“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보다 조금 큰 귀뚜라미를 한 마리 더 본 것 같애. 저편에서...” 하는 게 아닌가. “아니야. 그 놈이 그놈이야” 마침 아버지의 치료 날에 맞춰 병원에 함께 가려고 와 있던 딸 남이가 옆에서 거든다. 우리는 다 함께 “하하하 그놈이 그놈이야" 하며 유쾌하게 웃었다. 정말 한 마리가 더 있는 걸까. 암놈이겠지, 암놈이 더 크니까. 알 수가 없다. 암놈은 울지도 않는다니까. 다시 미궁이다. 남편이 아프던 날로 부터 시작 우리 세아이들과 함께 남편이 잘 났기를 간절히 바라며 관심을 쏟아오던 터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우내 연주 활동을 해온 녀석이다. 드디어 남편의 관심 속에도 뛰어 들었다. 오늘은 축축하게 가을비도 내리고 을씨년스런 날씨다. 어째 어깨를 움추러 들게 한다. 밤이 되었다. 귀뚜라미가 울기는 하는지 갑자기 궁금하여 내다보았다. 울음소리가 어째 작은 소리로 속삭이듯 시원찮다. 귀 기울여 보니 오늘은 발코니 중앙부분 몬스텔라 화분 뒤에서 자그마한 소리로 ‘찌릿찌릿‘ 울고 있다. 마음속으로 나는 빌었다. 이번 가을이여 부디 천천히 오게 하소서. 우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위하여 우리의 귀뚜라미가 좀 더 오래 아름다운 이 가을을 노래 할 수 있도록... 2011.9.29 ![]() |

2011.09.30 01:09
귀뚜라미 이야기(세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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