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길 / 이기철"-
산은 비를 맞아도 천년 그리매 찬연하다
바람이 옷자락을 당겨 굽은 산길이 쉬워지면
바닥으로만 흘러 가장 낮은 데를 채우는 물의 평등을
산상에서 비로소 눈부시게 바라본다
내 고단한 발길 비웃던 새들은 어언 등선(登仙)했는지
천의 골짜기에는 어욱새에 둥치 빼앗긴
소나무의 푸름만 수해(樹海)가 되어 출렁인다
몸은 제 아픈 곳 찾아 아직도 발 언저리에서 칭얼대는데
몸을 버리고 먼저 간 마음은 가시길에서도 상처가 없다
땅에 뿌리 대지 않고도 꽃피워 세상 밝히는 연꽃처럼
자주 끊기는 햇살이 비단향나무 잎들을 더욱 반짝이게 한다
말해다오
나무는 언제 잠들고 언제 잠 깨는지
새들은 언제 울고 언제 둥지 트는지를
나는 아무래도 천상으론 갈 수 없어
새는 하늘을 날고 나는 지상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