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을 스러지는 그 뒤로 / 서정윤"-
산 뒤로 노을이
아직 해가 남았다고 말할 때
나무들은 점점 검은 눈으로 살아나고
허무한 바람소리 백야처럼
능선만 선명하게
하늘과 다른, 땅을 표시한다.
고통 속에서만 꽃은 피어난다.
사랑 또한 고통으로 해방될 수 있음을
무수히 자신을 찢으며 깨달아가는 것이다.
노을 쓰러지는 그 뒤로
바람마저 저지나가 버리는 내 마음의 간이역에는
아직도 기다리는 엽서 사연들이
오래된 낙엽으로 밟히고
먼저 잠든 자의 표정에서
내 슬픈 방황 먼 흐름의 물길을 찾는다.
창에 비치는 풍경이 눈앞에서 맴돌고
긴 흔들림에 영혼이 지쳐
내 속의 장미 시들어 가시만 남는다.
귀가를 서두르며 나는
스러지는 노을, 그 뒤로 따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