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콧물감기에 걸렸다. 가만히 있는 데도 공연히 고장 난 수도꼭지 모양 콧물이 줄줄 멈추지 않는다.그런대로 이번 겨울은 잘 지냈는가 싶었는데 겨울도 다 지난듯한 이 시기에 감기란 놈이 스며 든것이다. 어떤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었는 데 그중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는 통에 바람을 맞고 돌아와서 울컥 심사가 솟고 스트레스가 쌓인 결과 인것 같다. 아무튼 별로 춥지도 않은 날씨에 바로 감기기운이 들었으니까. 나이를 먹으면 참을 성도 없어지는지... 스트레스도 병을 만든다는 이론이 설득력이 있다. 콧물도 그렇지만 우선 밥맛이 뚝 떨어 졌다. 나의 남편은 삼식님이다. 보통 남편이 집에서 하루 한 끼만 먹으면 일식님. 두 번 먹으면 이식씨, 세끼를 다 먹으면 삼식 놈이라 한단다. 언제부터 그런 우스게 말이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남편은 세끼를 다 먹어도 나는 삼식님이다. 그가 중병을 치루고 나서는 입맛도 없는데다 고기를 못 먹으니 우리 집 식단은 항상 푸른 초원이다. 아침저녁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매번 점심이 더 문제다. 편하기로 말하면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되겠지만 라면도 공해식품이라는 인식이 내 머릿속에 각인 되어 있어 되도록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매일 도시락을 싸야만 되었다. 보리 혼식에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했지만 소세이지를 절대 싸주지를 않았다. 계란말이나 두부지짐 조린 것 잔며루치 검정콩조린 것등 다른 것들을 번갈아 싸 주었다. 소세이지로 반찬을 해 주면 조리하기가 아주 쉬웠겠지만 나는 그 쉬운 방법을 피하였다. 큰 아들아이는 고등하교 시절 그 당시 모 체육회장의 아들과 같은 반 짝이 되었는데 매일 고기 반찬을 싸지고 와서 우리 아이의 반찬과 맞 바꾸어 먹는다고 하였다. 고기도 매일 먹으면 맛이 없는 법이다. 아이들은 그 시절엔 이해를 못했을 것이다. 엄마가 왜 그 흔한 소세이지를 싸주지 않는지를... 이제 성인이 된 그들이 엄마의 그 깊었던 뜻을 이해나 할려나... 그 애들은 어렸을 때 못 먹은 그 포원을 풀기 위해 더 사먹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점심때만 되면 무얼 해 먹을까 고민을 하다가 궁여지책으로 김치국 수제비를 해 먹기로 했다. 먹다 남은 김치도 없애고 그 매콤 새콤한 김칫국에 며루치를 넣고 끓이다가 콩나물을 한웅큼쯤 넣고 끓이면 아주 시원한 김칫국이 되는 데 거기에 밀가루 수제비를 떼어 넣는다. 파 마늘은 필수 맨 나중에 참기름을 한수푼 쯤치면 향긋한 김치수제비가 되니 비교적 조리 방법도 편하다. 생각하면 어렸을 때 어머니는 자주 이 김칫국을 끓여 주시곤 했다. 이게 충청도식 음식인 모양이다. 언제인가 충남옥천의 정지용 생가를 방문했을 때 어느 민속 음식점에서 이와 맛이 똑 같은 김칫국을 맛보면서 ‘아. 이건 우리 엄마가 끓여주시던 그 맛인데...’ 하면서 잠시 어머니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었다. 어제는 어제이고 오늘 점심은 또 어찌할까... 다시 생각나는 게 그 김치 수제비 국이다. 그게 제일 입맛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맛이 까다롭지 않은 나의 삼식님도 찬성이다. 사실 그는 내가 만드는 음식은 무엇이나 까탈을 부리지 않고 잘 자신다. 역대 대통령 중에 전두환 대통령은 깻잎을 좋아해서 대통령이 되기 전 이순자가 동료 군인 마누라들과 어울려 늦도록 화투를 치다가 남편이 퇴근할 무렵이면 깻잎장아찌를 얻어 가지고 얼씨구 돌아갔다는 후문이 돌았다. 언제인가 T.V.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먹던 음식이 무엇인가 하는 프로들을 그 당시 청와대 주방장들이 나와서 이야기 하는걸 본적이 있다. 어떤 이는 무청 된장국을 좋아 하던 이. 며루치 우린 맑은 국물에 김치만 숭숭썰어 고명으로 올린 잔치 국수를 즐기던 이, 김영삼 대통령은 칼국수를 좋아 했던지 방문하는 어떤 높은 각료들에게라도 칼국수를 대접하던 일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화다. 우리로서는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그런 고관대작들이 너무나 하찮고 흔한 그런 음식들을 좋아 하던지 어이가 없었다. T.V.에서 아무리 맛 자랑 멋 자랑 프로를 소리 높여 방송을 해도 나의 입맛과는 상관이 없다. 어렸을 때 먹은 음식이 각인 되어서 입맛이 없거나 아플 때 그 별것 아닌 향수식품으로 그 깊은 늪을 벗어 날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2012.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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