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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3 17:38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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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청초  이용분

    '그냥' 이란 말이 있다.
    예전 마당이 있는 개인집에 살적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 놓고 그냥 서로 이웃집
    대문을 두드려 차라도 한잔 하면서 별일 아닌 정담을 나눌 수 있었다. 요즘은 서로 명목 없이
    이웃 집 현관 문 벨을 누르기란 어렵다. 바쁜 시간에 왜 쓰잘 데 없이 그냥 누구를 만나며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내랴... 그들에게 큰 실례가 되는 건 아닐까...
    모두들 몸과 마음이 한가하지 않으니 꼭 필요한 일 말고는, 그냥 사람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 되었다. 그래서 현대인은 많은 사람 속에 있어도 늘 외롭다고 한다.

    한참 동안 찍기만 하고 인화를 하지 않은 채 내 디카 속에 보관되어 있는 사진을 뽑기로 하였다.
    멀게는 어버이날 가족 모임, 선농축전 때 만난 재미후배들이 낀 사진, 재미후배는 자기 '디카'로
    같은 장면을 찍어 갔으니 괜찮지만 한국에 거주하는 후배는 문제가 다르다.
    전주에 아들 집에 가서 아들 손자들과 찍었던 사진, 서울대공원 장미 축제 때 딸과 함께 코끼리
    열차를 타고, 장미꽃 밭에서 찍은 사진들, 이번 선농문학 포럼 행사 때 찍은 교수님과 수필
    문우회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인터넷에 올린 사진 말고 그냥 개인적으로 찍어 인화를
    해 주어야 될 사진들을 뽑기 위해 가까운 D.P점에 갔다.  

    이곳은 종합상가가 있는 소규모 백화점 건물 안이다. D.P점 바로 옆에는 약국, 그 옆에는
    옷가게가 있다. D.P점 건너 오른쪽 에는 안경점, 바로 앞에는 명함과 도장과 열쇠를 만드는
    가게, 그 왼편 옆은 옷가게다.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에 그냥 꼬방 동네 모양 아주 가깝게
    이웃을 하고 서로 다닥다닥 붙어 상부상조하고 사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한문 글씨들이 시원찮아 한문도장을 파기 힘 드는 데 한문 도장도 잘 파느냐" 고
    물었더니 D.P.점 주인이 모두 컴퓨터화 되어서 잘 한다고 한다.

    사진 매 수가 좀 많아 복사기로 빼는 동안 기다리게 됐다. 그 사이 어디선가 사십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 한 남자가 나타나 D.P.점을 기웃 거린다. 사진을 찾으러 왔거나 나 모양 사진을
    인화하러온 사람인가 했다. 그런데 그냥 기웃하고 가게 안을 드려다 본다. D.P점 주인도
    아무시렁 안하고 무덤덤 서로 쳐다본다. 왜 왔느냐 묻지도 않는다. 약간의 엷은 미소를 띈듯
    무심한 얼굴들이다.  

    서로 닭 보듯 소 보듯 그냥 서로 처다 볼 뿐이다. 아마 그 건물 안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이어서
    막역한 사인가보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한참을 그렇게 서로 쳐다보고 간다. 그냥 어찌
    지내나, 사업은 잘 되고 있나... 그냥 보러 온 모양이다. 사진관 주인도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뚝뚝한 사람도 아니다. 그냥 무덤덤한 사람이다. 분위기가 같은 사람이구나,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던 내가 왜 그 광경을 보고 그만 마른 침이 꼴깍 넘어 가는지...  
    요즘은 설명을 하고 말을 많이 해야만 서로 생색이 나는 듯한 세상이다. T.V.에서도 보면
    노상 무어라고 떠들어야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생각이 팽배 해 있는지 온 종일
    시끌 법적이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정말 맛이 있어 그러는 건지, 아니면 공짜로
    얻어먹으니 밥값으로 그냥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 하두 그렇게들 하니 오히려 뜨악하다.
    언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치 스페인 사람이나 이태리인들 모양 과장된 몸짓이나
    떠들석한 말투로 변했나 하고 의심이 가는 때가 많다.

    전철 안이나 밖에서 아주 친절한 사람을 만나는 때가 종종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국민이
    이런 사람들이었나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은 꼭 무엇을 사라거나 어디를 갔더니 희한하게 병이
    났더라 하며 명함을 내민다. 지난번에는 자기가 신은 신이 양가죽인데 여름에도 시원하고 가
    벼워서 정말 좋대나. 옆에서 듣기만 했는데도 나까지 명함을 주며 한번 전화를 해보란다.
    이제 이런 걸 신어보고 해야 된다면서...에그, 비싸게도  한 켤레에 19만원이라 한다.
    모든 사람이 잠정 고객으로 보이는지 거의 그런 식이다.

    온통 주변이 나와 상관 없는듯한 사람들로 에워 쌓여 있다면 얼마나 세상이 삭막하겠는가.
    사는 환경이 좋아지면서 이 증상은 더 심해 진것 같다. 아쉬운 것도 없는 것도 없다. 모든게
    다 갖춰져 있다.

    예전에 우리 친정집에서는 봄 가을 시루떡을 하여 이웃에 돌리기도 하며 이웃과의 유대를
    돈톡히 하였다. 새로 이사를 오면 거의 팥죽이나 시루떡을 돌려 친근감을 표시했다. 서로
    오가는 한 접시 떡에 서로가 은근히 친밀감을 느끼기도 했다. 먹거리가 다양해진 요즘
    시루떡은 핏자에게 저만치 밀려 났다. 잘못하면 굴러다니다가 쓰레기통에 들어가기 십상이니
    이제 이런 풍속은 사라진지 오래다. 이래저래 여간해서 이웃을 가까히 하기에는  힘이 든다.

    우리 집에는 없고 아쉬운 게 있어 빌리러 가기도 하고 모르는 게 있어서 물으러도 가고...
    힘든 게 있어 서로 도움을 청하고...사람 사는 게 별것이겠는가. 서로 의지하고 산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어려운 시절을 살아 온 우리로선 그런 것들이 삭막하게 느껴진다.

    그냥 궁금해서 걸려 오는 친구의 전화. 무덤덤하여도 알아주고 믿어 주는 누가 가까이에
    있다는 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냥 있기만 하여도 미더운 이웃이 그리운 세상이다.
    정말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에 지친 나머지 그냥 따뜻한 눈길만을 나누는 그들을 보며
    새삼 부럽기도 했다.

                                                                 201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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