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대사 1호'의 어머니 ...손주.증손주 33명...
그의 낡은 서럽속에 名家 비결이 차곡차곡
[이인호 前러시아대사와 형제들, 白壽 맞은 어머니 이석희 여사의 글 모아 문집 펴내]
자식들이 버린 종이에 그때그때 써놓은 기록 모아 손녀들 결혼할 때마다 '지켜야 할 덕목' 써 보내 "항상 마음 한편의 할머니는 존재만으로도 구심점이자 의지의 대상입니다."
올해 백수(白壽·만 99세)를 맞은 이석희 할머니의 작년 생일에 손녀 이상정씨는 이런 편지를 보냈다. "결혼할 때 써주신 시집가면 지켜야 할 덕목(德目)을 보았을 때 정말 감동이자 감탄이었어요. 전 딸이 없으니 며느리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이석희 할머니의 자녀는 6명이다. 큰딸 이인호씨는 하버드대 박사로 서울대 교수를 거쳐 '여성 대사(핀란드·러시아) 1호'가 됐다. 큰아들 선호씨는 서울대 상대를 나와 은행 전무로, 법대 출신인 둘째 아들 문호씨는 LG 부회장을 지냈다. 할머니는 2002년 남편과 사별한 뒤 장녀 인호씨와 함께 산다. 백수의 어머니와 희수(喜壽·77세)의 딸이 함께 사는 것이다.
지난 5월 희수(77세)가 된 ‘여성 대사 1호’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올해 백수(99세)를 맞은 (친정) 어머니 이석희씨의 손을 붙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50년 전 할머니의 수기에도 자녀들이 잘 자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막내 계호는 혜화국교, 성호 경기중학, 자호 이화여고, 문호 서울법대, 선호 육군 입대, 인호 하버드 대학원. 표정 없으신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아서원 중국집에 가 점심을 사시고 인호한테 보낸다고 가족사진도 찍었다. 그 사진이 사진관에 몇 달 걸려 있었던 모양으로 많은 인사를 들었다."
인호씨를 비롯한 6남매는 17명의 손주를 낳았고, 손주 17명은 지금까지 16명의 증손주를 낳았다. 할머니의 직계 자손만 39명, 배우자를 합하면 57명에 이른다. 손자 이상윤씨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증조할머니와 같이 지낸 기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제 나이쯤 되어서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5월 이 자손들이 백수를 맞은 할머니를 위해 문집을 발간했다.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라는 제목의 문집엔 할머니를 생각하는 자녀, 손주들의 편지와 할머니 회고담과 수필, 시(詩)가 담겨 있다.
어머니를 위해 뜻있는 선물을 해주자며 모인 자녀들은 문집을 만들다가 깜짝 놀랐다.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옷장 서랍을 열었고, 그 안에서 그가 평생 쓴 산문과 수필 수백편이 나온 것이다. 평생 주부로 살며 자식들이 버린 종이에 그때그때 써 놓은 기록이었다. 정리는 막내딸 계호씨가 맡았다.
할머니는 위로 시부모와 시조부모 2대를 모시고 살았다. 한 집에서 4대가 공존한 적이 있고, 늘 가정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자식 사랑도 각별했다. 1956년 맏딸인 인호씨가 처음 미국에 유학 갔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미국으로 편지를 썼다. 손자들에게 붓글씨로 교훈을 써서 보내는가 하면, 손녀들이 결혼할 때마다 '시집가면 지켜야 할 덕목'을 써서 보냈다. 지금도 증손주 돌 때엔 직접 바느질한 포대기와 머리 장식을 선물한다. 손녀 이상진씨는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의 많은 중요한 순간엔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고 했다.
문집에서 막내딸 계호씨는 "99세에도 손수 살림을 하실뿐더러 책도 읽고 바느질까지 하시는 우리 어머니는 한 인간으로서 누구보다도 충만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큰딸 인호씨는 "평생 위로 2대를 모시고 사시며 오늘날까지도 책과 신문을 읽고 바느질하는 어머님의 모습에 어머니를 떠나 경외심을 느낀다"고 했다.
13일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백수 노인의 몸가짐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할머니는 "자녀들과 손주들의 전화번호며, 집주소들이 모두 머릿속에 선명하다"고 말했다.
대가족을 일구고 평생을 살면서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이씨는 "몸이 좀 힘들었을 뿐 마음이 힘든 적은 없었다"며 "소식(小食)하고 집에서 항상 손을 바삐 움직이는 것이 건강 유지 비결"이라고 했다.
그의 낡은 서럽속에 名家 비결이 차곡차곡

[이인호 前러시아대사와 형제들, 白壽 맞은 어머니 이석희 여사의 글 모아 문집 펴내]
자식들이 버린 종이에 그때그때 써놓은 기록 모아 손녀들 결혼할 때마다 '지켜야 할 덕목' 써 보내 "항상 마음 한편의 할머니는 존재만으로도 구심점이자 의지의 대상입니다."
올해 백수(白壽·만 99세)를 맞은 이석희 할머니의 작년 생일에 손녀 이상정씨는 이런 편지를 보냈다. "결혼할 때 써주신 시집가면 지켜야 할 덕목(德目)을 보았을 때 정말 감동이자 감탄이었어요. 전 딸이 없으니 며느리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이석희 할머니의 자녀는 6명이다. 큰딸 이인호씨는 하버드대 박사로 서울대 교수를 거쳐 '여성 대사(핀란드·러시아) 1호'가 됐다. 큰아들 선호씨는 서울대 상대를 나와 은행 전무로, 법대 출신인 둘째 아들 문호씨는 LG 부회장을 지냈다. 할머니는 2002년 남편과 사별한 뒤 장녀 인호씨와 함께 산다. 백수의 어머니와 희수(喜壽·77세)의 딸이 함께 사는 것이다.
지난 5월 희수(77세)가 된 ‘여성 대사 1호’ 이인호 전 러시아 대사가 13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자택에서 올해 백수(99세)를 맞은 (친정) 어머니 이석희씨의 손을 붙잡고 환하게 웃고 있다. /김지호 객원기자 yaho@chosun.com 50년 전 할머니의 수기에도 자녀들이 잘 자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막내 계호는 혜화국교, 성호 경기중학, 자호 이화여고, 문호 서울법대, 선호 육군 입대, 인호 하버드 대학원. 표정 없으신 아버지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모시고 아서원 중국집에 가 점심을 사시고 인호한테 보낸다고 가족사진도 찍었다. 그 사진이 사진관에 몇 달 걸려 있었던 모양으로 많은 인사를 들었다."
인호씨를 비롯한 6남매는 17명의 손주를 낳았고, 손주 17명은 지금까지 16명의 증손주를 낳았다. 할머니의 직계 자손만 39명, 배우자를 합하면 57명에 이른다. 손자 이상윤씨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증조할머니와 같이 지낸 기억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제 나이쯤 되어서 깨달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지난 5월 이 자손들이 백수를 맞은 할머니를 위해 문집을 발간했다.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라는 제목의 문집엔 할머니를 생각하는 자녀, 손주들의 편지와 할머니 회고담과 수필, 시(詩)가 담겨 있다.
어머니를 위해 뜻있는 선물을 해주자며 모인 자녀들은 문집을 만들다가 깜짝 놀랐다. 소식을 들은 할머니가 옷장 서랍을 열었고, 그 안에서 그가 평생 쓴 산문과 수필 수백편이 나온 것이다. 평생 주부로 살며 자식들이 버린 종이에 그때그때 써 놓은 기록이었다. 정리는 막내딸 계호씨가 맡았다.
할머니는 위로 시부모와 시조부모 2대를 모시고 살았다. 한 집에서 4대가 공존한 적이 있고, 늘 가정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자식 사랑도 각별했다. 1956년 맏딸인 인호씨가 처음 미국에 유학 갔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미국으로 편지를 썼다. 손자들에게 붓글씨로 교훈을 써서 보내는가 하면, 손녀들이 결혼할 때마다 '시집가면 지켜야 할 덕목'을 써서 보냈다. 지금도 증손주 돌 때엔 직접 바느질한 포대기와 머리 장식을 선물한다. 손녀 이상진씨는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의 많은 중요한 순간엔 항상 할머니가 계셨다"고 했다.
문집에서 막내딸 계호씨는 "99세에도 손수 살림을 하실뿐더러 책도 읽고 바느질까지 하시는 우리 어머니는 한 인간으로서 누구보다도 충만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오신 분"이라고 회상했다. 큰딸 인호씨는 "평생 위로 2대를 모시고 사시며 오늘날까지도 책과 신문을 읽고 바느질하는 어머님의 모습에 어머니를 떠나 경외심을 느낀다"고 했다.
13일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만난 백수 노인의 몸가짐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할머니는 "자녀들과 손주들의 전화번호며, 집주소들이 모두 머릿속에 선명하다"고 말했다.
대가족을 일구고 평생을 살면서 '행복'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이씨는 "몸이 좀 힘들었을 뿐 마음이 힘든 적은 없었다"며 "소식(小食)하고 집에서 항상 손을 바삐 움직이는 것이 건강 유지 비결"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2012년 7월 16일자 유마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