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장에 햇 고추 사러 가던 날... 청초 이용분
점심을 먹고 남편과 함께 모란장에 가 보기로 했다. 지하철을 내려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몰려나온 것 같다. 에스커레이터는 물론 시장으로 가는 길이 서로 등을 밀다싶이 하며 주춤주춤 가게 된다. 언제나처럼 남편은 화초에 관심이 많아 고추를 사려는 나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내가 잘 찾을 수 있도록 빨간 모자를 쓰고 왔다나. 휴대폰이나 잘 감지 할수 있도록 몸에 밀착 되게 하라고 당부한다. 하는 수 없지... 저만큼이라도 건강이 유지되어 함께 장에 온 것만도 고마워 마음을 달랜다. 상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키는 자리가 있는지 팟죽 장사 떡장사 며루치 장사들이 모두 원래 장사를 하던 자기 자리에서 물건을 늘어 놓고 손님을 맞기에 여념이 없다. 추석이 가까우니 솔잎과 꺽어 파는 솔가지와 햇밤이 우선 눈에 띈다. 올해는 태풍이 불고 비바람이 휘몰아쳐 고추값이 아주 비쌀 것이라는 염려를 하며 고추점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 간다. 해마다 이 고추 사는 일이 여간 골몰스런 일이 아니다. 이제 부터는 빻아 놓은 고추가루를 사 먹어야지, 더 정확하게는 담궈 파는 김치를 사서먹어야지 하면서도 T.V에서 시중에 파는 고춧가루에 병들고 썩은 고추를 물들여 파는 걸 본 후로 여간해서 그렇게 되지 않는다. 우선 한 바퀴 고추시장을 돌아본다. 오늘은 별로 물건이 많지가 않다. 괜찮음직한 물건들을 손으로 만져보면 대강 잘 말랐는지 가늠이 된다. 고추가 눅눅하면 물수건 으로 닦아서 말리면 고추가 확 줄기 때문이다. 얼마나 매운지를 알기 위해서는 조금 뜯어 먹어 보기도 해야 한다. 고추가 크고 탐스러울수록 맵지가 않다. 고추가 안 매우면 김치 담굴 때 아무리 고춧가루를 많이 넣어도 괜히 꺼끄럽기만 하다. 이러는 내가 심한 결벽증은 아닐까... 마침 어떤 늙스그레한 할머니와 함께 고추를 골라보기로 하고 함께 다녀 본다. 비록 모르는 사람이지만 함께 의논해서 사면은 물건 고르기가 수월하여 매번 그리 한다. 이 할머니 “이게 좀 괜찮은 것 같지요?” 물으면 묵묵부답, 좀 맛을 보라면 안 먹어 보겠다나... 아무래도 협조가 잘 되지 않는다. 허기사 매운 걸 맛본 다음 그 매운맛을 견디기란... 그래서 나는 설탕을 가져가거나 단 식혜를 사먹기도 한다. 단걸 먹으면 혀끝 매운게 사라진다. 하는 수없이 나 혼자 돌아 다니다 보면 어느 새 쫓아 와 내 옆에 붙어 있다. 이제 그 할머니와는 의논이 안 되겠구나 하고 드디어 한곳에서 사기로 마음먹고 근수를 달고 돈을 지불했다. 나는 돈을 지불했으니 떠나려는 찰나다. 어느새 그 할머니가 내 뒤를 따라 왔는지 같은 집에서 똑같은 고추를 사려는 게 아닌가. 그 할머니는 “내가 사는 걸 근수도 좀 보아주어요.” 한다. 아니 내가 의논 할 때는 그리 무관심하더니만... 고추장사는 근을 채우기 위해 주둥이가 넓은 자루에 고추를 한웅큼씩 더 집어넣을 때마다 손을 발발 떤다. 아무리 그래도 근은 채워 줘야 한다. 사는 양이 많으니 몇 번을 집어넣으니 그제서야 겨우 근량이 채워졌다. 옆에서 어떤 남자가 "어련히 줄까.무얼 그리 디려다 보고 그러슈" 한다. "누구든 물건 값을 받을 때 왜 돈을 세지요? 그와 마찬가지지요.^^ " 돈도 얼마를 주라고 계산까지 해 줬다. 조심 해 가시라고 인사까지 챙기고 남편과 고추를 손수례에 싣고 떠났다. 한나이라도 젊은 내가 그녀에게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 마음 한쪽이 따뜻하다. 그녀는 너무 나이가 들어 어쩔 줄 모르는 데 나를 만나 전적으로 의지하고 물건을 산 모양이다. 세상살이라는게 생각과 달리 여간 만만치만은 않은 일이긴 하다. 생각해 보니 고추를 사는 일도 좀 엄두가 안나는 일이어서 나도 나이를 더 먹으면 그리 되지 않을까 하고 이해가 되었다. 시장 바닥은 사람으로 넘치고 뭐 그리 비싼 물건이 아니니 금세 흥정을 하여 사고판다. 돌아오는 길,고등어 뱃자반 두손, 참치, 목이 짧고 얇은 양말 5켤레, 옷에 다는 훜크. 찐 옥수수가 두개 천원, 약으로 먹으려고 쪼개 놓은 커다란 늙은 호박 4/1쪽.(나는 요즘 발이 조금 붓는다.) 달콤새콤 맛있는 자두는 요즘 속이 좀 쓰린 나는 끝내 쳐다만 보고 그냥 왔다. 이것저것 소소한 걸 사면서 보니 상인들 주머니는 돈으로 가득하다. 돈을 만지고 세는 재미에 저래서 장사들을 하는가 보다. 부피도 커지고 무거워진 작은 손 수례를 끌고 사람들 틈사이를 이리 저리 피해 큰 찻길 한 옆으로 오던 길이다. 어느 가게 앞을 지나려니 사람들이 우루루... 아까 지날 때에는 없었던 무슨 일인가. 호기심에 걸음을 멈칫하고 드려다 본다. 젊은이 중 하나는 노랑머리인 한 쌍이 자전거 위에 타고 펄석펄석 뛰면서 막춤을 춘다. 그 가게 오프닝 행사인 모양이다. 자전거 판촉 행사인가... 아무튼 힘도 들겠다. 보통은 예쁜 아가씨들이 가발을 쓰고는 운동장 치어리더 모양으로 하는 데 뜻밖에 이번은 남자들이다. 힘든 일을 하는 것 보다는 이게 쉬운 모양이다. 이왕이면 요즘 유행하는‘싸이의 말춤’을 추는 편이 쉬울듯 한데... 힘든 일보다 이편이 이제 챙피 할 것도 없고 쉬운가 보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고추를 파는 이들도 모두 노인들이다. 이제 이렇게 재래식인 장사도 차차 시들어 지겠구나... 생각하며 어쩐지 조금은 마음이 씁쓰름하였다. 2012.9.9 |

2012.09.11 11:00
모란장에 햇 고추 사러 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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