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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6 19:58

깊어만 가는 가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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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

        깊어만 가는 가을 날.                      청초

        아침부터 유리창에
        비치는 햇살이
        유난히
        눈이 부시게
        따사롭더니...

        어디서 몰려 왔는지
        앞집 처마 끝에 앉아서
        때 만난 듯
        짹 짹 짹
        즐겁게 지저귀는
        참새 떼들...

        하늘은 유난히 드높고
        코끝에 스치는
        싸늘한 바람은
        이제 가을이 깊어 짐을
        알려주는듯      
        귀뚜라미 소리 오간데 없네...

        뜰 앞에 철 따라 피어난
        구절초, 쑥부쟁이, 개여귀풀 꽃
        아주 작은 가을 小菊 꽃들이
        화려하지 않으면서
        단아한 그들의  
        자태를 자랑하며
        제가끔 피어 있는데...

        때를 만난
        벌, 호랑나비,
        흰나비들
        이꽃에서 저꽃으로
        서로 시새움 하듯
        한 겨울 양식
        꿀 따 가기에 여념이 없네...

        키가 큰 감나무에는
        설익은 감들이
        듬성듬성 잎이 떨어진
        가지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어 밀고
        언제쯤 제 시절이 찾아 오려나...
        궁금들 해 하고...

        잎이 누렇게 다 시들어버린
        호박 넝쿨에는
        늙어버린 둥그런 호박이
        가을 햇볕 아래에서
        황금색으로 익어서
        더욱 풍요롭기만 하다.

        물 행주질 깨끗이 하여
        햇볕이 잘 드는
        대문 앞쪽에 널어 말리는
        새 빨간
        햇고추가 담긴
        큰 광주리 위로

        우체부가 던져 주고 간
        흰 편지 봉투 속에는
        그 누가 보내준
        반가운 소식이라도
        들어 있으려나...

        홀로히
        먹이 사냥에 나선
        한 마리 고추 잠자리

        따사롭게 내려 쬐는
        가을 햇볕 아래
        가느다란 마른 나무가지 끝에서
        조는 듯 노니는 듯
        쉬며 날며
        가을 날은 깊어만 간다.
                                               2003.9.30


(범의 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