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그 진실과 왜곡 사이 _ 이인호

by 김 혁 posted Dec 0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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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그 진실과 왜곡 사이


                     이 인 호

                                                        (서울대 명예교수 · 부고 7회)


역사교육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성교육·정치교육의 핵심이 되어왔다. 옛날부터 제왕들은 왕자들의 교육에 역사교육을 빼놓지 않았으며,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미국에서도 로스쿨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부전공이 역사학이다.

역사에는 과연 어떤 매력이 있기에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일까?

먼저, 역사는 ‘교육받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자양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얻게 해준다. ‘교육받은 사람’이란 시간적·공간적으로 유한한 인간이 직접적으로 체득한 것을 뛰어넘어 그 이상의 지식과 상상력을 지니게 된 사람을 말한다.

또한 역사를 통해 옛 조상들과 외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인간적 행태를 보였는지를 알 수 있고, 사회적·집단적으로는 어떠한 행태가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면서 많은 것을 체득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 역사 공부는 단일 기억공동체로서 하나의 나라, 하나의 공동체를 묶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민족이란 같은 기억과 같은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규범과 질서를 만들어 유지하는 공동체로, 역사학습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면 인간의 본능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고 상상력을 풍부하게 하여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과거 어떤 인물이 얼마나 위대하게 고난을 극복하고 성공했는지를 알 수 있고, 또 어떤 위대한 인물은 얼마나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는가를 역사서를 통해 배우면서 상상과 대리충족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공부의 중요성으로 인하여 역사를 어떻게 읽는가,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관건이 되는 것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자신의 가문이 어떻게 평가되는가에 따라서 개인의 행동이 달라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객관성과 균형감각 있는 역사관

그런데 실제 역사와 인식되는 역사의 차이는 왜 벌어지는가? 역사라는 낱말은 ‘일어난 일로서의 역사’와 ‘기억으로 관리되는 역사’로 구분되며, 양자 간 내용이 다름으로 인해 그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역사란 과거에 일어난 모든 일이다. 그렇지만 그중에서, 어떤 일을, 누가, 어떻게, 기록하고 전수하느냐, 즉 기억으로 관리되는 역사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역사가가 기억하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다. 역사를 기록할 때 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위주로 기록하게 되며, 작성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사료나 기억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하게 기록할 수가 없다. 그리고 역사가의 세상을 보는 눈이 어떠한가, 즉 그의 인생철학이나 전문적 지식, 도덕성에 따라 역사 인식의 차이가 발생할 수가 있다.

그리고 역사를 기록하는 세대 간 관심이 다르기 때문에 세대 간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과거의 역사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기억이 연속해서 전수되지 않으면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나라가 존속할 수 없게 되며 이러한 이유로 역사교육이 시민교육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객관성을 견지’하는 것이다. 역사란 사실을 다루는 분야이기 때문에 엄격한 고증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많은 수련이 필요하였다. 영어로 전문영역이란 말을 사용할 때 ‘discipline(기율)’이란 말을 사용하는데 학자적인 기율, 학문적인 기율을 말한다. 자기가 주장하는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지 못하면 ‘기율이 없는 사람’으로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통용이 되지 않는다. 학자들의 세계에서는 흔히 What is your major?보다는 What is your discipline?으로 묻는데 이는 어떤 식으로 훈련받았는가를 묻는 것이다.

역사학에서 제일 금물로 여기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의 행적은 그 시대의 맥락, 즉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고, 주변의 여건이 어떻게 되는지를 고려해 기술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가치관, 사고방식을 가지고 15세기 사람들의 행적을 평가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적어도 ‘균형감각 있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얼핏 역사와는 관계가 없을 듯한 로스쿨 지망생들이 역사학을 전공하는 이유다.

개인적으로 역사가의 역할은 판사의 역할이 아니라 검사, 변호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동을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했는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닌가? 등을 판단하면서 주체 입장에서 왜 그렇게 하였는지를 밝혀놓으면 그 다음 평가는 독자들의 몫일 것이다.

헤겔의 역사철학,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의 오류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연구하는 역사철학에서는 헤겔과 칼 마르크스의 영향이 매우 큰데, 헤겔은 변증법을 통하여 역사학을 설명하고 있다.

헤겔에 있어 역사학의 의미는 ‘세계정신’ 또는 ‘이성’이 스스로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하여 사물을 통해 자기를 전개하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어떠한 역사적 국면이 나타나면 변증법적으로 도전적인 새로운 국면이 등장하게 되며 양자의 대립국면은 통합의 단계로 나아가며 역사는 발전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정신이 완전히 구현되어 이성적인 것과 현실적인 것의 일치가 되는 상황을 맞이하는 것이 역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이며, 역사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이성이 스스로 전개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사건이 벌어지면 이유가 있거나, 원인이 있어서 벌어지는 것이므로 불평할 것도 없지 않느냐, 즉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될 수가 있다.

다른 한편 헤겔 철학에서는 모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역사발전은 미흡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으며, 이를 거꾸로 본다면 이성에 맞지 않는 것에는 도전하고 타파해야 한다는 논리가 된다. 도전과 타파를 통해 단계를 한 차원 높여가야 한다는 혁명적 해석이 가능하다. 이러한 해석의 차이에서 헤겔 철학은 우파와 좌파로 나뉘게 된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좌파 역사철학에 자신의 경제이론을 혼합하여 유물사관을 완성하였는데 이것이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역사를 흔드는 가장 큰 힘을 가진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가 되어왔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 생산성은 높아지지만 빈부의 격차가 심해져 부는 소수의 자본가 손에 집중되고 그 현상이 한층 심해지면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 시대가 된다고 하였다. 이때가 되면 분배라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생산되는 많은 부를 골고루 나누어 가지게 되고 모든 사람이 재산권을 따로 가질 필요 없이 능력껏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평화롭고 억압 없는 공산주의 시대가 온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상적인 사회주의 사회가 역사발전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오게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산업화 초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호소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1917년, 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의 성공은 후진국 피압박 민족의 지식인들이 민중사관, 계급사관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에 많은 지식인과 애국자들이 마르크스에 경도되었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자본주의가 제일 먼저 발달하여 전성기를 구가한 영국은 마르크스가 예언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영국은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사회 전체의 경제 수준이 올라간다는 것을 일찍부터 감지하여 정치의 발달과 함께 점진적으로 사회를 개혁하여 삶의 질을 높여갔기 때문이다.

영국보다 산업발달이 늦은 독일은 공산주의를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당이 결성되었으나 무력투쟁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한 공산주의는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사회민주노동당 스스로가 간파하였다.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노동자의 권익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수정주의의 주장이 당내에서 설득력을 갖게 되면서 극렬한 혁명세력을 주저앉게 만들었다. 반면 자본주의가 늦게 발달한 러시아, 중국에서는 공산주의가 큰 호소력을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 이론에서는 공산주의 시대가 도래하면 어떻게 사람들이 자유롭게 되고, 어떻게 모든 사람이 능력껏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가며 억압 없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제도 마련의 구체적 방법에 대한 설명이 모호했으며, 국가가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생산수단을 관리할 경우 누가 국가를 관리할 것인지, 생산 인센티브가 사라졌을 때 과연 모두가 열심히 일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인간성 자체가 변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외에는 모호한 채로 남겨졌다.

역사는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20세기 들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소련이 해체되자 공산주의가 무너졌다. 러시아는 1917년 러시아혁명을 기점으로 국민에게 현대사를 가르쳤는데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체제가 붕괴되자 1년간 역사교육을 중단하고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이때 사람들은 현재의 정치로 인해 과거의 역사를 다시 쓸 수도 있다는 사실과 역사는 역사를 보는 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현재의 역사는 과거의 정치다’, 즉 과거의 정치가 어떻게 변해온 것인가가 현재의 역사라고 하였으나 소련이 해체된 후 러시아가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을 보고, 그 개념이 변하여 ‘현재의 정치는 과거의 역사다’라는 것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경우, 좌파의 시각이 지배하게 되어 과거 역사가 왜곡되고 있는데 실제 역사교육 현장이나 교과서를 통해서도 이러한 왜곡은 재생되어 왔으며 우리는 현재 그 불행한 결과에 직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우리나라 건국대통령인 이승만에 대한 체계적 평가절하다. 70년간을 독립투쟁에 바치고 남한만이라도 공산주의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스탈린과 맞서며 대한민국을 건국하여 자유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한 대통령인데 현재 사람들은 이승만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고 독재자와 분단을 고착시킨 인물로 폄하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란 국민 개개인이 소중하게 평등한 존재로서 인정받는 사회, 바로 그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 이런 이념적인 바탕이 제도적으로 만들어졌고 만국에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미국의 독립혁명이나 프랑스 혁명과 비견될 만한 큰 의미가 있는 위대한 사건이었다. 소련의 반대로 북한지역에서는 선거가 치러지지 못함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의 권능이 그곳까지는 미치지 못하게 되고 북한에는 공산주의 정권이 따로 수립되었다는 것만이 비통한 일이었다.

대한민국 현대사의 왜곡 ; 대한민국은 건국절이 없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절을 기념할 줄 모르는 나라다. 마치 이승만 대통령이 단순히 개인적 권력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분단을 무릅쓰고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장기집권을 했다고 부정적으로만 건국을 해석하며 심지어는 반공정책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었던 듯 역사적 현실을 외면하는 왜곡된 평가를 하는 것이다. 1945년에서 1948년에 이르는 시기에 공산주의의 미래에 대해 기대를 거는 것은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일이었지만 세계 공산주의체제가 그 본고장으로부터 무너져내린 현 시점에까지 그런 반역사적 시각을 견지하며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냉전시기 소련과 북한의 끈질긴 역사왜곡 시도의 희생물이 된 결과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대한민국의 정통성 부정으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국민 입장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사실을 정확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짧은 지식으로 역사적 인물이나 집단, 또는 이웃 나라들은 단죄하고 사물을 흑백으로 편협하게 갈라 보는 습성을 기른다는 것은 인간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할 역사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반대한민국적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지하의 운동권 교재를 통해 우리 지식인 사회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지만 지난 십여 년 사이 우리 하급학교 역사교육의 실태를 보면 반미, 반대한민국적 시각이 교실 속으로까지 침투하면서 사회를 결속시키는 이념적·정신적 유대가 해체되고 국가안보의 토대가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위험한 상황으로 여야, 정치권, 비정치권을 떠나서 국민 모두가 깨닫고 대응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일이다.


이인호[李仁浩] 1936~서울 생, 혜화국민학교, 서울사대부중·고, 서울대 사학과 졸업.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 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미국 웰즐리(Wellesley)대학을 거쳐 하버드대학에서 석박사 학위 취득.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귀국 후 고려대·서울대 교수 및 카이스트 석좌교수 등 역임. 핀란드 대사를 거쳐 1998년 주러시아 대사. 저서〈지식인과 역사의식 1980〉,〈러시아 지성사 연구 1980〉등 다수.



               ◇ 위 글은 지난 10월 10일과 24일 2회에 걸쳐 포스코 수요인문학 강좌에서 행한 특별강의
               《역사인식과 시민의식》의 일부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posconews 2012.11.1]



Mozart's Horn Concerto No.1 in D Major, Mov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