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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06 07:21

앞 집이 이사가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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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집이 이사가던 날.                   청초 


       앞집이 또 이사를 간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 집 친정어머니의
      말이다. 그 터는 본 주인이 오랜동안 세를 주고 있어서 우리가 사는 십여년 동안 벌써
      몇 번인가 사람이 바뀌었다. 이제 좀 알아 볼만 하면 이사를 가는 통에 미처 낯을 잘
      읶히기도 힘들다.

      이번 사람은 처음에는 딸이 맞벌이를 한다하며 집 가까이 사는 외할머니가 오가며 두
      외손자를 거두며 딸네 집안 살림을 보살펴 주는 것 같았다. 도시인 같지 않고 무던한
      그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며 정이 들었다. 얼마 있자 딸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아이를
      키우게 됐다며 애들 엄마가
      살림을 하게 된 모양이다. 두 남자 어린이는 보통 요즘 아이들처럼 개구장스럽고
      수선스럽다. 그 애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면 우리 집 현관 문밖이 항상 시끌벅적하다.

      무슨 물어 볼 일이 있어 잠시 그 집 현관문이 열려 드려다보니 문간방에서 피아노를 제
      멋대로 두드리는 소리도 요란하다. 외출을 하려 복도에 나서면 아이들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집안은 항상 떠들썩하다. 우리가 둘만이 사는 조용한 분위기와 달리
      활기찬 그집 분위기에 젊은 날 우리도 아이들 셋을 키웠던 시절을 생각하며 미소를 짓곤
      했다.

      어느 날 전주에서 우리 손자아이가 우리 집을 다니러 왔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그 집 손자들과 마주치게 되어 인사를 시켰다. 마침 두 아이가 모두 초등학교 똑 같은
      삼학년이라 좋은 친구가 되려나... 하고 기대했는데 두 녀석 모두 꼬리를 감추고 피하는
      통에 성사가 되지를 못했다. 개구정스러운 것과 아이들간의 친화력은 별개인가 보다.
      한 동안 지난다면 친해 졌겠지. 그래도 그 아이들을 만나면 마치 내 친손주를 만난
      듯 정답게 말을 건네고 눈길을 주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사를 간단다.

      어느 날 이삿짐 센타에서 푸른 상자를 잔뜩 들고 그 집안에 들어 서는 게 보였다.
      드디어 이사를 가는 게로구나. 아무래도 마음이 쓰여 내다 보니 이사 갈 주인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나는 집안에서 감을 잡으며 마음이 섭섭하다. 인사를 오겠지...
      이삿짐은 다 실려 나갔는데 작별 인사가 없다. 그 친정 어머니가 며칠전 내게 건넨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생각하나 보지...그렇게 안 보았는데 역시 요즘 사람이었구나.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평소 나누었던 그 이무럽고 유난하지 않았던 그들의 행동이
      모두 부질없던 허사로구나...그간 진심을 주고 그 집 아이들에게 쏟았던 나의 사랑과
      비슷한 관심이 모두 쓰잘 데 없던 것이었네... 공연히 배신감 마저 느껴지고 서운하다.

      앞집도 사람이 살 때와 달리 이사를 가버린 텅 빈 집안의 교교함이 낯설다.
      다음 날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공연히 마음이 괴롭다. 내가 끼치는 사람과의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무엇이 문제였을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밖은 어둑하고 하루가 저물어 간다. 그때다.
      현관 벨이 ‘띵똥 띵똥’ 이 늦은 시간에 누구일까.
      “누구세요?”
      “앞집이에요.”
      나는 허겁지겁 현관문을 열었다.

      그곳에 앞집의 그녀가 손에 무엇인가를 내밀며 웃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아, 나의 기대를 무너트리지는 않았구나.'
      나는 와락 그녀를 끌어안았다.
      “난 그냥 간줄 알았잖아.”
      내 눈에는 나도 모른 사이 눈물이 그득하게 고여 막을 새도 없이 주루룩 흘러 내렸다.

      사연인즉 마침 누가 떡을 주기에 가지고 작별 인사를 왔다면서 남편이 미국지사에 발령이
      나서 이삿짐을 먼저 보내고 4월말이나 되야 미국으로 가게 된단다. 다음 사람이 이사 올
      때까지는 집은 비어 있을 것이고 자기네는 그때까지 친정집에서 기거를 하게 되어서 짐
      정리를 하다보니 이렇게 인사가 늦었단다.

      그가 건네준 것은 하얀 팥 게피고물이 듬뿍 든 인절미였다. 지금 앞집은 비어 있다.
      사람이 안산다고 생각하니 공연히 썰렁하다. 그후 들린 그 아이들 아빠에게 내 자전적
      (自傳的)수필집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한권을 기념으로 전했다.
      그간 푸른나무 숲속에 깃든 새들 처럼 지저귀며 설쳐대던 그 이웃 집 아이들의 활기
      넘치던 소리가 이제 긴 여운처럼 아쉽고 그립다.
                                                                           

                                                              201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