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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딱따구리 새의 사랑 청초 요즘은 자기가 가진 금융자산의 가치를 지키기가 힘 든다. 수십 대 일로 당첨된 아파트가 기대와는 달리 하우스 푸어를 만들고 은행에 돈을 맡겨도 금리가 2%를 조금 넘는다. 그도 세금을 빼고 나면 게의 빈 껍질만 들고 앉아 있는 형국이다. 최근 기족의 의미가 퇴색하여 가정도 세대가 핵분열을 하여 일가구 일인시대에 사는 게 별로 이상하지 않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작고 편리한 오피스텔형의 집을 지어 이에 부응하는 풍조도 생겨났다. 숲속에 사는 새들도 예외는 아니게 봄이면 그들도 주택난에 시달린다. 돈을 주고 팔고 사는건 아니지만 기왕에 제가 둥지를 튼 곳을 찾아와 다시 알을 낳고 품는 게 보통이다. 독수리나 황새 까치들 처럼 헌나무가지를 물어다가 큰나무 가지 위에 얼기설기 걸쳐 짓기도 하지만 헌집을 수리하여 쓰기도 한다. 제비처럼 사람이 사는 인가 지붕밑 처마 끝에 질흙과 지푸라기를 섞어 집을 져 놓고 해마다 다시 찾아와 새끼를 까기도 한다. 푸른 물호반새는 호수가 가까운 진흙벽에 굴을 파서 둥지를 삼고 키워서 남쪽나라 제 고향으로 돌아 간다. 댕기머리 물때 새는 냇가에 자갈돌 몇개를 엉성하게 모아 놓고 그 위에 알을 까서 키우기도 한다. 한편 물닭은 호수 중앙에 물풀줄기를 모아 둥둥떠 있는 형국의 둥지를 틀고 새끼를 까고 물고기나 물벌래를 잡아 먹이며 살기도 한다. 보통 알다시피 딱따구리는 깊은 숲 고목나무에 구멍을 뚫고 둥지를 트는 새로 알려져 있다. 딱딱한 나무 둥걸을 그 작은 주둥이로 끝도 없이 쪼아 내어 둥지를 만드는 그 끈기에 놀랍기도 하고 얼마나 머리가 아플까하는 의문이 일기도 한다. 어느 날 심야에 본 T.V.자연 다큐멘다리 중에 나온 내용이다. 이왕에 있는 한 구멍에 딱다구리와 원앙새가 서로 둥지 쟁탈전이 벌어졌다. 바로 맞부닥뜨려 싸우기도 하지만 안 보이는 틈새에 서로 모르게 함께 둥지를 틀었다. 딱따구리는 알을 낳고 암놈이 알을 품은 건 확실한데 원앙새는 알을 낳았는지 어쨌는지 아무튼 그들은 옹색하게 같은 대문을 쓰며 동거를 하는 셈이었다. 그러는 사이 딱따구리가 부부가 먼저 부화를 한 모양이다. 숫새가 열심히 먹이를 물어 나르곤 했었던데 뜻밖에 암놈이 집을 가출 도망을 가버렸다.노상 둥지에 남아 알을 품어야 되는 그 어미새는 원앙과의 동거가 너무나 괴로웠던 모양이다. 드디어 머리에 빨간 베레모를 쓴 듯한 모양의 새끼 딱따구리 새가 구멍밖으로 주둥 이를 내밀고 열심히 짹짹거리며 먹이를 받아먹고 있었다. 숫새 혼자 남아서 열심히 새끼를 보살피며 벌래를 물어다가 어렵게 새끼를 키우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새끼 새의 주둥이가 매끈하지 않고 쭈그러진 모양새로 아귀가 맞지 않아 제대로 먹이를 먹는 게 힘들어 보인다. 커서는 나무 둥걸을 쪼아서 집을 만들 수 있 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기형이다. 이제는 덩치도 제법 커서 이소(離巢)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아빠 새가 아무리 먹이를 입에 물고 유인을 해도 이 새끼 새는 집을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어느 날 아빠 새가 새끼 새를 비집고 둥지 안으로 들어갔다. 안 나오려고 버티는 새끼 새를 억지로 둥지 밖으로 밀어 냈다. 놀랍게도 떨어져 내리는 새끼 새는 날개도 기형 이다. 제 스스로 집을 나오지도 못하고 계속 먹이를 보채기만 하는 새끼 새를 참다 못해 억지로 밀어 낸 아빠 새는 그만 그 새끼를 버려둔 채 영영 다시는 새끼 새를 찾아오지 않았다. 자연은 제 스스로 엄격한 규율 속에 적자생존을 지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사진을 제작하던 카메라 팀이 대학의 조류 학자를 초청하여 자문을 구했다. 그 비좁은 통 나무속 둥지 속에 원앙이 동거하면서 막 부화된 새끼 새를 밟고 뭉게서 새끼 새의 여린 주둥이와 뼈가 뭉그러져 기형으로 성장을 하게 되었다. 영양상태도 아주 부실하여 제대로 새 구실을 할지 의문이라 하며 대학 연구소로 데려갔다. 그 후 그새의 생사를 알 길이 없다. 아무리 미물이지만 알을 품다 말고 도망간 어미 새와 장애새가 된 새끼 새를 끝까지 혼자 보살피다 종국에는 포기를 해 버린 아비 새의 슬픔이 마음을 아리게 하며 긴 여운을 남긴다. 요즘은 대부분의 새가 새끼들 잘 키워 나르는 연습을 하는지 새끼 새의 우지짐이 요란하다. 숲은 아무일이 없었다는듯이 여전히 푸르르다. 2013.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