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암 수련꽃 / 한승원

by 김 혁 posted Sep 22,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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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암 수련꽃

 

한승원

 

 

황금가루 빛 쏟아지는 초여름 한낮

정각암으로 부처님 배알하러 갔는데

법당에 계셔야 할

부처님 그 앞에서 염불하고 계셔야 할

스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쩌나,

눈 크게 뜨고 다시 보니

부처님은

연못의 흰 수련 꽃잎에서

스님은

자색 수련 꽃잎에서 빙그레 웃으십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더 높은 곳으로 가자.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주문. 『반야바라밀다심경』의 맨 끝에 나온다.

 

 

 

-출처 : 시집『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 2008)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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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한낮이면

법당 안에 부처님도 스님도

안 계시는 게 좋겠다

차라리 연못 위

흰 수련 꽃잎에 앉아

더위를 쫓으시는 게

자색 수련 꽃잎에 앉아

더위를 식히시는 게,

보는 사람이 덜 더울 테니까요

이쯤 되면 해탈하신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시원한 곳에서 배알하시도록 배려하시는 일이야 말로

큰 보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