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암 수련꽃
한승원
황금가루 빛 쏟아지는 초여름 한낮 정각암으로 부처님 배알하러 갔는데 법당에 계셔야 할 부처님 그 앞에서 염불하고 계셔야 할 스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를 어쩌나, 눈 크게 뜨고 다시 보니 부처님은 연못의 흰 수련 꽃잎에서 스님은 자색 수련 꽃잎에서 빙그레 웃으십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더 높은 곳으로 가자. 그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는 주문. 『반야바라밀다심경』의 맨 끝에 나온다.
-출처 : 시집『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 2008) -사진 : 다음 이미지 -----------------------------------------------
초여름 한낮이면 법당 안에 부처님도 스님도 안 계시는 게 좋겠다 차라리 연못 위 흰 수련 꽃잎에 앉아 더위를 쫓으시는 게 자색 수련 꽃잎에 앉아 더위를 식히시는 게, 보는 사람이 덜 더울 테니까요 이쯤 되면 해탈하신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시원한 곳에서 배알하시도록 배려하시는 일이야 말로 큰 보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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