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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4 23:33

쥐 소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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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쥐 소동 이야기                       청초


      나의 큰 아들은 매일 우리에게 문안 전화를 한다. 비록 따로 살고 있지만 그 애네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르는 것 말고는 웬만하면 거의 알고 의논도 하며 지낸다. 추석을 지난 어느
    하루 집안에 쥐가 들어 왔단다. 어디로 해서 쥐가 들어 왔는지 알 수가 없단다. 맞벌이를 하는
    며느리는 쥐를 아주 무서워해서 아직은 비밀이란다. 하기사 쥐를 좋아하는 사람이 세상천지
    어디 있겠는가...

      쥐약은 약국에서 팔지도 않아 인터넽에서 주문해야 살 수 있단다. 쥐가 들어 온지 사흘이
    되었는데 약을 놓는 대로 몽땅 다 먹기는 하는 데 도무지 쥐가 잡힐 기색이 없단다. 영문인즉
    요즘 쥐 약은 사람이 먹고 죽을까봐 아주 약하게 만들어 한 열흘쯤이나 먹어야 죽는 대나...

      매일 전화의 첫인사가“쥐는 잡혔냐”로 시작되어 종국에는 그 찝찝한 쥐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맞벌이를 하니 하루 종일 집이 텅 빈 상태에서 제 멋대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닐 쥐를 생각하면
    나도 함께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다. 그 집은 서울이면서도 아들이 근무하는 대학교에서
    아주 가까운 터라 그리 살게 되었다. 그후 단독 주택에 살면서 겪게 되는 이런 고충을 생각하면
    나는 아들이 은근히 안스럽게도 생각되는 터다.

      이런 말들은 우리끼리 이야기지 아버지에게 이야기 해 드려 봤자 공연한 염불이지 긍정적인
    소리는 못들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내가 했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그 이야기에
    "집안에 쥐 들어오는 게 다반사지 무에 고생스런 일이란 말이냐...!"
    단호하게 담박에 일축을 해버리는 게 아닌가. 그는 무뚝뚝한 경상도 아버지다. 

      살아 온 동안의 쥐 이야기를 하려면 화제 꺼리가 많다. 지금이야 나는 아파트 고층에 사니
    쥐의 코빼기 본지도 한참 되었다. 나도 그 집에 살면서 쥐하고 신경전도 수 없이 벌였다.
      나의 남편은 쥐하고 벌레를 아주 무서워(?)해서 어쩌다 벌레가 방안에 나타나면 질급을 하고
    저 멀리 딴 방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야, 벌레다. 어서 와서 이놈 좀 잡아라..” 하고 큰소리로 불러대기 일쑤...
    그러던 남편의 말씀이 이러하다니... 
    큰 아들에게 그 말을 전하니 ㅎㅎㅎ 폭소를 터뜨리며 그 순간부터 쥐가 들어온 것쯤이야 아무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고 용기가 생기더란다.  

      다른 일은 안그러는 데 어쩌다 집안에 쥐만 들어오는 날이면 남편은 안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가서 쥐가 잡힐 때까지 나 몰라라 숨어 있다. 이러하니 야속은 하지만 하는 수 없이
    큰아들과 내가 주로 쥐를 쫓아 내거나 잡거나를 하며 살아야만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어느 하루 동해안 설악산으로 여름 피서를 떠나려 하는 이른 아침에 쥐가
    집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 쥐란 놈들은 아주 영리해서 다급하게 쫒기다 보면 피아노 뒤편 요철이
    진 나무각목 사이에 납작 붙어 떨어지지 않기도 하다가 종극에는 쫒기어 딸이 자는 방까지
    들어 갔다. 딸아이의 팔을 밟고 지나가니 자던 아이는 기절하듯 놀래고 결국에는 부엌 문을 통해
    도망을 갔다. 아침 일찍 벼르고 가족 모두가 서둘러 먼 길을 떠나야 되는 그런 급박한 상황에
    벌어진 그 황당한  일은 우리 가족 모두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일대 사건으로 기억 됐다.  

      우리 세대는 6.25동란이 끝나고도 5.16 혁명시절 냉해가 들어 배급을 타먹기도 하며 한동안
    식량난에 시달린 경험이 있다. 가을이면 쌀집에서 제일 좋은 강화쌀 일등미를 열 가마 이상 사서
    부엌 옆 작은 방에 잔득 쟁여 놓았다. 세 아이들이 한창 크는 시기라 식량이 떨어진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주 끔찍한 일이었다. 그 속에 쥐가 들어가서 제 맘대로 파먹으며 살아서 아주
    골머리를 썩혀야만 되었다.

      그 시절에는 약국에서 쥐약을 사가는 이의 이름을 써 놓도록 하였다. 밥풀 덩어리나 빵 조각에
    쥐약을 두 세방울 떨어 뜨려 쥐가 잘 다니는 길목에 놓으면 백발백중 쉽게 잡히곤 하였다.
    요즘은 그런 약이 없단다. 잡히지 않으면 쥐틀이나 끈끈를 놓아 보도록 권하였다. 쥐틀에는
    쥐가 좋아하는 며루치에 참기름을 발라서 실로 매달아 쥐가 다님직한 곳에 놓아 보아라...

      드디어 쥐 끈끈이 부터 사왔단다. 요즘은 아파트에서도 쥐가 자주 들어와 약국에서 쥐약이 많이
    팔린다 하며 며느리의 불평을 잠 재웠다 한다. 진짜 변기 속 수조를 통하여 목욕탕으로 들어오는
    쥐의 영상을 나도 T.V.에서 본듯도 하다.드디어 다음 날 바로 쥐가 끈끈이에 짝 붙어 '찍찍찍'
    소리를 내며 잡혔단다. 우리는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너무 시원해서 "축하 축하"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물론 남편도 기뻐한 건 말할 것도 없다.  골치 아픈 쥐 소동은 이렇게
    결말이 났다.
      
      그 시절에는 아파트도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지난 날 쥐가 집안에 들어오면 아이들과 함께
    쥐 소동을 겪으며 살았던 세월들이 나에게는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생각이 슬슬 드는 것이었다.

                                                                   2013.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