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우회에서 대청댐가 대통령 별장으로 가을 소풍을 가는 날이다.
분당선 복정역에서 8호선으로 갈아탔다. 내가 앉은 자리 맞은편에 어떤 여자 노인이 작은 짐
끌게를 발끝에 밀어 놓은 채 반은 비스듬하게 등에 기대고 마음놓고 질펀하게 앉아 간다.
오글오글 파마 머리에 제법 고운 얼굴피부가 늙어 깊게 주름져서 반고호의 자화상처럼 인상
파이다.
옷은 남루하지는 않다. 비교적 새 옷인데 빨간색과 곤색콤비 긴상의가 언제 세탁 해 입었는지
정말 꾀재재 하기 이를데 없다. 빨려면 힘과 물통깨나 들겠다. 옆 빈자리에 사람이 탔는데 탄
사람이 움추리며 몸을 사린다. 피곤함이 온몸에 사려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임을 한눈에
알아 보겠다. 아마도 가락시장에서 싼 물건을 사다가 소매로 파는 장사를 하는 모양이다.
살살 손자 재롱이나 볼 저 처럼 늙은 나이에 인생이 얼마나 고달플까...
역시 그녀는 가락시장 역에서 내렸다.
나는 목적지인 잠실역에 내렸다. 찾아 가야 될데가 3번 출구로 나가 너구리 상앞인데
지하층인 역규모가 이리저리 길이 뚫여 너무 광대하고 복잡하다. 어쩌다 와보니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마침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서 말로 설명을 들었는데 곳곳에
구내공사를 벌려 놓은터라 겨우겨우 미로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지상으로 올라가 타고 갈 버스를 만나면 떠나기 전 화장실 가려면 시간도 걸리고 남에게
페가 될 것 같아 마침 3번 출구 가까이 벽쪽에 붙은 구멍가게 주인에게
“말좀 묻겠어요. 여기서 제일 가까운 화장실이 어디에요?^^" 하고 물었다.
돈을 정리하다 말고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는 방향을 보니 내가 나가야 되는
출구에서 역방향이다. 만나야 될 약속시간도 촉박하고 8호선을 내려서 걸어
온 거리도 꽤 되어 다리가 슬슬 아파와서 다시 물었다.
”저쪽 나가는 방향 쪽으로 가까운 화장실은 없나요?^^“
아차 ! 다시 물은 게 잘못이다. 갑자기 바짝 마른 얼굴을 쳐들고
“아니 어쩌구...저쩌구... %$#@” 인상을 쓰며 무어라 언성을 높인다.
잘 가르켜 주었는데 무슨 말이 많으냐는 뜻이겠지...
앞이가 2개나 빠진 얼굴에 인상을 쓰니 험악하기 이를 데 없다.
“에그그. 내가 아침부터 된똥을 밟았구나...” 순간 악몽을 꾼 기분이다.
두 마디도 못하고 역방향의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 지나가며 그 영감의 얼굴을 다시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굴은 상당히 미남형인데 늙고 삶에 찌들어 그런 고약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좋은 표정만으로도 주변을 편하게 하는 무상보시라는게 있다는데 이게 뭐람.
살면서 별로 남과 이런 경우를 당해 본적이 없는 나는 머쑥하여 아주 질겁을 했다.
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이렇게 인생을 찌들고 망가지게 하는 아주 독한 요소를 지녔구나.
그들은 무더운 여름밤에 한바탕 허망한 꿈을 꾸는 것 같으리라...
어차피 우리의 삶도 각각 다른 한여름 밤의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준비가 안 된 노후는 재앙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나마도 건강하여 그런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그들은 행복한 측이 아닐까...
공연히 마음이 착찹하다. 유난히 높다란 층계를 밟고 지상으로 올라 우리 일행과
합류하니 악몽같던 그들의 험상맞던 모습이 서서히 엷어져 간다.
그래도 그 여운은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이렇게 살아서 내 마음 속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