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일(雪日) / 김남조겨울 나무와바람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나무도 바람도혼자가 아닌 게 된다.혼자는 아니다누구도 혼자는 아니다나도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삶은 언제나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사랑도 매양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말없이 삭이고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황송한 축연이라 알고한 세상을 누리자.새해의 눈시울이순수의 얼음꽃,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백설을 담고 온다.- 김남조 시집>(1967)- 연하장 / 김남조 설날 첫 햇살에펴 보세요잊음으로 흐르는 망각의 강물에서 옥돌 하나 정 하나 골똘히 길어내는 이런 마음씨로 봐 주세요 연하장, 먹으로써도 彩色(채색)으로 무늬 놓는 편지 온갖 화해와 함께 늙는 회포에 손을 쪼이는 편지 제일 사랑하는 한 사람에겐 글씨는 없이 목례만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