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살아 계시기나 하려나

by 이용분 posted Feb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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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세월이 흘러 어머니는 살아 계시기나 하려나...             청 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싸늘 해 졌다.          
    언제 그런 큰비가 쏟아졌느냐 싶게 푸른 하늘에는 흰 구름도 몇점 두둥실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거실의 밝은 갈색 나무마루 위로 앞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의
    길이가 깊어 졌다. 등어리에 내려 비치는 햇볕의 느낌이 따사롭기까지 하다.    

      정원에 있는 아주 자그마한 흰 들국화와 보라색 들꽃도 아침나절 찬 바람에 흔들
    리니 파리할 정도로 애처롭고 귀엽다. 나무 밑의 음영도 깊어지고 귀뚜라미의
    울음 소리도 힘을 잃은 듯 하다. 나무 밑을 찾아와서 이쪽저쪽 가지로 옮겨 다니며
    우지지는 이름모를 작은 새의 지저귐 소리가 가을바람 결에 영롱하게 울려온다.

      오늘 아침에 T.V 에 비치는 이산가족들의 모습...이제 죽기 전에 꿈속에서라도 한번
    그 모습을 잠간만이라도 보고 지고하던 소원이 성사 되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몇
    십년이라는 세월의 장벽을 넘어서 아무리 긴 세월이 흐르고 강산이 몇번이나 변하
    도록 또 흘러 갔어도 서로가 한 핏줄이 틀림없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는 안타까운
    짧은 만남이 이루어진 뒤다.

      이제 또 다시 언제 생전에 만나 뵐지 어떨지 기약도 없다. 서로 부등켜 안고 있는
    사이에도 야속한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서로의 손길 놓아야만 될 안타까운 순간이
    다가왔다.

      하얀 명주실처럼 다 세어버린 흰머리에 몸이 말린 북어 같이 바싹 마른 팔순 노모
    버스 창 밖으로 내미는 손을 차마 잡지도 못하고 버스의 몸체에 머리를 파묻은 채
    어머니를 놓치기 싫어 몸부림을 치는 육십이 넘은 듯한... 이제는 그만 늙어버린
    아들의 그 몸짓이, 어찌 보면 그 옛날 어린시절 엄마 앞에 떼쓰며 응석을 피던 때
    그 모양으로 몸부림 치며 흐느끼는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하도 고생을 하고 정신 무장을 해온 탓인지 이북에서 온 팔순노모가 오히려 의연하다.
    아들의 등을 치며 무엇이라고 차라리 짐승의 포효(咆哮)와도 같은 소리로 호통을
    치신다. 짐짓 그렇게 하셨을 것이려니 하는 생각이 든다.
    그분도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너무나 슬픈 마음을 가누지 못하셨으리라...

      십년 전인가 이산가족을 찾을 때이다.아침 밥상을 물린 후에 나는 찾을 친척도
    없으면서 매일 T.V 앞에 앉아 있었다. 그들이 가족을 찾을 때마다 절절한 그들의
    아픈 사연에 제절로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고 아예 수건을 옆에 가져다 놓고
    눈이 붓도록 훔치고 또 닦고 하여 나중에는 머리가 아파 오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이북에서 온 그들은 씩씩해 보인다. 모두 정신 교육이 아주 잘 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인다. 한날 한시에 배급 해 준 천으로 만들어 입은 듯한 모두가 똑 같은 새
    한복이 어쩐지 더 어색하게 만 보인다.
    그들이 너무나 고생을 하는 것 같이 보여서 안타까워 흐느끼며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쪽에서 온 형제들을 등을 짐짓 두드리며 진정을 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다.

      헤어지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더 내 혈육의 얼굴을 쓰다듬고 손도 만져 본다.
    지금까지 살아온 그 기나 긴 세월 속에 언제 그리 다급한 시절이 있던가 싶게 흘러
    가버리는 그 무정한 시간들이 아쉽기만 하다.
    너무나 오랜 기다림에 지치고 정신까지 혼미 해져 그 옛날 헤어진 아들의 모습도
    한참은 기억 해 내기 조차 힘이 들고 어렵던 구십이 넘게 늙으신 또 다른 어머니...
    그러다 겨우 알아 보자마자 이제는 바로 헤어져야 하는 기가 막힌 이 상황이 또
    믿기지도 않고...

      너무나 늙어 버려 이제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옆에서 알아듣기도 힘든 당신만의
    어조와 중얼거림으로...
    어둔하여 표현도 잘 못하고 슬픔도 나타내지 못하시는 구십 노모의 표정은 차라리
    바라 보는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한다.
    이제는 누군가 아이들의 어미가 되어, 흐르는 세월 앞에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고
    늙어버린 버린 딸의 모습...

      이북을 향해서 떠나 버린 버스 뒷모습을 쫓아가며 엉엉 울부짖다 주저앉고 마는
    그 정경은 정말 우리의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너무나 오래 된 우리 민족의
    이 비극이 끝이 날 날은 언제 쯤 일까 ...?    
                                                      2003년 9월 22일


      (이제 꿈에도 잊혀지지 않는 6.25동란이 처음 발발한 날이 또 다가옵니다.
    이글을 쓴 후 그 당시에 나왔던 그 늙으신 노모는 아직도 생존해 계실까. 얼마나
    많은 이산 가족들이 꿈에라도 그리는 부모형제 자매, 고향산천을 보지 못한 채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을 할까... 이런 생각을 해보니 너무나 마음이 쓰라립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문제는 아직도 해결 되지 못한 채 
    이 땅의 평화마저도 다시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며 이 글을 올려 봅니다.) 

                                                      2009년 6월 19일>

      수많은 우여곡절을 격은 후 또다시 남북이산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질 날을 학수고대
    하고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만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권리이거늘 이제
    기다라고 기다리다 지쳐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거의 다 세상을 하직하였다 한다.
    이제는 목숨이 질긴 사람들만이 살아 남아 겨우 이루어질 상봉, 이도 인도적인 경지가
    아닌 정치적인 이슈를 담아 닥아오는 저들의 계산이 다행히 들어 맞아 그나마라도
    하루 빨리 만남의 날이 이루어지기를 이 새봄에 간절히 소망한다.

                                                               2014.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