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입니까? 아닙니다. ‘세월’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나도 최선을 다했건만) 한번도
“청와대에서 만납시다”라고 하지 않았고,
누구 말만 듣고 정치를 그 따위로 했는지는 모르지만
지난 번 대선에서 자유민주주의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낭만논객>이라는 TV 프로에라도 출연하는데
이명박 씨는 어디서 무얼 하는 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가? 세월 때문입니다.
임기가 차서 청와대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임기가 있다는 건 그이도 알고 있었겠지만
세월이 그렇게 빠르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돈’이 가장 무서운 것인가요? 아닙니다.
정주영 회장도 이병철 회장도 애써 벌어놓은 그 많은 돈을
저 세상에서 무슨 일에 쓰겠습니까.
두 분 다 그저 잠잠히 계십니다.
그래도 이 겨레가 오늘 밥술이나 먹게 된 것이
현대와 삼성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우의 김우중 회장은 아직도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객지를 방황하고 있다는데 그것이 모두 세월 탓입니다.
그 이 자신에게 무슨 큰 죄가 있겠습니까?
미인도 세월 앞에 무기력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우리 시대의 뛰어난 미인은 최은희 씨였습니다.
그 미인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라는 영화에 출연했을 때
그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은 한국인은 없었을 겁니다.
그러나 ‘세월이 웬수’라, 몇 사람이 그이를 모시고
점심이나 함께하려던 계획은 이미 두 번이나 ‘무기연기’ 되었습니다.
그 때마다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어서! 슬픈 일입니다.
세월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하와이의 화산도 터져서 용암이 흐르다 멎는 법이고,
폭설 때문에 동해안에 쌓였던 큰 눈도 조만간 녹아버리지만
세월은 변함없이 가고 또 가고, 흐르고 또 흐르는 것 아닙니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무서운 건 세월입니다.
세월 앞에 겸손하기를!
김동길
www.kimdonggi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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