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란 그레이스케리)
지난 일 년여는 나에게는 정말 정신 줄을 놓고 보낸 세월이었다. 어느 날 큰아들이 다니러 왔다. 아버지 생전에 늘 함께 했던대로 고려삼계탕집에 점심을 하고 마침 지나는 길옆 꽃집을 드려다 보게 되었다. 이른 봄이라 겨우내 묵은 볼품 없는 꽃 들만 전시되어있을 뿐 별로 살만한 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두 세 군데 찾아 가본 맨 끝의 꽃집에서 분홍색과 하얀색. 분홍색에 흰색 갓을 두른 영산홍 꽃이 곱게 핀것을 겨우 발견하였다. 아직 꽃대가 작아 오종종 수형은 별로 보잘것 없지만 다른 큰 화분에 옮겨 키우면 그런대로 보기 좋은 관상목이 되겠네... 나는 한겨울에 곱게 피어난 그 꽃을 보는 순간 새로운 기대를 갖게되면서 마음의 문이 살짝 열렸다. 아들은 분홍이 빨강이 노랑이 별꽃도 함께 사서 선물해주었다. 그날부터 꽃 사랑이 다시 시작되었다. 원래 나는 젊은 시절부터 꽃을 무척 좋아 해서 시장에 갔을 때 반찬거리 한가지를 덜 사더라도 마음에 드는 꽃은 꼭 사오곤 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나는 세 아이들 보살피기에 여념이 없어 꽃 키우기는 관심밖으로 밀려 났다. 그후 남편의 취미가 되어 이를 가꾸게 되니 내 소관이 아니고 자연스레 관람자가 되었다. 아들이 사준 꽃을 매일 드려다 보고 즐기며 사진도 찍었다. 그제서야 색색이 핀 그 영산홍꽃이 한 나무가지에서 핀 게 아니고 세개의 꽃대가 각각이란 걸 발견하였다. 꽃이 지고나면 집에 있는 다른 큰 화분에 간격을 조금 넓혀 옮겨 심어서 크게 키워보리라. 꽁꽁 닫힌채 꽃들이 성가시기까지 했던 내 마음은 다시 앞 발코니에 있는 다른 꽃들에게 까지 눈길이 닿았다. 몇 년 동안을 손보지 않아 화분 밑 밭침접시에 푸른 이끼가 끼어 지저분한 게 눈에 들어온다. 이것들도 깨끗하게 씼어야겠구나... 문득 빈 장독위에 올려놓은 소사나무 분재에 눈길이 갔다. 나는 평소 단지를 무척 사랑하여 이렇게 화분 밭침대로 올려놓고 예전의 장독대에 대한 향수를 달래고 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다른 화분에 물을 줄때 되는대로 건성 물을 주었던 소사나무 가지마다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고 있지 않은가... 아! 이 놀라움이란! 근 20년전 그 당시엔 T.V.에서는 분재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어있던 시절이다. 우리도 서초동 화훼마을에 일삼아 찾아가서 작은 묘목들... 소나무 묘목, 단단풍나무, 사철 빨간단풍나무 묘목등을 사다가 나지막한 분재 화분에 습작으로 제 각각 나누어 심어 놓았다. 애지중지 골고루 관심을 쏟아 부었지만 몇해 안가서 차례차례 실패를 하고 이 소사나무만이 끈기 있게 살아남았다. 여름이면 푸른 잎을. 가을이면 노란 색 단풍잎에 낙엽까지 지곤한다. 남편이 크게 아픈 후로는 별관심도 못준 잊혀진 고목나무 분재다. 모양은 마치 시골 마을 어귀에 서 있는 오랜 세월 묵은 느티나무처럼 의젓하게 생겼다. 나무 아래쪽에는 한겨울이면 곰이라도 들어가 겨울잠을 잘듯한 큰 구멍도 있어 그런대로 잘생긴 나무다. 지금은 뼈가 들어나 앙상하지만 여름이면 이파리가 성해 그럴싸한 나무로 변신한다. 까딱 하다가는 죽었는 줄 알고 치우려고 했다. 아! 이 나무가 살아 있었구나... 생전에 그의 손길을 다시 만난듯 죽은 가지를 골라 정성껏 전지를 한다. 다시 수형을 잘 다듬어서 거름도 주고 화분도 조금 큰 것으로 옮겨 심어 놓아야지... 나도 모르게 이 봄에 새로운 희망이 마음속에 움트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큰 슬픔을 잊고 이처럼 작은 소망을 갖어 보려한다. 2015년 3월 1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