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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08 22:55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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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지 열매)
 
    • '메르스’                          청초  이용분

  • 일요일인데 큰아들이 다니러왔다. 수요일마다 문학회에 나갈 때면 제 차로 데려다 주곤
    하는 데 지난주는 교수님 사정으로 강의가 없어서 건너 뛴 대신에 일요일에 온 것이다.
    여러가지 먹거리를 골고루에다 제철 과일인 노란 참외를 9개나 사왔다.
    올해는 가물어서 유난히 참외가 달다.  

    저녁나절이 되어 햇살이 기울녘에 아들과 함께 탄천으로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어느 새 절기는 변해 지난 봄에 연분홍색 벚꽃이 피고 진 게 엊그제인 것 같은데 벌써
    빨갛고 분홍이 검정색 색색이로 벚지가 익었다.그중 농익은 것이 떨어져 온통 길바닥이
    시커멓게 얼룩이 져 있다. 그간 아무리 가물어도 물길이 끊긴 적이 없던 냇물이 뭠춰
    군데군데 작은 웅덩이를 만들고 있다.  

    나지막한 시멘트다리 아래로 네모로 큼직하게 구멍을 내서 흐르게 한 조금 깊게
    소(沼)를 이른 맑은 물속에 꼼짝없이 갖힌 송사리들이 우왕좌왕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모은다.

    ​우리도 걸음을 멈추고 드려다 보았다. 마침 그때 오리 떼 네 마리가 다리구멍을 통해
    그 맑은 물위로 나타났다. 불시에 난리를 만난 고기들은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좌로
    우로 '사사삭' 몸을 피하기에 바쁘다. 사람들이 여럿이 모여 있으니 오리들도 당황을
    했는지 그 물웅덩이를 황급히 지나쳐 상류로 옮겨 간다,

    “에그 저런! 이렇게 고기가 많이 있는데 이를 모르고 지나 가는구나...”
    내가 혼잣말을 했다. 잽싸게 옆의 어떤이가
    “그냥 가야지 그 놈들이 몽땅 고기를 잡아먹으면 씨가 마르잖아요?”
    “그러네요” 하릴 없이 내가 한방 먹은 기분이다. 하지만 잽싼 고기를 잡아 먹기엔
    오리들이 너무나 굼띄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냇가 좁다란 노변에 피어 있던 노란 꽃들이 이미 져서 꽃씨를 맺어
    조금은 지저분하다. 군데군데 물줄기가 끊긴 자리에는 푸르고 누런 이끼가 만연이다.
    조금 고인 물가 바위 위에 매끈하게 잘 생긴 해오라기 한마리가 도망칠 생각을 안 하고
    우리를 물그러미 쳐다본다. 고기를 못잡아 허기가 졌나...  

    탄천 본류로 나갔다. 지난봄만 해도 인도교 바로 아래에 하얗게 피어나서 향기를
    품어내 벌꿀을 불러 모으며 곱게 피었던 찔레꽃나무는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대신 네모나게 각이선 시멘트 계단들이 산뜻하게 만들어졌지만 순간 비정함을 느끼게
    한다. 그냥 찔레꽃 둥치를 살리면서 공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언제인가 병아리가
    죽나 안죽나 보려고 아파트 옥상에서 병아리를 날리던 어린아이들이 커서 저렇게
    삭막한 일꾼들이 된 건 아닐까...

    알려지기로는 북한강에서 물줄기를 끌어다 흘려보낸다는 넓은 탄천 냇물에서 바람결
    따라 역한 물 냄새가 코끝에 스친다. 우리는 큰 교각 위로 걸어 갔다. 저녁나절이라
    그런지 한 떼의 잉어들이 큰 입을 벌리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따라 몰려 다닌다.
    그 위로 오리 떼 역시 슬슬 유영을 하며 사람의 눈치를 살핀다. 물은 탁하고 먹을
    것이라곤  물이끼뿐인 그들이 조금은 가엽다. 아무리 자연에 의지해 살게 놔 두라고
    말리지만 먹이를 좀 준들 어떠할까...

    지나 번 먹이를 주던 글을 쓴 이후 한 번 더 빵부스러기를 들고 나와 오리들에게 던져
    주었는데 어디선가
    “오리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하고 어떤 허름한 잠바 차림의 사나이가 멀리서
    호통을 치는 통에 더 이상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집으로 귀갓길이다. 해가 기우니 탄천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조금 더 잦아 졌다.
    사람들이 지나면서 비끼는 바람결이 생각보다 세다. 보통 때는 느끼지 못한 사람들과의
    스침이 조금은 부담스럽다. 요즘 들어 부쩍 더 심해진 메르스에 대한 공포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렵게 한다. 오늘 아침 어떤 친한 문학회 후배가 강아지가 마스크를 한 영상을
    보내면서 '자기도 마스크를 샀노라'는 문자를 보내 왔다. 나는 이렇게 답신을 했다.

    “슬프게도 유행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잘 하셨어요. 서로 스치는 사람들의 온기가
    두려운 현실이 잘 적응이 안 되어요. 그렇죠?“
                                                             2015년 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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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적인 석양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