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곳 정원에도 추운 겨울이 오려하고 있다. 덩치가 제일 큰 감나무, 손이 닿지 않게 너무 높은 곳에 열려 있어서 미처 따지 못하고 좀 많이 남겨진 까치밥 감들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올해에는 감이 그리 많이 달리지 않았다. 어느해인가는 이 나무에 삼백오십여개 정도 달린 적이 있었는데 올해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해 마다 해거리를 한단다. 한해 많이 열리면 다음 해에는 덜 열리고... 오늘 따라 어디서 알고 왔는지 개똥지바퀴새, 까치, 참새들이 모여들어 제가끔 다른 소리로 우지지며 모두들 즐거운 듯 감 잔치를 벌리고 있다. 미쳐 잎이 지지 못하고 나무에 붙은 채로 서리를 맞아 오그라진 노란 단풍나무 잎을 떼어 내 보니 그 자리에 내년에 돋아 날, 뾰족하게 생겨난 새싹들이 묵은 잎으로 모자를 쓰듯이 하고 보호되어 있는 걸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결국 올해에 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시 다음 봄에 새 잎이나, 가지가 돋는 것이다. 추운 속에서도 내년을 위해서 푸른 잎을 그대로 싱싱하게 가지고 있는 석산 같은 야생초들을 보면서 자연의 오묘함을 느끼게 된다. 조금 더 추워지면 시들려나 지금은 한여름 같이 푸르다. 이제 가이스가 나무나 주목들의 여름내 웃자란 줄기와 잎들을 모양이 좋게 전지 가위로 잘라 손질을 하니 새로운 모습으로 산뜻하게 다시 돋 보인다. 처음에 이곳에 이사왔을 때에는 신 개발지역이라 풀 한포기 없는 민둥 마당이었다. 이 구름처럼 손질이 된 나무들은 그 후 하나 둘 작은 묘목을 사다 심어 키운것이다. 내 아이처럼 어떤 가지는 자르고 어떤 가지는 키우고 정성껏 손질을 해서 키운 나무라 정이 아주 깊게 들은 나무들이다. 처음에는 잔디를 심었었는데 나무들이 커져 그늘이 지니 잔디들이 조금씩 차차 죽어 버렸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나무들을 온 마당에 펴서 심어 오늘의 정원 모양이 되었다. 나무들도 계절에 맞지 않을 때 옮겨 심으면 그만 죽어 버린다. 몇해전 여름 큰 태풍이 불어 넘어져서 잘라버린 큰 상나무가 있던 빈자리에 심은 향나무가 죽어 버렸다. 그 자리에 이제 덩치가 커져서 있던 자리가 비좁아진 흰 영산홍을 옮겨심고 대신 그 나무를 옮긴 후 땅이 패인 자리에 오래된 모란을 옮겨 주었다. 모란은 오월에 꽃이 피면 햇볕이 너무 강하다 보니 단 며칠이 못가서 꽃잎 끝이 까맣게 타고 말라서 져버리는 걸 보고 안타까워서 큰나무 그늘 밑에 심었었다. 모란이 햇볕을 향해 가지를 뻗으려 하다보니 나무의 형태가 기형이 되어 있어서 햇볕이 좀 잘 비치는 자리로 옮겨 심었다. 지난 가을 한결회 동문들과 우리나라 서쪽 공주지역 유적지를 간적이 있었는데 그때 추사 김정희 선생의 고택을 탐방한적이 있었다, 아담한 전통 한옥 마당에 꽃과 잎이 다져버려 나목(裸木)으로 남은 모란의 가지 들의 오묘한 모양이 한옥과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참으로 운치가 있었다. 모든 야생화가 그간에 내린 무서리로 잎이 시들고 무참하게 말라버린 속에 꿋꿋 하게 피어 있는 자그마한 황국(黃菊)이 애련하다. 온갖 푸르름과 예쁜 꽃들로 가득하던 정원은 이제 늘푸른 주목과 키가 큰 가이스 가이나무와 도장 나무와 겨울에도 싱싱하게 푸른잎을 자랑하는 영산홍이 쓸쓸해진 겨울 정원에 검푸른 정복을 입은 근위병들 처럼 멋있게 정열해서 서 있다. 그런대로 잎이 다 져 버린 단풍나무와 박태기나무는 콩같이 생긴 갈색 씨주머니 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키가 삐죽이 큰 박태기 나무도 내년에 피어 날 꽃순을 잉태한 채 묵묵히 한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은 주황색 감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감나무가 이곳 정원에서는 총천연 색으로 모양이 제일 예쁘고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과일 나무이다. 나무 꼭대기에 주황색 까치밥 감들이 남아 있는 한 모양이 예쁜 새나 생김 새는 비록 못 생겼어도 지저귐이 아름다운 새들이 끊임 없이 찾아와서 우리 집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줄것이다. 2003년 12월 3일 ![]() (추사 김정희의 고택 마당의 모란) (정원의 봄 풍경) |

2015.11.20 03:24
높은 곳에 남겨진 까치밥에 온갖 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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