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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이길여 회장님]

          마음속에 감동을 전하는 멋진 리더
                                                                  심   영   보


  이길여 회장님은 저의 대학 4년 선배십니다.
  하지만 이름만 알고 있었지 얼굴을 뵌 적은 없었습니다. 이길여 회장님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된 것은 제 아내를 통해섭니다. 아내는 저와 전공은 다르지만, 평생 같은 자리에서 함께 병원을 해온 의사입니다. 아내가 여의사회 활동을 통해서 이길여 회장님을 먼저 알게 됐었습니다.

  처음 이길여 회장님을 뵌 것은 대한의사협회 기획조사이사 시절입니다.
제가 의협의 기획조사이사로 일하던 1991년에 이길여 회장님은 의협 부회장이셨습니다. 당시 의사협회의 부회장은 여섯 분이었는데 여성은 그 중 한 분뿐이었고, 상임이사 중에도 한두 분이 있을까 말까 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 임원은 구색을 갖추기 위한 경우가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길여 회장님은 여성 임원에 대한 그런 인식을 완전히 불식시키셨습니다.

  의사협회는 매주 한 번씩 상임이사회의를 열었는데, 임원 대부분이 개업의이거나 공직에 있어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주 한 요일의 아침 7시에 회의를 했는데, 이길여 회장님은 그 회의에 단 한 번도 빠지는 일이 없으셨습니다. 물론 지각도 하지 않고, 댁이 가장 거리가 먼 인천이었는데도 언제나 가장 먼저 와서 앉아계시곤 했습니다.
  저는 그 부지런함과 열의에 먼저 놀랐습니다.

  한번은 회의가 끝난 뒤, 이길여 회장님이 따로 조용히 찾으시더니, 회의석상에서 언급됐던 의료 정책적 이야기를 물어보시는 겁니다. 의사협회의 일은 의료제도, 의료정책 분야의 전 부문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의 개업의들은 알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실상 몰라도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길여 회장님 역시 개업의로 시작하셨고, 필요한 일은 관련임직원들이 다 알아서 할 때이니, 당연히 잘 모르는 부분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그럴 때 보통은 모르는 것도 그냥 넘어가기 마련인데 이길여 회장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일이든 모르는 것은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셨고, 아랫사람이라도 거리낌 없이 물어보셨습니다. 그 철저함이 아마도 큰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바탕이었으리라 생각하며 또 감탄했었습니다.
  그 열성이나 철두철미함보다, 이길여 회장님은 참 인자하고 유연하셨습니다. 이렇게 여성스럽고 보드라운 분이 어떻게 이 정도로 큰일을 해내셨을까 싶을 정도로요. 이길여 회장님이야말로 외유내강의 전형적인 인물이십니다.

  의협 기획조사이사 자리에서 물러난 1994년, 이길여 회장님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길재단에서 일하지 않겠느냐고 물어오셨습니다.
  물론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러자면 평생 아내와 함께 해오던 병원을 떠나야 하고, 매일같이 집에서 왕복 네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해야 했습니다. 그 때문에 몇 번을 안 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회장님께서는 차도 주고 집도 줄 테니 아예 인천으로 이사를 오라고까지 권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길재단에서 회장님을 도와드리기로 했습니다.

  이듬해에는 이길여 회장님이 의대 동창회장이 되셨습니다.
  저는 동창회 상임이사도 이미 10년 이상 해왔기 때문에 길재단 기획조정실장으로 재단 일과 동창회 일을 함께 도와드리게 됐습니다.
  길재단에서 일했던 시간은 회장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그때는 회장님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대학경영 등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때라, 회장님이 어떻게 일을 하시는지, 또 어떻게 해서 성공할 수 있으셨는지를 알 수 있었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이길여 회장님은 세상을 바라보고 앞을 내다보는 눈이 정말로 남다른 분이었습니다. 또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다시 되돌아가 본 후에 건널 정도로 신중하고 치밀한 분이었습니다.
  회장님이 뭔가를 시작하실 때는 먼저 이러한 방향으로 가고 싶으니 한번 사정을 파악해 보라고 지시를 하십니다, 주변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걸 다 들어보기는 하시되, 하나하나 자세히 체크하고 확인 또 확인하십니다. 또 그 입장과 반대되는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말도 들어봅니다.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끝까지 안 건너가실 때도 있습니다.
  이길여 회장님이 이루신 것들은 아마도 다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패가 별로 없으셨겠지요.

  의대 동창회장으로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동창회장으로서 이 회장님은 우선 선배들을 한없이 존경하고 깍듯하게 모시는 분이었습니다.
  사실 이길여 회장님이 동창회장이 되셨을 때, 남자 동문 중에서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의대 동창회장을 여자가 하다니, 우리 남자들은 무슨 낯이란 말인가'라며, 앞에서 대놓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모른 척 넘어가시면서 그런 선배님들에게는 오히려 더 깍듯하게 예의를 갖췄습니다.

  결국, 반대의 목소리는 어느 샌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이길여 회장님의 재임 10년 기간 중에 직접 발의하여 추진한 동창회 사업으로, 가장 큰일이자 우여곡절이 많았던 일은 역시 함춘회관의 건립이었습니다.
1997년부터 모금과 건립을 시작해 2002년에 준공이 됐으니, 무려 5년간에 걸친 사업이었고, 또 중간에 IMF외환위기라는 경제위기가 있어 더 힘들었던 사업이었습니다.

  처음 모금의 목표는 30억 원. 추진위원 네 명과 회장님은 이 금액을 어떻게 모금할 것인지를 가지고 논의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동창회 분위기로는 불가능한 금액이었습니다.
  회장님이 먼저 물으셨습니다.
  "내가 얼마를 내면 이 목표액을 달성할 수 있겠습니까?"
  "10% 정도를 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자, 회장님은 두말없이 3억 원을 출연하셨습니다.
동문 중에 목돈을 낼만한 분들에게는 직접 부탁도 하셔서 모금 시작 단계에서 목표액의 25% 수준인 7억 원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30억 원의 목표액은 모두 확보됐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젊은 교수들의 반대였습니다.
건축 중에 공사 차량 진입을 막는가 하면, 동창회관이 들어설 곳에 있던 은행나무 여섯 그루를 없애면 안 된다는 식으로 끝까지 동창회관 건립을 반대 훼방했습니다.
  그것을 돌파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회장님이었습니다.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시겠다싶을 지경에서도 참고 또 설득하신 덕에 동창회관은 결국 목표한대로 준공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길여 회장님이 아니었다면, 의대 동창회관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단과대학 동창회관으로는 우리나라 최초인 함춘회관이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총동창회관을 가진 대학교도 서울대, 연대, 고대, 한양대, 건국대 등 다섯 개 대학교밖에 없을 때였습니다.

  동창회관이 건립되면서 회비만으로 운영되던 동창회에는 상당한 수입원이 생겼습니다.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소득 등으로 많은 사업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학술연구재단에 매년 8000만 원에서 1억 원씩을 적립했고, 함춘의학상과 함춘대상, 장기려의도상 등 여러 상을 제정해 각각 2000만 원에서 3000만 원까지의 상금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의학발전과 올바른 의사상의 정립에 공로가 큰 분들에게 격려가 될 수 있었고, 서울대 의대동창회의 지향점을 세울 수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모교 도서관에도 함춘재(신간서적코너)를 만들어 매년 신간 서적 100~200권(1500~2000만 원 상당)을 기증했습니다.
  동창회관을 건립함으로써, 모교와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게 됐고, 동창회의 역할도 몰라보게 커진 셈입니다.

  가까이 모시면서 뵌 이길여 회장님은 기본적으로는 일을 맡기면서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일은 반드시 책임을 지는 진정한 리더셨습니다. 돈을 써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앞장서서 쓰고,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서 해결하셨습니다.

  미주 동창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미주 동창회는 매년 한 번씩 꼭 부부 동반 모임으로 치러집니다. 동창회관 건립을 위해서 한창 모금 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축사하러 나오신 회장님이 동문 부인들을 향해서 농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서울대 의대 출신 남편을 두어서 그래도 평생 꽤 자랑스러우셨지요? 그러니 여러분 아드님들 학교에만 기부하지 마시고, 남편의 모교를 위해서도 기부 좀 해주십시오."
  뜻하지 않은 농담에 박장대소가 터졌습니다. 사실 아내의 허락 없이는 기부도 어렵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부인들을 공략한 것이지요. 그것도 유머를 섞어서 하니, 내는 사람도 기분 좋게 성금을 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이길여 스타일입니다.

  또 한 번은 미주동창회 때문에 수행출장을 다녀온 뒤의 일이었습니다.
  그해는 미국 수행 시에 필요한 경비로 준비해갔던 현금이 얼마간 남았습니다. 주로 도네이션을 하기 위해 가져가는 것이라 액수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걸 반납하기 위해 챙겨두었는데, 잘 챙겨둔다고 둔 것이 어디다 두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두었을 만한 데를 찾아 심지어 화장실까지 다 뒤져도 6천 달러 가까이나 되는 큰돈이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찾다가 결국 못 찾고, 옆방의 회장실을 찾아가 이실직고를 했습니다.
  "회장님, 아무리 찾아도 돈이 없습니다."
  내 말을 들은 회장님은 선뜻 말씀하셨습니다.
  "그거 쓴 셈 쳐요. 나도 쓴 셈 칠 테니까, 그냥 잊어버려요."
  당시엔 얼마나 고마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나쁘게 보려면 한없이 나쁘게도 볼 수 있었을 텐데, 한마디로 저의 고민을 해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틀 뒤인가, 응접실 탁자 서랍 속에서 돈을 찾아 다시 보고 드리니 회장님은 또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요. 그거 어떻게 했을 사람도 아니고."
  회장님은 한 번 신뢰한 사람에게는 그렇게 끝까지 믿음을 주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든 회장님과 함께하면 일이 고될지언정, 신나게 일할 수가 있습니다.

  4년을 길재단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는 동안, 이길여 회장님의 사업영역은 날로 넓어졌습니다. 재정난을 겪던 길대학(과거의 경기전문대)을 인수해서 육영교육 사업에 진출하시고, 경인일보를 인수해 언론사도 경영하게 됐습니다.
  내가 아는 범위는 의료관련 영역일 뿐인데, 이 정도의 그룹을 끌어가려면 좀 더 합당한 인물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의도 들어왔습니다.
  이러저러해서 그만두어야겠다고 회장님께 말씀드렸더니, 회장님은 당신의 임기 동안 동창회 일을 계속 도와준다는 데 동의하면 놔 주겠다고 조건부로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축하해주고 싶은데 뭘 해줄까?" 하고 물으시는 겁니다.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해서, "심평원에 가봤더니 거기는 전용 팩스가 따로 없어서 좀 불편하겠더군요."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심평원 처음 출근하는 날, 잊지 않고 전용 팩스를 설치해주셨습니다.

  언제나 정이 넘치시는 이길여 회장님.
  어쩌면 회장님의 가장 큰 사업의 방식은 만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언젠가 회장님은 점술가가 한 얘기를 해주시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셨습니다.  한 점술가가 회장님을 보고, 여든 살까지 일을 할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믿지도 않는 분이 오래도록 일할 수 있다는 사실에 그렇게 좋아하시는 걸 보며 참 맑고 순수한 분이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회장님은 그 여든 살을 훌쩍 넘기셨고, 그 말대로 40, 50대 청춘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일하고 계십니다. 그때에 비하면 회장님의 영역은 훨씬 커졌지만, 회장님은 아직도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 열정은 아마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철의 여인처럼 철두철미하시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도 부드럽고 여성적이며 정이 넘치시는 이길여 회장님. 회장님은 한마디로 진정 멋있는 리더십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기만을 바랍니다.  <2013.6.15./‘가슴에 품은 청진기’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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