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T.V.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황새의 생태를 방영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인도에서 북쪽으로 가기 위해 세계의 최고봉 히말라야산 맥을 날아서
넘어 갈적에 기류가 좋은 때 날아 가면 좋겠지만 어쩌다가 그 드높은 하늘 위에서
난기류를 만나게도 된다.
그때에 가벼운 새의 날개 깃이 뒤집히면서 그냥 지리멸렬하게 된다.다시 정신을
차리고 애써서 날아왔던 머나먼 원점인 인도로 돌아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다시 날씨가 화창하고 좋은 날을 택해서 상승 기류를 타고 날아 오르면 힘든 날개를
좀 쉬기도 하면서 운이 좋게 산을 넘게도 된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운이 좋은것만
은 아니다.
그곳에도 이들을 노리고 있는 검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이들중에 병이 들거나
약해서 낙오되는 놈이 없나 하고 또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무리중에는 처음 나르는 어린 것도 있고 늙어서 이제 다시 그 길을 날을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그 중에 어린 황새를 알아보고 이를 무리에서 따로 떨어지
게 교란을 한다. 독수리가 잡아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보았다.
느닷없이 당한 일에 그 새끼 새 어미의 당황하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 없다.
그러나 그들의 대열에서 자칫 잘 못하여 이탈되면 그 어미마저 죽을 수 있으므로
그냥 포기하고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순간순간을
선택의 기로에 서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모든 어미는 자기의 새끼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도 똑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만 뜨면 핥아주고 제 새끼를 키우기 위해서 이미 제 목안에 넘어간 먹이 마저
토해서 먹이고... 맹금류의 표본인 그 어미 독수리가 제 어린것에게 먹이를 잘게
저며서 먹일때 갸웃거리며 그 사랑스워 하는 눈매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다 넘어간 맛있는 먹이를 토해 내자면 또 얼마만한 인내가 필요할까....)
개중에 뻐꾸기처럼 제 어린것을 남의 둥지에 맡겨서 키우는 염치없는 종류도 있지
만 이도 그들 몸에 숨어 있는 유전인자가 그리한다니 이해할수 밖에 ...
오늘을 살아가면서 갈수록 나날이 용기가 없어지면서 공연히 불안하다. 어느 때는
늘 하는 일이면서도 이일을 해야 되나 어쩌나 심각하게 갈등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결정을 내려야 되는 때가 종종 있다.
지난 번에에도 포항쪽 여행을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를 결정하기까지는 상당히
고민을 했었다. 그 여행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체력 단련을 위해 아파트 주변을
열심히 걸었지만 뜻하지 않은 견비통이라는 복병을 만나 결국은 끝내 여행을
포기 해야만 되었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온후 다른 병원은 다 옮겼으나 치과를 옮기지 못했다.
치료 기술의 특성상 이것은 결과가 좋아야 되므로 잘 선택해 한다. 한번의 실수도
용인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의사의 성실성도 문제가 됨으로 상당히 고민을 해서
결정을 해야 되는 일이다. 먼저 살던 곳의 병원을 가자니 너무 멀고 새로운 곳은
낯이 설고...
삶을 영위한다는 자체가 이처럼 언제나 선택을 해야만 되는 상황이다.
하루하루의 삶이 선택의 연속이다. 요즘 처럼 장마철에는 흐린 하늘을 처다 보며
무겁기도 하지만 성가신 우산을 들고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하는 가벼운 고민도
하게 된다.
나만이 겪는 고통인가 싶지만 사람마다 제 몫의 고충은 있게 마련, 그런 때마다
히말라야산맥을 넘는 황새무리를 생각해 본다. 어려운 일을 당할때마다 그 새들보
다 훨씬 현명한 판단력과 기회를 가진 우리는 인간이기에 더 많은 선택의 폭이
있는 것이라고 자위하게 된다.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그때 마다 현명하게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