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835 추천 수 13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개원의(開院醫)의 보람과 갈등(하)
                                                                      심   영   보

○ 멍 에 를 짊 어 지 고

   (1) 소신진료와 분쟁대책의 함수

   의사는 누구나 환자에 대해 자기 소신껏 진료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진단과정에서 이 검사와 저 촬영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치료과정에서 이 약(藥)이나 저 용량(用量)을 쓰고 싶어도 소신대로 쓸 수 없으며 통원치료냐 입원치료냐 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없다. 이런 세세한 선택을 모두 법과 규정 그리고 제도가 묶어놓고 있기 때문인데, 의료법(시행령, 시행규칙 포함)과 관련 법규들을 필두로 만능의 족쇄인 국민건강보험법(의료보험제도의 근간이 되는 법)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의료보험제도가 사회주의적 이념을 근간으로 해서 최소수가(酬價)체계를 채택함으로써 대다수 개원의들의 안정적 의원경영 까지를 위협하고 있는데다가, 국민건강보험법과 관련 규정들을 운영하는 위정자들이 모든 의사들을 잠재적인 범법자인 것처럼 법을 운영하고 있어서 개원의들의 자존심과 사기마저 떨어뜨리고 있다.

   이렇듯 소신진료를 할 수 없게 얽어놓은 체제에 더해서, 자칫하면 발생할지도 모를 의료분쟁은 날로 악성화, 폭력화, 관습화 되어가고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없어 개원의의 진료 의욕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더구나 근년에 이르러 각종 의료분쟁재판에 있어서 법원의 법률 운용방향이 점차 개연성 판결이나 가해자 입증주의를 늘려가고 있는 추세여서 개원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오늘날 많은 개원 전문의들은 조금만 애매하거나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병이라도, 그리고 사소한 수술처치나 분만 등도 다루려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가 배우고 익힌 많은 의학적 기능이 사장되고 있고 이런 결과는 비단 의사 개인의 손해로 그치지 않고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로 남게 된다.

   (2) 학구적 욕망, 그 영원한 선망

   의학이 담고 있는 두 개의 축의 하나가 ‘진료’라면 다른 하나는 ‘학문으로서의 의학’인데 이 의학만큼 매력 있는 학문도 그리 흔치 않다. 의학이 내포하고 있는 그 무궁한 과학성은 말할 것도 없고 또 그 과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오묘함은 거기에 접근해 본 누구에게나 마력과 같은 존재로 각인된다.

   그러나 의사가 일단 개원의가 되고나면 이런 매력에의 접근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의사는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말은 맞지만, 그리고 일상적인 진료업무 속에도 공부하고 연구할만한 소재가 무진장 감춰져 있지만, 이런 것들을 찾아내 체계적으로 엮고 학문적인 결과나 결론을 추출하려면 상응한 환경과 시간적 여유와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자가 필요한데 그런 여건은 갖춰져 있지 못한 게 사실이다.

   개원의 생활을 하는 중에도 남다른 의욕으로 학위공부를 더 하는 유일한 경우를 제외하면, 학문에 대한 접근성도 아주 낮고 진료와 관련하여 활용할 수 있는 기회도 거의 없는 ‘학문에 대한 의욕’은 개원의에게는 영원한 선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원의는 학문적으로는 “의사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3) 족쇄가 된 국민건강보험제도

   지금 국가가 시행하고 있는 전 국민 의료보험으로서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이 제도가 처음 도입되던 1977년 당시의 국민 1인당 GNP 가 $700 에 불과했을 만큼 사회적 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따라서 응능부담(應能負擔: 소득에 비례한 보험료 납부)에 균등급여(均等給與:보험료 납부등급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균등한 의료 서비스 제공 )라는 사회주의적 이념이 지나치게 강조되었고, 이후 30 여 년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이 제도가 위정자와 정치인들의 입신과 생색내기 등에 이용되어 왔다. 결국 이제는 이 제도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봐야 오늘날의 국민 1인당 GDP $ 20,000 에 어울리는 국가기간제도로 거듭 날수 있겠는가가 가늠되지 않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의료의 원가개념을 파괴하는 수가체계와 규격진료 강요 등의 각종 통제는 이 제도의 파행과 왜곡을 부추겨 온갖 변칙과 탈법, 부정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당장 의료공급자(의사)와 의료수급자(환자/국민)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
   의료의 질(質)이 낮아지고, 국민과 의사간의 신뢰가 무너지며, 의학의 학문적 발전이 저해되는 현상은 총체적으로 국가적 손실이기까지 하다.

   개원의는 누구나 예외 없이 격어야 할 이 원천적 족쇄로서의 의료보험제도는 개원의들로 하여금 의원운영의 어려움에 당하여 대안 없음에 절망하게 하고, 환자로 부터의 신뢰를 잃게 함으로써 스스로 부끄러움을 가눌 수 없게 하며, 때로는 내 어쩌다 의사가 되었던가 하는 회한을 품게도 한다.
   그러나 개원의는 어쩔 수 없이 이 악법과 대항하면서 이 각박한 제도에 바탕을 둔 의원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해 나가야 한다.

   (4) 신기루(蜃氣樓), ‘치부(致富)’ 와 노후대비

   의사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의 다수는 의사 특히 개원의가 창출할 수 있는 ‘치부’ 내지는 ‘생활의 안정’을 가장 큰 매력 요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 희망은 한낱 신기루에 불과할 수 있다.
   그것은 상당한 의학적 기능과 투자를 바탕으로 하고 거기에 상응한 경영술과 비상한 노력이 겸비되었을 때에만 성취 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서 배우자나 가족 중에 출중한 이재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곁에 있어 도와준다면 목표에 이를 수 있는 가능성이 배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여건에서의 치부나 생활의 안정은 의사라는 직업만의 독특한 현상도 아니다.
   더구나 의사 직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부(富)”의 등급을 ‘풍족한 생활수준 군(群)’, ‘근근한 생활유지수준 군’, ‘의사로서의 적정한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수준 군’으로 3등분 했을 경우 대략 2 : 3 : 5 의 비율로 점유된다고 보면 매우 사실적인데 이런 비율은 다른 많은 직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보인다고 판단된다.
   하물며 남보다 더 많은 학업기간과 학비와 노력을 감안한다면 대다수의 의사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본다.

   개원의에게 있어 치부나 생활안정은 누구나 성취할 수 있기도 하고 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쉽게 잡히지 않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개원의들은 그의 노후대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자칫 “개원의에게는 정년(停年)이 없다” 는 허구적 구호에 빠진다면 언젠가 훗날 자기의 신체도 기능도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좌절과 공황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5) 개원(開院)의 어려움: 선택과 유지

   의원을 개설하여 진료와 경영을 동시에 수행하는 개원의(開院醫)가 되는 것은 법률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의사 누구에게나 허용된 일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사가 면허자격 취득 직후부터 또는 여러 가지 직역을 거친 뒤 자유롭게 개원의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얘기이고 의사가 의원을 개설하여 운영하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다. 그중 대표적인 사항 몇 가지만 짚어 본다.

   첫째는 위치 선정하기의 어려움이다.
   진료과목, 진료규모, 운영형태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 크게 좌우될 테지만, 의원 개설의 위치를 대도시, 중소도시, 농어촌지방 어디로 할 것인가, 도시지역일 경우 대로변, 상가 중심, 주거지역 어디가 좋을 가... 하는 등의 결정이 개원 성공의 중요 요소가 되는데 오늘날과 같은 개원의원의 범람과 과잉경쟁의 시대에는 어디를 둘러봐도 만만한데가 없다.

   둘째는 기초 투자자금 마련의 어려움이다.
   진료과목과 개설 위치와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요즈음의 의원개설은 크게, 넓게, 눈에 잘 띄게, 화려하게 꾸미고 고급 고가 장비를 들여놓고, 넉넉한 부대시설을 갖추고, 많은 종업원을 거느리는 쪽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어서 개원 자체가 엄청난 기초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의사의 본격적인 ‘의업출발’에 이렇듯 적잖은 자금이 소요되므로 상속재산이나 재정지원자가 없는 사람은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고 더구나 빚(負債)으로 출발하는 경우에는 자칫 수렁에서 헤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셋째는 경영 유지의 어려움이다.
   적당한 자리에 적정한 시설과 인력을 갖춰 놨다 하더라도 이를 널리 알려서 두루 찾아오게 하고 오는 환자들을 잘 치료해 주어 만족함을 갖게 하며 그들이 다시 새로운 고객유치의 끈이 되게 하는 일은 또 다른 노력과 능력의 결과이다.
   진료 분위기의 조성과 유지, 원만한 인력관리, 대내외 홍보 전략의 수행, 끊임없는 수익창출에의 노력, 신지식에 대한 무한한 관심과 도입, 직원 후생과 납세 문제에의 유념... 등 개원의가 돌봐야 할 진료외적 업무들은 무궁무진하다.

   넷째로 개원의가 유념해야 할 어려움은 또 있다.
   의원경영이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루어서 재정적 안정 또는 그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그가 여기에 이르기 위해 의사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았어야 하며 또 앞으로도 주위로 부터 손가락질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웃 의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고 상호 협조적 이어야 함은 물론이고 자기가 소속한 각급 의사단체나 직역단체에의 참여와 협력도 빼놓을 수없는 덕목이다.

○ 꼬 리 글

   의사가 그의 일평생을 개원의로서 마감할 때 지난날들을 돌아본다면 아마 남달리 아쉬운 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쉬움이 어떤 것이건 은퇴의 시점에서 후회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런 후회를 최소한으로 하려면 아직 현역으로 있는 동안에도 틈틈이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자문(自問)해 볼 것을 제안한다.

   (1) 보람찬 직업이었나?
    내가 지금 수행하고 있는 이 직업, 이 형태의 유지가 보람찬가? 내가 장차 다시 태어나더라도 서슴없이 또 다시 선택 할 만한가? 나의 자식에게 ‘나의 복제(複製)’를 권할 만큼 당당하고 자랑스러운가?

   (2) 행복한 일생이었나?
   내가 여태껏 지내온 일생이 “의사 이전의 하나의 인간(人間)”으로서도 행복한 일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라와 사회(좁게는 의료계)에 대하여도 내 분수에 어울리는 만큼쯤은 이바지 해 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3) 가장(家長)으로서 충실한가?
   내 한평생을 살아오면서 지게 된 가장 큰 짐은 일가의 가장(家長)으로서의 책임인데, 과연 나는 가장으로서 떳떳한가? 만족하였나? 가족에 대해 충실했나? 가족들도 그렇게 인정하나? 나아가 이웃이나 동료, 지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가?          (하) 끝.

      [이길여 편저 “의학과 의료”, p 423-431,(주)나남 2008]
      [필자 약력] 서울의대('61 년) 졸, 외과전문의,
                        전 심영보외과의원 원장,   전 대한의사협회 기획조사이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97 기차는 8시에 떠나네 Agnes Baltsa 조수미 1 김화섭 2017.12.23 729
6496 우리7회동기님 여러분!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이용분 2017.12.22 667
6495 눈길 빙판길 조심하세요..(동영상) 이용분 2017.12.18 672
6494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노후... 이용분 2017.12.17 599
» [南齋晩筆](6-2) 개원의(開院醫)의 보람과 갈등(하) 심영보 2017.12.10 835
6492 [南齋晩筆](6-1) 개원의(開院醫)의 보람과 갈등(상) 심영보 2017.12.10 754
6491 2017년도 정기총동창회 및 송년회에 참석하다 이용분 2017.12.06 835
6490 2017년도 정기총동창회 및 송년회 개최- 이용분 2017.12.04 1011
6489 스트레스 때문에 고민하는 환자들... 이용분 2017.11.30 1107
6488 Mic Drop-방탄 소년단 (BTS) 1 김화섭 2017.11.27 1098
6487 가을채비 이용분 2017.11.24 1241
6486 [南齋晩筆](5) 白頭山 天池 紀行 2題 심영보 2017.11.09 1155
6485 가을속 이야기 이용분 2017.11.02 1295
6484 Steve Jobs의 마지막 메모 이용분 2017.10.27 1091
6483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서... 이용분 2017.10.13 1196
6482 추석!! 모두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으로 충만 되는듯 ... 이용분 2017.10.05 1338
6481 향수-정지용 김화섭 2017.10.03 1347
6480 人生 김화섭 2017.09.30 1163
6479 한달전부터 내 추석빔을 만드시던 어머님 ... 이용분 2017.09.30 1001
6478 7회 광능숲 가을여행의 낙수(2013.10.11) 이용분 2017.09.24 1072
Board Pagination Prev 1 ...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 358 Next
/ 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