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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8 18:41

노인과 배달맨

조회 수 862 추천 수 1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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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과 배달맨                      청초     이용분

      앞으로 평균 100세를 살게 됐다고 사람들은 기염을 토한다. 실제 T.V.에
      비치는 장수 노인들의 건강한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도 있게 됐다.
      그래도 거기에 훨씬 못 미치게 일찍 요절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재주가 아주
      많은 사람들이 비운의 사고로 젊어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그래서 인명은
      재천에 죽음에는 노소가 없다고도 한다.

      최근 페루의 수력발전소 건설을 탐사하러 갔다가 헬리콥터가 벼랑에 부딛쳐
      비참한 최후를 맞은 아까운 젊은이들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무척 아프게 한다.
      본인은 말 할 나위도 없지만 살아있는 가족들의 비탄을 어떻게 겪어 낼지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한편 노후 준비가 없이 맞이하는 장수는 큰 재앙이라 한다. 젊어서는 버는 족족
      가족들의 생계비 내지 아이들의 교육비로 모든 돈을 써 버렸다. 게다가 결혼도
      시키고 자식들이 차질없이 인생을 시작하도록 나름대로 전력 투구하였다.

      이제 몸은 늙고 돈을 벌 기회도 별로 닿지 않는다. 돈도 젊어야 끼지 나이가 들면
      그게 붙지를 않는다고 옛 어른들이 말을 한바 있다. 병원에 갈일은 그득한데
      수중에 모아 놓은 돈이 없다고 하면 앞으로 살아 갈일이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길거리에서 파지를 줍거나 노인들이 전철 안에서 승객이 다 읽고 선반에 버린
      신문지 조각들을 줍는 일은 너무나 흔한 풍경이다. 그 파지의 단가가 정말 어이
      없이 낮아서 부부가 하루 왼종일 줍는다 해도 하루 만원짜리 한장을 손에 쥐기도
      쉽지 않지만 그 일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한다. 하루에 만원씩 벌어 한달 30만원
      이라면 은행에 1억원을 예치한 이자와 맞먹으니 무시할 수가 없는 금액이 된다고
      한다.

      붐비는 지하철 안 한옆에 정성스레 포장된 꽃다발을 들었거나 선물봉투 손잡이 끈에
      봉지봉지 줄을 길게 끼어서 배달을 하는 노인들을 이따끔 보게 된다. 보통 전철 칸
      문 앞 근처에 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바닥에 놓아두고는 무언가 수첩에 적은 걸
      드려다 보기도 하고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그 연세에 정말 눈동자도 반짝거리고 어엿한 직업을 가지고 너무나 급변해 가는
      요즘 세상에 갈파로운 이 사회의 일원으로 적극 참여 적은 용돈이라도 벌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이는 그들이 여간 보기가 좋은 게 아니다.

      그 중에 보면 꽤 값이 나가는 명품핸드백이나 고가의 옷도 있어 백화점이나 쇼핑몰
      주인에게 신임을 얻고 있다는 게 내 일처럼 흐뭇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관심만
      가졌을뿐 물어 볼 염을 못 내었다. 어느날 마침 깽 마른 어떤 남자 배달 노인과 옆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이렇게 배달을 하면 건당으로 돈을 받으시나요? 제대로 각각 배달도 해야 하고
      돈 계산도 해야 하고 아주 정신을 바짝 차려야되니 치매는 안 걸리시겠습니다.^^”
      내가 궁금하여 물었다.

      그러나 묵묵부답. 좀 신경질적으로 생긴 그 노인이 한참 있다 입을 열었다.
      “말도 마세요. 저렇게 문간에 놓으면 공연히 남의 물건에 툭툭 발길질을 하다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슬그머니 끌고 내려가는 놈이 없나. 아주 가관입니다.
      그런 일을 수도 없이 당해요.”
      "순간 문이 닫혀 버리면 어쩌지요?"

      너무나 의외의 답변에 나는 어안이 벙벙 해 졌다.
      “그럼 좌석에 앉아서 잠시 눈을 감고 편히 쉬지도 못하시겠네요.“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하고 만만하지만은 않구나...

      도처에 덫이 깔린 지뢰밭 처럼 그도 쉽지 않은 일일뿐이다.
      내가 세상에 걸던 따뜻하고 조그만 낭만과 기대가 무참히 깨어지는 순간이다.
                                                                                                                                                                                                       2012.6.14


                    (어느날 어린이 대공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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