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골 들녘에 새봄이 찾아 왔다. 두 부부가 흐트러진 지푸라기를 건성건성 걷고
있다. 소의 먹이로 주기 위해서란다. 왜 그리 늦었느냐 물으니 가을에 걷으려면 비가
오고 또 오고 마를 새가 없었단다. 자연이 허락하는 대로 이리 좀 늦게 걷은 들 어떠리.
남편은 짚단을 익숙하게 잘 묶지만 아낙은 서툴다. 자기는 이런 일을 해 보지 않아서
서툴단다. 순하게 자기를 인정하는 그 마음씨가 아름답다.
한 남자 노인은 무릎 속에 몸이 파묻힐 정도로 노쇠했다. 나이가 85세란다.
요즘은 산에 죽은 나무 가지들이 많아 주로 땔감은 이들 나무로 하는 것 같다.
해온 나무를 기운차게 도끼로 두툼한 통나무를 패는 게 아니라. 굵은 대못으로 나무에
찍고 다시 망치로 그를 내려 쳐서 겨우 통이 큰 나무를 쪼개서 땔감을 마련하여
군불을 땐다.
마나님은 마을 회관에 놀러가고 남편은 몸이 불편하여 집에 남았다. 이제 돌아 올
마나님을 위해 군불을 땐다. 그는 6.25 사변 때 군대를 가서 6년 동안 나라를 지켰단다.
그런 그가 늙어서 이제는 집을 지키는 호호 영감님이 되었다.
땅 마지기 농사를 짓는 부부인지 들녘에 할 일이 많다. 나이가 들고 몸이 노쇠하니
이제는 들일을 하기가 힘이 든다. 젊어서 아이들을 키울 때에는 먹기 살기가 힘들어
그저 땅만 사 모으느라 자식들을 제대로 공부를 못 시킨 게 한으로 남았다. 학벌이
낮으니 월급이 적어 힘든 세상을 살아가느라 제 자식들하고 고생을 하니 안쓰럽다.
부모에게도 제대로 용돈을 못 주는 자식들이 안타깝다. 공부는 많이 안 시키고 땅만을
산 지난날들이 후회로 남았단다.
이제 시골에는 젊은이는 없다. 주인과 함께 밭을 갈며 늙어버린 소와 강아지들만이
그들의 시름을 달래준다. 보통 시골집에는 벽에 가족사진을 죽 걸어 놓고 수시로 드려다
보며 산다. 젊어서는 참 촌스럽다고 생각되던 일이 요즘에 보면 정말 실질적이라 생각이
든다. 그까짓 격식이야 어떻든 수시로 온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지 않은가.
그래도 부부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축복이다. 남자가 시원찮으면 조금은 더 건강한
아내가 궂은일을 대신한다. 서로 위로와 다독거림이 되니 늙어서도 외롭지 않다.
일설에 한 마리 말이 끄는 짐의 무게는 6톤이지만 2마리가 끌면 12톤이 아니라 24톤의
힘이 생긴다 한다.
부부가 함께 살게 한 것은 조물주가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중에 하나인 것 같다.
남편이 먼저 가고 아낙이 홀로 남았다. 병원에 입원하여 5년 퇴원하여 몇 년을 병수
발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홀로 남아 고인의 영정 사진 앞에 자기 혼자 먹을
설에 남은 한 그릇의 떡국과 달랑 김치 반찬을 올려놓고 생전에 다정했던 고인을
그리워하며 기린다. 지금까지 글은 오늘 아침 T.V.에서 본 프로 이야기다.
요즘 들어 주변에 홀로 사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자칭 독거노인이라
일커른다. 그 외로움과 쓸쓸함을 어디에 비견할까. 온 천지가 막연하고 허전 해 보인다.
남편이 돌아 간 뒤 그 유품을 정리하지 않고 그냥 둔 채 외출하고 돌아오면 아직도
함께 살아 있는 듯이 마음으로 대화를 나눈단다. 그도 좋은 방법인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죽은 이는 얼른 떠나보내야 된다고들 한다. 모두 자식들이 있어도 혼자 사는
추세다. 아주 먼 곳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주변에서 보는 이야기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말년이 불행하지 않은 걸까. 차라리 시골에 묻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좋을까. 나이 들면 모두 시골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들 한다.
그러나 몸이 아프고 보면 늙을수록 병원근처에 살아야 된다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매일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아프면 열심히 서로 챙겨 병원에 가야 되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부부가 서로 밤사이 무사히 잘 잔 것에 감사하자.
항상 웃는 얼굴로 마주 보며 소중하게 하루하루 행복한 삶을 영위하여야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