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退生活 14 年의 回顧 (상)
심 영 보
O 隱退를 決心하다
나는 아무래도 역마직성이 든 사람인 것 같다.
대학생활 6 년 동안에 첫 해 빼고는 해마다 이런저런 구실을 붙이고 동료들을 끌어들여‘충청남도일주 무전여행’‘전국대학생 인천-제주간 해양훈련 참가’‘서울-부산 자전거여행’‘설악산 독도(讀圖)원정’등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군복무 중에는 자발적으로 월남(越南)파병을 지원해 가서 만 2 년을 넘게 험지에 근무하면서도 마치 장기간 해외에 출장여행 중 인양 지낸 것이라든지, 서울에서 병원을 개원한지 이제 겨우 5~6 년 밖에 안 되는 초년생이 일터를 제쳐두고 ‘초도 미국견문(初度 美國見聞)’에 나서 무려 한 달을 넘게 미국 동 서부를 훑어 돌아다닌 일 등이 그 방증일 터이다.
좁은 진료실이나 수술실에서 찌든 환자와 씨름하는 일이 고되면 고될수록 눈길은 자꾸 밖으로 나고 뭔가 새로운 세상, 새로운 풍경, 새로운 경험이 눈에 어른거렸다.
공직에 있는 동료들이 만65 세를 기준으로 일손을 놓는 것에 견주어 나도 그 때부터는 그래도 되지 않겠느냐는 핑계를 내세워 동업자인 아내를 설득했다. 깜짝 놀라는 아내에게 우리가 팔 다리가 성하고 보고 듣는 능력이 제대로일 수 있는 기간이 잘해야 앞으로 5 년에서 10 년밖에 더 안 남았으니, 서둘러 일을 접고 우리가 그 동안 일 때문에 시간 때문에 실행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일들을 두루 섭렵하며 남은 인생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즐기자고.
그렇다고 뭐 남들처럼 그렇게 넉넉히 챙겨놓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평생에 둘이서 벌어서 우리 집 대가족 돌보고 자식 키우고 먹고 쓰고도 이 병원 건물 하나는 남겼으니, 그거 하나 처분하면 우리의 여생을 지탱하는 데는 충분할 거라는 계산서도 펼쳐 보였다.
마음을 합치자 모든 것을 즉시 정리하고, 주거를 문화의 거리 ‘대학로’가 지근거리에 있는 혜화동 로터리 근처의 아파트로 옮겼다.
그리고 오래도록 다듬어왔던 Bucket List를 꺼내서 손질하기 시작했다.
O 世上 구경에 나서다
정말 처음에는 매우 조급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실제로 Bucket List 에 올린 항목은 산더미 같은데 그걸 앞으로 5 년 안에 다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체력이 넉넉할 동안에 먼 곳부터 여행해야 한다는 선험자의 조언대로 아프리카와 중남미대륙, 그리고 북유럽의 국가들, 이어서 인도를 비교적 초기에 돌아보았다.
이제는 그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만난 누 떼, 얼룩말 떼, 기린 무리, 사파리에서 마주친 야생 코끼리 사자 치타 앤털로프 홍학 등의 모습이며, 롯지 숙소에서의 하루 밤 경험, 빅토리아 폭포의 그 웅장함과 천지를 울리는 굉음, 그리고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Cruise Adventure(船遊冒險)의 추억은 그 때 찍은 사진을 다시 드려다 보지 않아도 금세 되살아난다.
중남미대륙에서의 경험인들 어찌 한 두 가지 뿐이랴.
페루의 옛 서울 쿠스코를 품고 있는 3200m 고지의 삭사이사만 요새에서 벌어진 ‘쿠스코 축제’의 장관은 그 현란한 원색 의상과 단체 율동, 그리고 살아있는 희생양의 심장을 칼로 도려 내 천신(天神)에게 공양하는 의식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어서 찾아 간 페루의 숨겨졌던 옛 잉카문명의 도시 ‘마추픽추’의 모습 또한 그림이 생생하다.
거대한 아마존의 강물을 따라 선유하면서 아직도 문명을 거부하며 원시림 속에서 벌거벗고 사는 부족마을을 찾아 그 곳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운 경험 역시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인도에서 내가 가장 의미심장하게 만난 곳은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변 이다. 갠지스강에 몸을 담가 그 물로 목욕하면서 속죄를 기원하는 신도들로 강변은 항상 붐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는 무(無)에서 나서 무(無)로 돌아가는 인생의 무상(無常)을 상징하는 ‘성자(聖者)’의 모습을 거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름이 좋아 성자이지 겉모습은 걸인(乞人) 바로 그대로다. 그들은 죽은 뒤에 자신을 화장하는데 쓰일 장작 살 돈을 구걸하고 있다고 한다.
갠지스강변의 한 쪽에는 노천에서 그대로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터 ‘가트’(ghat)가 줄지어 있어 송장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 앞을 흐르는 강물 위에는 타다 만 시신 여러 구가 둥실둥실 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중동지역 여행에서 절실하게 다가온다. 인류문명의 또 다른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중동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전역과 나아가서는 남북 미주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의 문명을 지배할 3대 종교가 발상하고, 그 종교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살상하고 파괴하면서 수천 년의 세계사를 써 내려왔다는 사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정신적으로 의존해 온 종교의 흔적 중에서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을 비롯한 중동 여러 나라의 기독교 유적들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보르브두르 사원 등의 불교, 힌두교 유적들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정교하고 웅대하고 또한 장엄한데, 이 신(神)의 산물들이 이토록 방치되고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보면 인류구제의 종교적 사명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남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질감을 가장 적게 느낀 나라는 아마 일본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은 그들의 핏속에 얼마간의 우리 피가 섞여있다는 고증적 사실 외에도, 그들이 사는 곳곳 특히 남부 일본지역에서 우리 문화가 전래해 간 흔적들을 자주 만날 수 있고 먹거리를 비롯한 많은 생활양식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깔끔하고 상냥한 태도, 겸손하고 속임수 없는 행동들은 모두 우리로부터 배워 간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한반도 넓이의 50 배, 그러니까 대한민국 영토의 100 배가 넘는 광활한 대륙국가 중국을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라도 둘러보는 데에는 아마 열 번도 훨씬 넘는 행보가 있었던 것 같다.
가는 곳에서 마다 마주치는 경이롭고 신묘한 자연경관이며 지질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문명의 발상지다운 유구한 역사의 유물들, 그리고 그것들을 낳은 다양한 민족, 다양한 민속,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들은 몇몇 날정도의 과객의 눈으로는 대강의 살핌 마저 버거울 뿐이다.
다만 그런 형편에서도 뚜렷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은 모든 인류의 기본 행태가 먹고 살아야 하는 개체 보존의 본능과 대대로 이어져 살아가야 하는 종족 보존의 본능에 닿아 있다는 사실이며, 민족도 민속도 사상도 종교도 모두가 판이한 티벳족 이나 위구르족 등을 소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억지 품고 있는 거대한 중국의 독특한 국가체제와 사회제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탱될 것인가 하는 호기심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해외여행 한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곳은“백두산 천지(白頭山 天池)”이다.
내나라 내 땅 이면서도 남의 나라 땅을 밟고 찾아 간 것부터가 그러려니와, 평생을 두고 부르던 애국가의 첫 구절에 나오는 ‘백두산’이요 또한 ‘천지’가 아닌가?
한 눈에 다 닿지 않을 만큼 광활하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온통 품고 뿜어내는 양 안온(安穩)하고, 손을 담그면 선뜩 푸른 물이 들 듯 청람(靑藍)한 천지(天池)의 그 웅자(雄姿)를 어찌 내 필설로 다 이르랴.
나는 누가 내게 세계여행 하던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더냐 거나, 어디를 추천하겠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백두산’,‘천지’를 말한다.
어쩌면 내나라 내 땅을 밟고 갔더라면 그 감동이 그만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서 보니 ‘백두산’ 이름은 중국이름 ‘장백산(長白山)’으로 바뀌어 있고 산과 천지의 반쪽씩은 이미 중국령(中國領)으로 되어 있는 걸 보고 빼앗긴 산하에 대한 아쉬움이 더 해서 인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초기에는 조급한 마음에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여행지를 물색할 정도로 서둘렀기에 1 년에 10여 회씩 출국한 적도 여러 해 있었는데, 이러구러 5 년은커녕 10 년도 이미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1 년에 3~4 회씩 바깥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이 하늘의 은총(恩寵)이 아니고 무엇이랴.
은퇴한지 13 년이 넘은 이제 와서 손꼽아 헤어보니 벌써 백 번도 넘게 들 나거렸거늘 이걸 어찌 이 작은 지면에 모두 담으랴. 여기서 접어야겠다. (상 끝)
심 영 보
O 隱退를 決心하다
나는 아무래도 역마직성이 든 사람인 것 같다.
대학생활 6 년 동안에 첫 해 빼고는 해마다 이런저런 구실을 붙이고 동료들을 끌어들여‘충청남도일주 무전여행’‘전국대학생 인천-제주간 해양훈련 참가’‘서울-부산 자전거여행’‘설악산 독도(讀圖)원정’등을 감행했을 뿐만 아니라, 군복무 중에는 자발적으로 월남(越南)파병을 지원해 가서 만 2 년을 넘게 험지에 근무하면서도 마치 장기간 해외에 출장여행 중 인양 지낸 것이라든지, 서울에서 병원을 개원한지 이제 겨우 5~6 년 밖에 안 되는 초년생이 일터를 제쳐두고 ‘초도 미국견문(初度 美國見聞)’에 나서 무려 한 달을 넘게 미국 동 서부를 훑어 돌아다닌 일 등이 그 방증일 터이다.
좁은 진료실이나 수술실에서 찌든 환자와 씨름하는 일이 고되면 고될수록 눈길은 자꾸 밖으로 나고 뭔가 새로운 세상, 새로운 풍경, 새로운 경험이 눈에 어른거렸다.
공직에 있는 동료들이 만65 세를 기준으로 일손을 놓는 것에 견주어 나도 그 때부터는 그래도 되지 않겠느냐는 핑계를 내세워 동업자인 아내를 설득했다. 깜짝 놀라는 아내에게 우리가 팔 다리가 성하고 보고 듣는 능력이 제대로일 수 있는 기간이 잘해야 앞으로 5 년에서 10 년밖에 더 안 남았으니, 서둘러 일을 접고 우리가 그 동안 일 때문에 시간 때문에 실행하지 못해 아쉬워했던 일들을 두루 섭렵하며 남은 인생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즐기자고.
그렇다고 뭐 남들처럼 그렇게 넉넉히 챙겨놓은 것은 없지만, 그래도 평생에 둘이서 벌어서 우리 집 대가족 돌보고 자식 키우고 먹고 쓰고도 이 병원 건물 하나는 남겼으니, 그거 하나 처분하면 우리의 여생을 지탱하는 데는 충분할 거라는 계산서도 펼쳐 보였다.
마음을 합치자 모든 것을 즉시 정리하고, 주거를 문화의 거리 ‘대학로’가 지근거리에 있는 혜화동 로터리 근처의 아파트로 옮겼다.
그리고 오래도록 다듬어왔던 Bucket List를 꺼내서 손질하기 시작했다.
O 世上 구경에 나서다
정말 처음에는 매우 조급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 실제로 Bucket List 에 올린 항목은 산더미 같은데 그걸 앞으로 5 년 안에 다 실행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체력이 넉넉할 동안에 먼 곳부터 여행해야 한다는 선험자의 조언대로 아프리카와 중남미대륙, 그리고 북유럽의 국가들, 이어서 인도를 비교적 초기에 돌아보았다.
이제는 그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아프리카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만난 누 떼, 얼룩말 떼, 기린 무리, 사파리에서 마주친 야생 코끼리 사자 치타 앤털로프 홍학 등의 모습이며, 롯지 숙소에서의 하루 밤 경험, 빅토리아 폭포의 그 웅장함과 천지를 울리는 굉음, 그리고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Cruise Adventure(船遊冒險)의 추억은 그 때 찍은 사진을 다시 드려다 보지 않아도 금세 되살아난다.
중남미대륙에서의 경험인들 어찌 한 두 가지 뿐이랴.
페루의 옛 서울 쿠스코를 품고 있는 3200m 고지의 삭사이사만 요새에서 벌어진 ‘쿠스코 축제’의 장관은 그 현란한 원색 의상과 단체 율동, 그리고 살아있는 희생양의 심장을 칼로 도려 내 천신(天神)에게 공양하는 의식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어서 찾아 간 페루의 숨겨졌던 옛 잉카문명의 도시 ‘마추픽추’의 모습 또한 그림이 생생하다.
거대한 아마존의 강물을 따라 선유하면서 아직도 문명을 거부하며 원시림 속에서 벌거벗고 사는 부족마을을 찾아 그 곳 음식으로 한 끼를 때운 경험 역시 잊기 어려운 기억이다.
인도에서 내가 가장 의미심장하게 만난 곳은 힌두교의 성지인 바라나시의 갠지스강변 이다. 갠지스강에 몸을 담가 그 물로 목욕하면서 속죄를 기원하는 신도들로 강변은 항상 붐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는 무(無)에서 나서 무(無)로 돌아가는 인생의 무상(無常)을 상징하는 ‘성자(聖者)’의 모습을 거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이름이 좋아 성자이지 겉모습은 걸인(乞人) 바로 그대로다. 그들은 죽은 뒤에 자신을 화장하는데 쓰일 장작 살 돈을 구걸하고 있다고 한다.
갠지스강변의 한 쪽에는 노천에서 그대로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시신을 화장하는 화장터 ‘가트’(ghat)가 줄지어 있어 송장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 앞을 흐르는 강물 위에는 타다 만 시신 여러 구가 둥실둥실 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엄청난지는 중동지역 여행에서 절실하게 다가온다. 인류문명의 또 다른 발상지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중동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전역과 나아가서는 남북 미주대륙과 아프리카대륙의 문명을 지배할 3대 종교가 발상하고, 그 종교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살상하고 파괴하면서 수천 년의 세계사를 써 내려왔다는 사실이 그 증거일 것이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정신적으로 의존해 온 종교의 흔적 중에서 이스라엘, 레바논, 요르단을 비롯한 중동 여러 나라의 기독교 유적들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 인도네시아 족자카르타의 보르브두르 사원 등의 불교, 힌두교 유적들은 보는 이를 압도할 만큼 정교하고 웅대하고 또한 장엄한데, 이 신(神)의 산물들이 이토록 방치되고 버려져 있는 모습을 보면 인류구제의 종교적 사명도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남의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질감을 가장 적게 느낀 나라는 아마 일본이 아닌가 싶은데, 그것은 그들의 핏속에 얼마간의 우리 피가 섞여있다는 고증적 사실 외에도, 그들이 사는 곳곳 특히 남부 일본지역에서 우리 문화가 전래해 간 흔적들을 자주 만날 수 있고 먹거리를 비롯한 많은 생활양식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깔끔하고 상냥한 태도, 겸손하고 속임수 없는 행동들은 모두 우리로부터 배워 간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한반도 넓이의 50 배, 그러니까 대한민국 영토의 100 배가 넘는 광활한 대륙국가 중국을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라도 둘러보는 데에는 아마 열 번도 훨씬 넘는 행보가 있었던 것 같다.
가는 곳에서 마다 마주치는 경이롭고 신묘한 자연경관이며 지질형성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문명의 발상지다운 유구한 역사의 유물들, 그리고 그것들을 낳은 다양한 민족, 다양한 민속, 다양한 문화, 다양한 종교들은 몇몇 날정도의 과객의 눈으로는 대강의 살핌 마저 버거울 뿐이다.
다만 그런 형편에서도 뚜렷하게 살필 수 있는 것은 모든 인류의 기본 행태가 먹고 살아야 하는 개체 보존의 본능과 대대로 이어져 살아가야 하는 종족 보존의 본능에 닿아 있다는 사실이며, 민족도 민속도 사상도 종교도 모두가 판이한 티벳족 이나 위구르족 등을 소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억지 품고 있는 거대한 중국의 독특한 국가체제와 사회제도가 얼마나 오랫동안 지탱될 것인가 하는 호기심이다.
뭐니 뭐니 해도 내가 해외여행 한 중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곳은“백두산 천지(白頭山 天池)”이다.
내나라 내 땅 이면서도 남의 나라 땅을 밟고 찾아 간 것부터가 그러려니와, 평생을 두고 부르던 애국가의 첫 구절에 나오는 ‘백두산’이요 또한 ‘천지’가 아닌가?
한 눈에 다 닿지 않을 만큼 광활하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온통 품고 뿜어내는 양 안온(安穩)하고, 손을 담그면 선뜩 푸른 물이 들 듯 청람(靑藍)한 천지(天池)의 그 웅자(雄姿)를 어찌 내 필설로 다 이르랴.
나는 누가 내게 세계여행 하던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더냐 거나, 어디를 추천하겠느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백두산’,‘천지’를 말한다.
어쩌면 내나라 내 땅을 밟고 갔더라면 그 감동이 그만 못했을지도 모른다.
가서 보니 ‘백두산’ 이름은 중국이름 ‘장백산(長白山)’으로 바뀌어 있고 산과 천지의 반쪽씩은 이미 중국령(中國領)으로 되어 있는 걸 보고 빼앗긴 산하에 대한 아쉬움이 더 해서 인지도 모른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초기에는 조급한 마음에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다음 여행지를 물색할 정도로 서둘렀기에 1 년에 10여 회씩 출국한 적도 여러 해 있었는데, 이러구러 5 년은커녕 10 년도 이미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1 년에 3~4 회씩 바깥 여행을 즐기고 있으니 이것이 하늘의 은총(恩寵)이 아니고 무엇이랴.
은퇴한지 13 년이 넘은 이제 와서 손꼽아 헤어보니 벌써 백 번도 넘게 들 나거렸거늘 이걸 어찌 이 작은 지면에 모두 담으랴. 여기서 접어야겠다. (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