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齋晩筆](11)“翁(옹)”자 아호(雅號)를 가진 사람들

by 심영보 posted May 1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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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翁(옹)”자 아호(雅號)를 가진 사람들
                                                                심  영  보

◎ 내가 내 아호 ‘남재(南齋)’를 한 고우(故友)로부터 지어 받은 것처럼 나도 오래전부터 여러
친구들에게 아호를 지어 주기도 하고 헌시(獻詩)를 바치거나 해제(解題)를 써 주기도 해왔는데,
그런 과정에서 선인(先人)들의 아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翁(옹)”자가 들어간 아호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며 관찰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함의(含意)가 있는 이 “翁자 아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함의가, 해학(諧謔)과 철학(哲學)이 거기 숨어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간 이런저런 경우에서 “O 翁” 또는 “O O 翁”의 아호가 눈에 띌 때마다 따로
기록해 오다 보니 이미 30 여건이나 모아졌기에 여기에 정리해 보았다.
                    
◎ “옹(翁)” 자의 대표적인 훈(訓)은 “아비(父)”(넓은 의미에서의 ‘어르신’) 또는 “늙은이(老稱)”
이다. 따라서 선인(先人)들이 아호에 “옹(翁)”자를 넣어 “O 翁” 또는 “O O 翁”으로 자신의
아호(雅號)를 지었다면 그것은 스스로 늙은이로 행세하거나 호칭 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고, 또는
누가 그렇게 지어 주었다면 지어준 사람이 그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서 작호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예나 지금이나 늙은이는 덜 늙은 척하고 싶어 하고, 젊은이는 나이 더 먹은 사람인 척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 이다.
더구나 지체(세벌 世閥, 사회적 신분)나 품격(品格, 조직 속의 지위)에 비해 나이가 다소 낮으면
그걸 얼버무리는 수단으로 “옹(翁)자 아호”를 애호한 흔적도 보인다.

조선조 제22대 왕인 정조(正祖)<1752-1800>(49세 졸)가 그의 아호 ‘홍재(弘齋)’외에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모든 냇물에 골고루 비추는 밝은 달과 같은 주인 늙은이}을 쓴
것이나, 정약용(丁若鏞)<1762-1836>(75세 졸)이 그의 잘 알려진 아호 ‘다산(茶山)’
‘여유당(與猶堂)’ 외에 “탁옹(籜翁)”{죽순 껍질 같은 늙은이}을 그의 40대 때에 쓴 것이 그런 예일
것이다.
위의 두 사람은 같은 시기에 돈독한 군신(君臣)의 관계에 있었는데, 모두가 매우 젊은 시기에
상당한 높은 지위에 있었기에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었을지 모른다.   다만 이렇듯 둘
다가 젊은 시절에 ‘옹호(翁號)’를 썼음이 알려졌지만 신하(정약용)는 그의 주군(정조)이 사거한
이후에나 썼다는 점이 이채롭다 하겠다.

◎ “翁자 아호”는 그 속에 무언가 자신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무언가를
암시하는 오묘한 뜻을 품고 있기도 하다.
                                                  
○술독에 빠져 살기라도 했는가?
  *김명국(金明國)<생몰 미상, 1600경~?>(‘달마도(達磨圖)’로 유명한 조선 중기의 화가, 연담 蓮潭)은
      “취옹(醉翁, 술 취한 늙은이)”의 다른 아호를, 그리고
  *김홍도(金弘道)<1745~1815>(71세)(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檀園)는 “첩취옹(輒醉翁, 번번이
      취해 있는 늙은이)”의 또 다른 아호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 두 사람은 모두가 화가였는데 그들이 이런 낭만적인 아호를 그의
      그림에 낙관하는데 쓴 기록은 찾지 못하였다.

○서로 너무도 다른 세상을 겪은 두 사람이 있었다.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이었던 이서(李舒)<1332~1410>(79세)는 이성계 추대에 참여해 개국공신
     까지 된 사람인데 그의 아호는 “당옹(戇翁, 어리석고 고지식한 늙은이)”이라 했고,
  *조선초기의 학자이며 문인인 김시습(金時習)<1435~1493>(59세)은 단종-세조사(史)의
     생육신으로 남아 종내는 입산주유(入山周遊)한 처지를 표현했을까? 매월당(梅月堂) 외에 다시
     “췌세옹(贅世翁, 세상에 곁붙은 늙은이)”의 아호를 썼다.

○‘늙은이’ 아호를 가진 스님도 두 분이나 발견했다.  
  *한 분은 조선시대의 선승(禪僧) 일선(一禪)<1488~1568>(81세)으로 “휴옹(休翁, 쉬일 늙은이,
     넉넉한 늙은이)”의 아호를 썼는데, 16세에 출가하여 세랍 81세에 입적한 것을 보면 그 호는
     아마 그 호에 어울리게 연로해진 뒤에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또 한 분, 우리가 잘 아는 세대의 높은 선승 성철(性徹)<1912~1993>(82세) 스님은
     “퇴옹(退翁, 물러갈 늙은이, 겸양할 늙은이)”이란 아호를 썼다.
  위 두 분의 아호 어느 것이나 그 뜻을 알 듯 모를듯 한 것은 심오한 선역(禪域)이기 때문이리라.

○선역(禪域)의 “翁자 아호”가 승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정철(鄭澈) 윤선도(尹善道)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시가인(詩歌人)으로 불린
     박인로(朴仁老)<1561~1642>(82세)는 “무하옹(無何翁, 묻는 일이 없는 늙은이, 따지는 게
     없는 늙은 이)”의 아호를 썼고,
  *조선말, 일정시대를 함께 산 근대서화계몽운동가이며 서화가인 김규진(金圭鎭)<1868~1933>
     (66세)은 “무기옹(無己翁, 내가 없는 늙은이, 사사로움이 없는 늙은이)”의 아호를 썼는데
     어느 것이나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무기옹(無己翁)’을 쓴 김규진의 다른 아호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峰主人)’은 또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는 특히 활달한 대필서(大筆書) 현판을 많이 써서 지금도 궁궐 여러 곳과 전국의
     사찰에서 그의 다른 아호 ‘해강(海岡)’으로 새겨진 현판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 그가 지금 이
     세상에 없어도 아주 없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 아호 하면 단숨에 떠오르는 분이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다.
우리세대에 아주 가까운 시대를 살았고 엄청나게 많은 일화를 남기기도 했거니와 그의 많이
알려져 있는 아호 ‘추사(秋史)’나 ‘완당(阮堂)’ 이외에도 자작타작으로 무려 300여 개의 아호를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서 이래저래 널리 유명하다.
이렇게 많은 아호 중에 “翁號(옹호)”가 없을 수가 없다. 내가 찾아 놓은 것만도 두 개다.
“과옹(果翁, 과천 果川에 사는 늙은이)”과 “염옹(髥翁, 수염이 많은 늙은이)”.

김정희(金正喜)<1786~1856>(71세)는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로서 시서화(詩書畵) 모두에 능통하였다.
특히 서예에 있어서는 그의 독창적인 ‘추사체(秋史體)’를 완성하였고, 제주유배 중에 제자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迪)에게 그려 준 ‘세한도(歲寒圖)’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보(제180호)로 지정되어
세인의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만큼 알려져 있다.  
그는 말년의 10여 년간을 두 번의 유배(제주 9년 + 북청 3년)로 보내고, 해배되어 돌아와서는
부친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마쳤는데, 이를 인연으로 과천(果川)의 과(果)자가
들어 간 아호를 몇 개 더 가지고 있었으니 ‘과파(果坡)’, ‘노과(老果)’, ‘과옹(果翁)’ 등이 그것이다.

◎ 이렇듯 칩거지의 지명이나 자연경개를 따다가 ‘지킴이 늙은이’를 자임한 아호도 몇몇 눈에
띄었는데, 위의 과옹(果翁) 외에도 아래의 4 건을 찾았다.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1503~1557>(55세);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세상을 비관하고
     무등산 아래 ‘소쇄원(瀟灑園)’을 짓고 은둔하면서 자칭.
*“계옹(溪翁)” 김상용(金尙容)<1561~1637)(77세);조선 중후기의 문인, 시인, 정치가, 서예가.
     또 다른 호는 ‘선원(仙源)’, ‘풍계(楓溪)’.
*“탄옹(灘翁)” 이현(李袨)<1584~1637>(54세);조선 중기의 문신. 또 다른 호는 ‘월탄(月灘)’.
*“연옹(蓮翁)” “현옹(玄翁)” 윤덕희(尹德熙)<1685~1766>(82세);조선 후기의 서화가, 문신으로
     윤두서(尹斗緖)의 아들. 또 다른 호는 ‘낙서(駱西)’, ‘연포(蓮圃)’.

◎ 또한 활동기에 즐겨 쓰던 아호에서 한 자를 떼어다가 “O 옹(翁)”으로 늙은이를 자임한 것으로
보이는 옹호(翁號)도 여럿 발견 하였다.
*“춘옹(春翁)” ←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67세);조선 후기의 문신,                    
      성리학자, 정치가. 문묘(文廟) 해동18현(海東十八賢)의 하나.
*“정옹(貞翁)” ← ‘정곡(貞谷)’ 이수장(李壽長)<1661~1733>(73세);조선 후기의 서예가.
*“표옹(豹翁)” ←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1713~1791>(79세);조선 후기의 문인, 서화가, 평론가.
     시서화 삼절로 알려짐.
*“심옹(心翁)” ← ‘심재(心齋)’, “연옹(蓮翁)” ← ‘유연(遊蓮)’ 이방운(李昉運)<1761~미상(1815이후)>;
     조선 후기의 서화가.
*“해옹(海翁)” ← ‘해사(海士)’ 홍한주(洪翰周)<1798~1868>(71세);조선 후기의 문신, 문인, 학자.

◎ 그밖에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옹호(翁號)”의 주인공도 여럿을 만났다.
*“종남수옹(終南睡翁)”, “죽피옹(竹皮翁)” 이산해(李山海)<1539~1609>(71세);조선 중기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이자 시인, 성리학자, 교육자, 화가.
*“중옹(中翁)” 이광찬(李匡贊)<1702~1766>(65세);조선 후기의 문신.
*“탁심옹(托心翁)” 김덕성(金德成)<1729~1797>(69세);조선 후기의 화가, 도화서의 화원.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1864~1946>(83세);조선 말기,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를 겪은 문신,
     고위관료, 정치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채옹(采翁)” 채만식(蔡萬植)<1902~1950>(49세);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시기의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문학평론가, 기자.

◎ 그런가하면 뜻밖에도 “옹호(翁號)”를 가진 두 사람의 중국(宋나라) 학자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취옹(醉翁)” 구양수(歐陽脩)<1007~1072>(66세);北宋(북송)의 정치가, 학자, 서예가.
*“회옹(晦翁)” “둔옹(遯翁)” 주희(朱熹, 주자 朱子)<1130~1200>(71세);공자(孔子)와 맹자(孟子)
     다음으로 숭앙되고 있는 송나라(남송 南宋)의 유학자로서 ‘주자학(朱子學)’의 시조.

◎ 그리고 그 “翁자 아호”의 주인공을 끝내 찾지 못한 것도 세 건이나 되는데
*“가옹(稼翁)”   *“연옹(淵翁)”   *“과옹(瓜翁)”이 그것이다.

◎ ‘노숙한 늙은이’나 ‘어르신’의 이미지를 풍기며 “翁자 아호”를 사용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호를
이미 젊어서부터 써온 게 분명한데, 놀랍게도 그 호의 주인공 중에 회갑(回甲)의 수(壽)도 넘기지
못한 이가 4분의 1(내가 찾아낸 30여 명 중 8 명)이나 되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하겠다.  
<서둘러 늙더니 서둘러 일찍 돌아간 형국>이니 말이다.  그런 여덟 분을 아래에 적어본다.
    
-“범옹(泛翁)”(字) 신숙주(申叔舟)<1417~1475>(59세);조선 전기의 성리학자, 문신, 정치가, 언어학자.
-“과옹(果翁)” “주옹(周翁)” 윤사로(尹師路)<1423~1463>(41세);조선 초기의 문신. 세조 즉위의 공신.
-“췌세옹(贅世翁)” 김시습(金時習)<1435~1493>(59세);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
-“소쇄옹(瀟灑翁)” 양산보(梁山甫)<1503~1557>(55세);조선 중기의 문신.
-“간옹(艮翁)” 이익(李瀷)<1579~1624>(46세);조선 중기의 문신.
-“탄옹(灘翁)” 이현(李袨)<1584~1637>(54세);조선 중기의 문신.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 정조(正祖)<1752~1800>(49세);조선 제22대왕(재위 1777~1800).
-“채옹(采翁)” 채만식(蔡萬植)<1902~1950>(49세);일제기, 대한민국의 기자, 소설가, 수필가,
                                              문학평론가.
                                                                  끝.     (2017.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