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by 이용분 posted Jul 1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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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 오는 날                              청초 이용분


    당장 더위가 한 여름으로 치닫을 것처럼 서둘던 날씨다.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듬성듬성 몇 점 떠다닌다. 어째 비를 머금은 구름인가...
    집을 나서서 한 참을 걸었는데 드디어 빗방울이 흐두둑 떨어진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조금은 해갈을 한 듯하다. 우리 집 뒤곁에 흐르는 실개천 냇물이
    전보다 조금은 맑고 깨끗하게 흐른다. 그러찮아도 봄 가뭄이 계속 되는듯하여 걱정하던
    차에 그까짓 비 좀 올 테면 더 오라지 하고 천연덕스럽게 걸어갔다.

    지하철을 타고 두어 정거장 갔는데 감쪽같이 비는 그치고 햇볕이 쨍쨍하다.잠시 우산
    걱정을 잊고 볼일을 본다. 오다가다 사람들 손에 우산이 들려 있다. 다시 지하철을 타고
    돌아온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니다시 비가 쏟아진다.
    두어 정거장 사이에 사정이 아주 판이하다. 어찌하지?조금씩 뿌리는 비는 상관없지만
    쏟아지는 비에 정말 난감하다.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람들은 잠깐 사이 제각각 우산을 쓰고 흩어져 갔다.나는 좀 기다렸다
    비가 멎은 다음에 가야지 작정을 하고 서서 있었다. 그때 마지막으로 내린 한 아주머니가
    작은 파라솔을 든 채 나에게 눈짓을 한다.

    “어느 쪽으로 가세요?”X병원이 있는 방향을 가르치며
    “네. 저쪽으로 가는데요.”
    “병원에 가세요.”
    “아뇨. 00은행 있는 쪽으로 가는데요. 그 병원에도 자주 가지요. 나이를 먹으니공연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요”
    "그래요 저도 하도 아픈 데가 많아서 종합병원이라고 해요.ㅎㅎㅎ"
    다정한 친구처럼 그녀는 팔짱까지 끼면서 좁은 우산 속에서 함께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고맙고 따뜻한 사람이다.

    요즈음에는 드문 경험이다. 비를 맞더라도 그냥 가지 감히 아무도 남의 우산 속에
    들어가  얻어 쓸 념을 안낸다. 누가 비를 맞고 가더라도 우산 한 쪽을 씌워 줄 인심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이런 인심이 지긋지긋 가난하던 시절의 잔재이라고 생각하는지
    서로 신세를 지려고 안하고 베풀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서도 바로 앞에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서 있어도 앉은 사람이그 짐을
    절대 들어 주지 않고 외면한다. 앉은 사람이 미안해서 선 사람에게 쏟던 작은 인심이다.
    언제 부터인지 몰라도 그렇게 세상 인심들이 야박하게 굳어져 버렸다.

    옛날 같으면 여름날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면 애호박을 잘게 채 썰어 넣고
    부추 전을 지졌다며 갖 지져서 따끈한 것을 식을세라 이웃집을 불러서 담 너머로 먼저
    건네주며 정을 나누었다. 길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이웃을 만나면 얼른 다가가서
    그 짐을 받아다 대문 앞까지 날라다 주기도 했다.

    실제 예전에 나는 이웃집 친구와는 저녁 찬거리를 사러 매일 동네시장을 함께 다녔다.
    그저 싱겁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장을 보는 일은 매일매일 참으로 즐거운 일이었다.
    늦게 결혼을 하여 아이들이 어리고 아이도 하나 적었던 그 친구는 상대적으로
    아이도 하나 더 많고 커서 먹새가 세었던 내 짐을 매번 들어 주곤 하였었다.

    집안일 때문에 팔목에 신경통이 걸린 나를 안타까워하면서 그리 해 주었다.
    이제 편리하고 현대적인 아파트에 살면서 구질구질한 이웃도 별로 없다.
    모두자가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아주 멋있고 신나게 들 산다. 연탄 불씨를 얻으려고
    이웃집 문을 두드릴 일도 없다.

    잠간 집이 비었으니 이웃집을 좀 넘겨다보아주겠냐고 부탁 할일도 없는 아주 편리한
    세상이다. 허나 아파트 엘레베이타 안에서라도 눈을 마주보며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일
    조차도 가믐에 콩 나듯 아주 드문 일이 되었다. 그래도 조금은 부족하고 아쉬운 것이
    있어서 서로 비비며 살았던 그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은 이제 내가 나이가 들어 버린 탓인가.


                                           08년 6눨2일 청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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