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난 낮이야 해가 비쳐서 그렇다손 치고라도 밤에는 왜 또 그렇게 더운 건지...
그저 소낙비나 한줄기 시원하게 왔으면 했는데 새벽녘 정말이지 시원한 비가 줄기차게 쏟아진다.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낙숫물 소리가 시원하련만 아파트니 아쉬운 대로 발코니 우수관에서 힘차게 쏟아지는 빗소리에 그간 시달려 오던 더위를 쫓아 준다.
아침이 되자 언제 그랬냐 싶게 맑은 하늘에 햇볕이 다시 내려 쬔다. 비가 조금 더 와 주어도 좋으련만 하늘은 우리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큰 병원으로 가는 지름길, 뒤 개천 둑길을 걷다 보니 한참 전 장마 비를 피해 개천 모래톱에 앉아 쉬던 오리 새끼들이 어미 오리처럼 훨쩍 큰 모습으로 개천에 나타났다.
자연의 품이란 참으로 위대하고 자애롭다. 지난 번 새끼 오리 땐 어미오리도 다함께 온몸이 몽땅 젖었으니 어느 품에 안겨 털을 말리며 살아나기나 할까 싶었다.이제는 ‘삐악’거리던 소리는 어디로 가고 '궥궥 궥궥'소리로 변성을 하고 털도 반들반들 윤이 난다.
여전히 먼저 자리했던 그 장소에 제가끔 진을 치고 모두 앉았다. 사람들이 모양을 내는데 사간과 많은 돈을 낭비한다고들 말을 하지만 무릇 짐승들도 제 몸을 핥고 가다듬고 가꾸는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물위를 유연하게 헤엄치는 모습을 담으려던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오리들도 예외 없이 일제히 제 깃털을 다듬느라 정신이 없다.
돌아오는 길 그들 무리는 흩어져 오간데 없고 서너 마리씩 풀숲에 숨어 앉아 낮잠을 즐긴다. 사진을 찍으려는 내 욕심으로 깨울 수도 없으니 살금살금 그 자리를 피해 지나쳤다. 흐르는 맑은 물속을 드려다 보니 제법 씨알이 굵은 송사리 떼들이 우리를 보자 숨느라 오락가락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우리야 그냥 보고 지나치겠지만 우루루 몰려오는 오리 떼들이야 어찌 피할까...
그래서 보살핌이 없는데도 오리 새끼들이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나보다.오늘은 뒷곁 개울가에서 하도 '궥궥'거려 높은 층 우리 집에서 내려 다 보니 삼십여 마리의 그 오리 무리들이 몰려와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야생 기러기와 토종 오리들이 교잡을 하여 낳은 무리들인지 몸집도 크고 털 색깔은 짙은 갈색에 얼룩덜룩 곱지가 않다.
이렇게 큰 무리들이 겨울에 얼음이 꽁꽁 얼면 어찌 지낼까 공연한 걱정을 지레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예전 기후대로라면 이미 찬바람이 일었을 날씨가 끝 모르게 덥다. 이제 풀숲에서는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와 풀벌레소리로 그득하다. 언젠가는 그 무덥던 날들이 거두어 가고 서서히 이 땅에 가을이 찾아오기는 하려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