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爐邊)의 향사(鄕思)

by 이용분 posted Sep 10,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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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변(爐邊)의 향사(鄕思)                     청초  이용분

    거짓말처럼 궂은 날씨가 맑게 개이고 선선 해 지자 간간히 풀숲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귓가를 간 지른다. 그러고 보니 이제 매미소리는 오간 데 없다. 절후의 변화를 먼저 감지했는지 요즈음 모기가 여간 극성이 아니다.

    한번 물린 자국은 물파스나 (계관)을 바르지 않으면 여간해서 가라앉지 않고  계속 근지러움에 긁적거려야 한다.
    아파트에는 워낙 층이 높아서 그런지 별로 모기의 습격을 못 느꼈는데...
    이곳 아들이 사는 개인 집은 바로 앞에 정원이 있는 탓인지 요즈음은 매일  매일 모기와의
    전쟁으로 잠을 못 이룬다.

    언제 부터인가 정원의 나무가 너무 자라면서 온 마당에 그늘이 지니 잔디가  모두 사그라져 죽어 버렸다. 그 자리에 키가 낮고 둥근 주목이나 야생화를  골고루 심어 놔서 이제 잔디는 없다.

    예전에 마당에 잔디를 심었을 때에는 잔디 사이에 난 잡풀 뽑은 것과 잔디 깍은 것들을 마당 한편에서 설 말려 놓는다. 저녁을 먹고 난후 매일 초저녁이면 대문  안 조금 빼꼼한 곳에 쌓아 놓고 모기 불을 지핀다.풀이 타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바람결 따라 풀어 헤친
    긴 머리카락  처럼 사방으로  퍼진다.눈이 따거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피하면서 맡았던  
    풀이 타면서 내는 그윽한 연기 내움의 향기란...
    그 연기에 모기는 맥을 못 추고 몽땅 도망 가버리고...

    내가 어릴 때 어쩌다 여름방학 때면 놀러가곤 했었던 시골 큰집이나 외갓집에  대한 향수도 불러일으킨다. 저녁나절 집집마다 밥 짓느라 굴뚝에서 솟아오르던 보리 짚 타는 연기 내움이  온 마당 자욱이 낮게 퍼지던 시골집...
    산모롱이 돌아 가다가 멀리 좀 높은 곳에서 그 정경을 내려다보면 집집에서  펴오르는 자욱한 연기는 더 낭만적이고 정겨워서 얼른 달려가서 그 아늑한 품에  안기고 싶은 충동이 들곤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아직 어릴 때이니 모기 불 주변에 둘러 앉혀놓고  그날 하루 중에 일어났던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
    너무 불을 휘저으면 불길이 일어나서 연기가 없어지니 효과도 떨어진다.

    "불장난 심하게 하면 너 밤에 오줌 싼다"고 놀리기도 하며... 참새처럼 조잘조잘 대던 그 여운이 아직도 귓가에 살아서 맴도는 데 아이들은  커서 이미 어른이 되어 있고 부모인 우리는 너무나 나이가 많아 졌다.

    이렇게 모기에게 시달리면서 잠 못 이루는 밤에 어이하여 고등학교 시절 우리가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노변(爐邊)의 향사(鄕思) 모양으로 또 다른 그리움들이  모기한테 물리면서 괴로운 이 밤에 생각나는 건 어인 일일까?

    200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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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맞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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