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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7회 入學時 回想)        청초  이용분


성동 역 옆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학교는 교문을 들어서면서 학교현관으로 들어가는 길 양옆에는 봄이 오면 노란색 개나리꽃 사이사이로 진분홍색 밥풀 꽃이 섞여서 피어 있던 (나중에 알고 보니 박태기 꽃 나무였다.) 약간은 굽은 길이었다. 학교 교실까지 걸어 들어가는 이 길은, 이맘때쯤이었는지 조금은 시원하기도 하여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거의 환상적인 것이었다.


                                       (박태기 꽃)

그러찮아도 이십 몇 대 일로 들어 왔다는 긍지와 멋있는 곤색 상의 안에는 하얀 칼라 샤쓰에 사선으로 잘라서 만든 곤색 넥타이 까지 턱 매고 나풀거리면서 강종 강종 ... 지금 생각해 봐도 해방 후 그 난시(難時)에 그런 훼션(fashion)으로 교복을 차려입고 얼마나 신이 났었을까...(해방 후 물자가 아주 귀하고 어려웠던 시절이라 곤색 교복치마는 아끼시던 어머니의 모직 세루치마를 염색해서 만들어 주셨다.)

  그 후로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는 긍지가 평생 나를 지탱해주는 최고의 버팀목 역활을 크게 하였다. 오늘날 우리 아이들한테 까지도...
그 시절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했었다. '나는 닭 머리 보다는 소꼬리를 택했노라고...'  
'그래도 덩치가 큰 것은 소 잖아' 하면서...'

처음 수험생 소집이 있던 날 넓은 학교 운동장을 꽉 메웠던 수많은 수험생들의 모습이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합격하기가 너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반은 떨어 질것을 각오하고 시험에 임하라'고 말씀하셨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도 아직도 귓전에 그대로 남아 있다.처음 입학을 하자마자 조사한 앙케이트에서 7회 입학 신입생중에 우등 못한 사람 없었고 반장 안한 사람없었다는 말이 전해졌다.

그 당시 특차(特次)였던 우리학교에 시험을 보고 떨어진 학생은 1차인 경기. 서울. 진명.숙명 등 그 당시 명문 여자중학교이었던 그 학교에 시험을 보았는데 그들의 수험 경쟁률은 2;1. 3;1 수준이었다.내가 살아온 일생 중에서 어린시절, 나만의 그런 기쁜 날이 있었던 건 정말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뜻밖의 민족적 최대 비극인 6.25사변이 일어났다. 그 전쟁 속에 그만 정들었던 단발머리 학교 친구들과도 뿔뿔이 헤어졌다. 그리고 모든 것이 깨어져 버린 환상이 되어 버렸다. 그때 헤어진 급우들 중 수복 후에 영원히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몇몇이 있다.

학교 본 교사 앞의 정원은 유럽풍으로 그 당시에는 그런 식 정원을 가진 학교가 또 있을까 싶었다.참으로 멋 있고 규모는 좀 작았지만 한가운데에 큰 분수대도 있고,..몇 해 전엔가 프랑스에 여행을 갔을때 보니 벨사이유 궁전의 정원이 그런 풍(風)이었다. 소련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제정 러시아의 여름궁전도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거기 그 분수대에서 물이 품어져 나오는 걸 나는 한번도 본 기억은 없다. 3 층 교실에서 내려 다 보이는 잘 꾸며진 정원을 보면 우리는 모두 귀족집 자제들이였었다.고3 졸업반 무렵에는 그 분수대 위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나도 나도` 하면서 우루루 하도 많이 올라와 떨어질까봐 서로 끌어안고 끼어서 얼굴남기기 기념사진도 많이 찍었다.



(정원 분수대 위에서 사진 찍기. 맨아래 왼쪽에서 3번째가 필자)

아주 넓고 네모가 반듯한 큰 운동장에서는 럭비반 상급생 남자 운동선수들이 다람쥐 처럼 옆으로 갈색 무늬 유니폼을 입고 한쪽으로 긴 타원형 럭비공을 차면 (그렇게 길게 생긴 공은 그때 처음 봤슴.)

꼭 삐뚤어지게 날아와서 신출내기 우리를 당황하게 하곤 했었다.
매주 어느 요일엔가 있었던 교련조회, 멋있고 신나는 취주악단의 연주에 발맞추어서 보무도 당당하게,
(일학년이라 맨 꼬랑지에 졸졸 쫓아갔지만,) 그 위용이란 정말 그 당시 용두동 일대를 뒤흔들어 놓지 않았었을까?

나는 제일 큰 나팔, 메기에도 힘들어 보이는 그 큰 나팔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것을 어깨에 짊어지고 행진을 하면서 붕붕대던 그 취주악단 `오빠?`가 제일 인상에 남아 있다. 어느 여름날 3층 음악교실, 어느 반 음악시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열어 놓은 유리 창문을 통해 흘러 퍼져 오던 (오렌지 꽃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라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합창곡은 나이를 잔뜩 먹어 버린 지금, 몇 십년이 훌적 지나가버린 요즈음에도 그 곡을 듣고 있으면 그 시절의 향수가 아련하게 떠오르곤 한다.

학교 뒷길로 약간은 언덕진 길을 올라가서 선농단이 있던 청량대(淸凉臺) 그 곳에서는 배구대회가 종종 열리기도 하였다. 농구 골대가 있어서 한적한 경기장이 되기도 했다.
나도 잘 하지도 못하는 데 느닷없이 선수로 뽑혀서 상급반 언니들과 배구 시합을 한 기억이 난다. 그때 찍은 사진도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에 두었는지...그 곳은 이맘 때면 개나리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벚꽃과 개나리꽃)

  카메라가 아주 귀한 시절이었다. 그 때는 직업적인 사진사가 노상 학교에 상주하고 있었다. 봄이면 개나리꽃에 파묻혀서 한장, 만개한 벚꽃 아래서 급우와 다 같이 한장, 이런 식으로 그나마도 열 일곱살 가장 앳된 나의 고등학교 시절 모습이 지금도 조그마한 흑백 사진 속에 보물처럼 남아 있다.
그 때 함께 사진을 찍었던 같은 반 친구는 졸업을 한 후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아직도 그 친구는 사진 속에서 지금도 앳된 모습으로 나와 함께 다정하게 웃고 있다.


                             (왼쪽 끝이 필자)

선농단 비석이 있고 청량대 가시 철망 담 밖에는 포도밭이 참 많았다. 그래서 후문을 통해서 들어오려면 구불구불 포도밭 사이 길로 와서는 약간은 급경사가 진 언덕진 길을 올라서야 학교 뒷문으로 들어오곤 했었다.

참! 노란 금색 단추가 멋지게 달린. 마치 해군제독 같은 제복을 입고 금테모자 까지 쓴 늙은 수위 아저씨는 우리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오는 걸 봐도 절대 저지 하지를 못했었다. 그 제복의 수위 아저씨도 멋졌지만 우리도 얼마나 자랑스러웠었는지...

(그 후로 을지로 육가로 학교를 이전했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로 이사 가는 걸 참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복도가 낡고 달아서 삐걱거리기도 하고 교실이 어둡고 침침한데다가 교정도 비좁고...)

지금도 청량대에는 여전히 벚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을 것만 같다. 교문에서 학교 현관으로 들어가는 완만하게 구부러진 길 양옆에는 이 봄에도 노란색 개나리와 진분홍색 박태기 꽃이 한창 곱게 어우러져 피어 있을 것 같다. 그곳이 우리에겐 영원히 잊지 못할 많은 추억과 진한 우정이 변하지도 않고 늙지도 않는...
원래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2003년 4월 씀. 2009년 8월 다시 씀. )


               단기4289년(1956년) 9월 30일 7회 동창모임


            (2005년 4월 18일 졸업 50주년 기념 모임)


2013년 1월 25일 (서남표 동문 송별식때 기념 촬영)

(사진에 대고 두번 클릭하면 대형 사진으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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