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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齋晩筆](23-N)  성묘 유감 (省墓 有感)
                                                               심   영   보

*해마다 두 번, 한식과 추석 때 춘천(春川)에 있는 선산으로 성묘 다니던 일이
기억에 역력하다.
  성묘 하루 전날 오후에 성동역(지금의 전철 제기역 자리)에서 출발하는 경춘
선열차를 타고 남춘천역에서 내려 대로와 논두렁길 그리고 농촌의 작은 농로
들을 거쳐 묘지기집에 이르면 날은 어두워졌다.
  앞 뒷산에 나누어 모신 30여 분상의 조상 묘에 제례를 지내려면 이튿날 이른
아침부터 서둘러서 고개도 넘고 개울도 건너고 논두렁길을 한참씩 걷기도
하는 등으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저녁 막차로 서울에 돌아올 수 있었다.  벌써
반세기도 훨씬 넘게 지나간 옛 추억이다.

*이런 풍경에서 크게 변한 게 없이 50여 년이 지나는 동안에 세상 물정과
환경은 날로 변해서 우리 가족의 선산도 도시개발과 도로개설에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우리 가족의 의지와 아무 관계없이 선산의 묘를 어딘가로
옮겨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우리는 2000년대 초에 이르러 선산의 30여 기 조상의 묘를 모두 헤집어 새로
화장 잡숫고 유골을 각 납골함에 담아 경춘묘원(京春墓苑) 납골묘에 모시는
면례(緬禮) 행사를 치렀다.
  그렇게 해서 이제는 춘천의 선산이 아닌 경춘묘원으로 성묘를 다닌다.
거리도 가까워 졌지만 더 이상 벌초할 일도 없고 묘역이 훼손될까봐 걱정할
일도 사라졌으며  또 제례 지내느라 이산저산으로 옮겨 다닐 일도 없어져
아주 많이 간편해 졌다.
  옛날에 산을 헤매며 제례 지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우리들 세대에게는 다소
싱겁고 아쉬운 느낌이 드는 의례(儀禮)이지만 이제 집안의 어른이 된 위치에서
함께 참례한  수하자들을 보노라면 그렇게 간소해진 걸 인식하기는커녕 그
조차도 번거로워하는 기색이 엿보일 만큼 세상은 많이 변하고 말았다.
  허기야 내가 어른들 손 붙잡고 따라다니던 어린 시절과 팔순을 넘긴 지금을
견주면 실로 70 년이나 흘렀는데 그만한 변화는 대수로운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성묘풍습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탱될 것인가 또는 어떻게 변해
갈 것인가 까지를 짚어보면 실로 참혹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의 장례풍토가 매장(埋葬)에서 화장(火葬)으로 이행되어 이제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화장을 선택하는 건 물론이고 화장이후의 유골처리까지 다양
하게 진화하고 있음을 본다.
  납골묘를 조성하는 경우로부터, 묘표를 남기는 수목장(樹木葬), 묘표조차
남기지 않는 수목장 등 여러 형태의 자연장(自然葬), 그리고 또 여러 형식의
산골(散骨)로 진화하고 있다.
  일종의 자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 해양장(海洋葬, 또는 용궁장龍宮葬)은 몇
해 전부터 법으로 허용되면서 이미 이를 전업으로 하는 기업까지 자리 잡아
성장해 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앞으로의 반세기(半世紀), 즉 50년 그 이후를 내다본다면
어쩌면 바로 이 해양장이 대세를 이루는 시대가 올 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미친다.
  사람은 본디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는데, 거기에 ‘무흔거
(無痕去)’<흔적도 남기지 않고 돌아간다.>의 의지(意志)마저 더하면 감히
‘무소유(無所有)’를 설파한 법정(法頂) 스님의 정신을 이어 받는 게 되지 않을
까도 싶다.

*최근의 어느 신문기사(매경비지니스, ‘18.4.2.자)를 보니, 초고령사회를 우리
보다 훨씬 앞서서 겪고 있는 일본(日本)과 국토 사정이 더 어려운 대만(臺灣)의
유골처리 현황이 타산지석(他山之石)처럼 다가온다.
  일본에서 무연고자는 물론이고 일부 자녀나 형제 등 가족이 있는 경우에도
고령 사망자의 유해 또는 유골을 제때에 수습해줄 사람이 나서지 않아 최종적
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그 뒤처리를 맡아 ‘Zero葬’(장례식 등 아무런 중간
절차가 없는 처리)으로 무연묘지(無緣墓地)로 옮기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또한 망자의 연고자가 전화나 이메일로 처리를 위탁한 뒤 우편으로 보내 주는
유골을 받아서 처리하는 기업도 등장해 있다 하며, 대만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희망 또는 해당자의 경우) 유골 처리의 모든 과정을 도맡아 서비스 하고 있다
고도 한다.
  어느 경우이건 무연묘지(無緣墓地)라는 이름아래 어떤 표지도 남기지 않고
완벽하게  자연(自然)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흔거(無痕去)인
것이다.
  이것이 어찌 그들만의 일이겠는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장재장(葬齋場,
화장장) 어느 한쪽에 무연유골투입시설<초대형 함지>가 있어 누구나 자유
롭게 화장 후 유골을 그 구멍으로 투함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걸 보면 꼭 50년
후의 일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겠다.
  그런 때가 된다면 아마 ‘성묘(省墓)’라는 글자도 함께 사라질지 모른다. 끝.
                                                                                             (‘18.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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