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齋晩筆](26-N) 계약효자시대(契約孝子時代)
심 영 보
[고전적 효도의 시대]
‘身體髮膚(신체발부)는 受之父母(수지부모)니 不敢毁傷(불감훼상)이 孝之始也
(효지시야)라’<몸의 터럭 하나라도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이를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하는 중국의 고전 “효경(孝經)”의 한 구절이 ‘효도
(孝道)’의 고전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마음에 팍
와 닿는다고 하기 어려운 도덕률이다. 더구나 부모상을 당한 상주가 무덤
앞에 묘막을 치고 불출불식하며 공양하는 3년상을 치러야 효자라고 하는
얘기도 현실감을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식이 저녁마다 부모의 잠자리 밑에 손을 넣어보고
온기가 넉넉한지를 확인한 뒤에야 자기 침소에 들 때 그를 효자라고 일컫는다는
말은 좋이 들은 바이고 실감도 가지만 실제로 목격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효도 상실의 시대]
시대의 흐름은 ‘효도’의 개념을 사뭇 뒤집어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제 자식이 공부를 스스로 잘해서 부모의 속을 과히 썩이지 않고
번듯한 대학에도 들어가고
졸업한 뒤에는 선득 취업도 하면 그 만한 효자가 다시없다고 하게 되었다.
이런 경사는 할머니들이 기회만 있으면 ‘손자 자랑’의 주된 소재로 삼아 왔으니
어엿한 효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즘엔 이 사연도 흔치 않아선지 잘 들먹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식이 속을 썩이지나 않고 얹혀 지내려고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쪽으로
뒷걸음질 쳐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모부양은커녕 캥거루처럼 품속에 안겨 벗어나지 않거나 수시로 찾아와서 손
내밀지만 않아도 효자 중에 효자인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자식이 취업을 했건
못했건, 결혼을 했건 안했건 따져볼 겨를도 없다.
어쩌면 ‘그만도 못한 불효자나 아니었으면~~’ 하는 그런 자식도 있으니 그게
원수지 자식인가?
부모와 연락을 끊고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가족관계기록부’에는 자녀로 남아
있어, 고령의 부모가 ‘나라의 복지 혜택’(기초생활수급자)마저 받기 어렵게 하는
걸림돌 자식 말이다. 아니 그보다 더한 꼴의 자식인들 왜 없겠냐만 말하기조차
끔찍하니 여기서는 그만 덮어두자.
[계약효자의 시대]
부모부양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자녀가 20·30대의 젊은이에서는
넷 중 하나(약 25%)밖에 되지 않고 심지어 50·60대의 노장년층에서도 절반
(약 45%)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효도상실의 시대’에 늙은 부모가 그의 남은 재산을 살아생전에 자녀들에게
물려주면서 자신의 여생을 의탁하는 무언가의 담보징표를 남겨두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일 런지 모른다.
전통적 유교문화가 해체되고 윤리와 도덕이 현실영역 속으로 매몰된 상황에서,
‘효도(孝道)’란 단어를 잊은 지 오래된 노년(老年)세대에게 노후부양 문제의
갈등을 최소화 하는 방안은 법이 허용하고 있는 “효도계약(孝道契約)”(불효자
방지법,不孝子防止法)이 최선의 선택이 되어 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산을 물려받고도 부모부양을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재산을 돌려받게 하는 법’으로 대법원이 최근(2015년)에 민법 조항을 보완하면서
현실화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미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려는 부모의 40%가 이 ‘증여계약서
(贈與契約書)’를 쓰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계약서상의 갑
(甲)과 을(乙)이 되어서 ‘갑은 재산증여를, 을은 부양 약속’을 문서로써 서로
보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전통개념의 “효자(孝子)”의 지위가 팽개쳐진
‘계약효자의 시대’에 이른 것이다. 오호 이 격세지감을 어찌 다 감당하리오.
끝. (2018. 12. .)
심 영 보
[고전적 효도의 시대]
‘身體髮膚(신체발부)는 受之父母(수지부모)니 不敢毁傷(불감훼상)이 孝之始也
(효지시야)라’<몸의 터럭 하나라도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니 이를 훼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다.>하는 중국의 고전 “효경(孝經)”의 한 구절이 ‘효도
(孝道)’의 고전적 의미를 상징적으로 말해 주지만 우리 세대에게는 마음에 팍
와 닿는다고 하기 어려운 도덕률이다. 더구나 부모상을 당한 상주가 무덤
앞에 묘막을 치고 불출불식하며 공양하는 3년상을 치러야 효자라고 하는
얘기도 현실감을 주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부모를 모시고 사는 자식이 저녁마다 부모의 잠자리 밑에 손을 넣어보고
온기가 넉넉한지를 확인한 뒤에야 자기 침소에 들 때 그를 효자라고 일컫는다는
말은 좋이 들은 바이고 실감도 가지만 실제로 목격한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효도 상실의 시대]
시대의 흐름은 ‘효도’의 개념을 사뭇 뒤집어 놓았다.
언제부터인가 제 자식이 공부를 스스로 잘해서 부모의 속을 과히 썩이지 않고
번듯한 대학에도 들어가고
졸업한 뒤에는 선득 취업도 하면 그 만한 효자가 다시없다고 하게 되었다.
이런 경사는 할머니들이 기회만 있으면 ‘손자 자랑’의 주된 소재로 삼아 왔으니
어엿한 효자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즘엔 이 사연도 흔치 않아선지 잘 들먹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식이 속을 썩이지나 않고 얹혀 지내려고나 하지 않았으면~~ ’하는 쪽으로
뒷걸음질 쳐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모부양은커녕 캥거루처럼 품속에 안겨 벗어나지 않거나 수시로 찾아와서 손
내밀지만 않아도 효자 중에 효자인 시대가 된 것이다. 그 자식이 취업을 했건
못했건, 결혼을 했건 안했건 따져볼 겨를도 없다.
어쩌면 ‘그만도 못한 불효자나 아니었으면~~’ 하는 그런 자식도 있으니 그게
원수지 자식인가?
부모와 연락을 끊고 돌아보지도 않으면서 ‘가족관계기록부’에는 자녀로 남아
있어, 고령의 부모가 ‘나라의 복지 혜택’(기초생활수급자)마저 받기 어렵게 하는
걸림돌 자식 말이다. 아니 그보다 더한 꼴의 자식인들 왜 없겠냐만 말하기조차
끔찍하니 여기서는 그만 덮어두자.
[계약효자의 시대]
부모부양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자녀가 20·30대의 젊은이에서는
넷 중 하나(약 25%)밖에 되지 않고 심지어 50·60대의 노장년층에서도 절반
(약 45%)이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런 ‘효도상실의 시대’에 늙은 부모가 그의 남은 재산을 살아생전에 자녀들에게
물려주면서 자신의 여생을 의탁하는 무언가의 담보징표를 남겨두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선택일 런지 모른다.
전통적 유교문화가 해체되고 윤리와 도덕이 현실영역 속으로 매몰된 상황에서,
‘효도(孝道)’란 단어를 잊은 지 오래된 노년(老年)세대에게 노후부양 문제의
갈등을 최소화 하는 방안은 법이 허용하고 있는 “효도계약(孝道契約)”(불효자
방지법,不孝子防止法)이 최선의 선택이 되어 가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재산을 물려받고도 부모부양을 약속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재산을 돌려받게 하는 법’으로 대법원이 최근(2015년)에 민법 조항을 보완하면서
현실화한 부분이다.
우리는 이미 재산을 자녀에게 증여하려는 부모의 40%가 이 ‘증여계약서
(贈與契約書)’를 쓰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부모와 자식이 계약서상의 갑
(甲)과 을(乙)이 되어서 ‘갑은 재산증여를, 을은 부양 약속’을 문서로써 서로
보증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전통개념의 “효자(孝子)”의 지위가 팽개쳐진
‘계약효자의 시대’에 이른 것이다. 오호 이 격세지감을 어찌 다 감당하리오.
끝. (2018.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