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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초가을날의  풍경                 청초 이용분

    와이드 스크린처럼 커다란 베란다 앞창을 통해 보이는 앞산의 풍경 속 가을날은 하루하루 변해 간다. 집안에 우두커니 있다가는 가을을 그냥 떠나 버릴 것 같아 빨간 배낭 속에 카메라를 넣고 집을 나섰다. 우선 아파트 단지 내 벚나무들도 서서히 가을빛을 띄우며 단풍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바로 자동차 큰길 건널목 옆에 서있는 가로수 단단풍나무 잎이 아주 선홍빛으로 곱게 단풍이 들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 가을날들을 그냥 보낼번 했구나...우선 가슴이 설례인다.

    목적지는 길을 건너 니키다 소나무 숲이 우거진 곳, 바로 앞 남쪽으로 펼쳐진 야채밭으로 가서 무르익은 가을 풍경을 담으러 갈 참이다.
    이곳은 근처에서 건물이 안 들어서고 남은 유일한 큰 공터로 사방이 낙엽수림으로 둘러싸여 갈색으로 단풍이 든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두 세평씩 임대해서 배추 무 파 부추 양파 등을 심어서 큰 무리 없이 노후에 무료함과 농촌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아직도 싱싱하고 시퍼렇게 한창 자라나는 배추, 줄거리도 푸루청청 싱싱한 가을무, 얕은 도랑가에 심어놓은 토란 줄기가 아직은 여름 같다.

    일렬종대로 곧게 심어 놓은 소나무 숲 아래에 어디에선가 날아와 떨어진 형형색색의 낙엽들이 이미 가을이 깊어 감을 알린다. 카메라에 열중해서 이를 담고 있는데
    "낙엽을 찎으시는군요"
    뒤돌아보니 어떤 중년 여인이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나를 쳐다본다.
    "예 가을을 찍으러 왔어요"
    지나가는 여인은 그 한마디 툭 던지고 그냥 멀어져 갔다. 뭐 별다른 풍경이 또 없을까...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밭 사이 좁은 사이 길로 걷다 보니 아주까리 나무가 우람차게 커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이 나무도 정겹다. 이파리는 뜯어 삶아서 나물을 해 먹기도 하고 그 씨는 이가 아플 때 열매를 불에 구워서 아픈 이 자리에 대고 있으면 통증이 사라진다. 허나 이도 옛이야기지 요즘은 아프면 바로 치과에 가야 될 일이다. 또 이 피마자기름은 설사를 유발해서 병원에서 장 검사를 할 때는 이 기름을 주고 했는데 이제는 다른 대체 약품이 개발되었는지 더 이상 이 기름을 쓰이지 않는 것 같다.

    별로 눈에 띄는 멋진 가울 풍경이 보이지 않는다. 이맘때쯤이면 알알이 영글어서 머리 숙인 붉으래한 키다리 수숫대 낱알 열매가 올해에는 안 보인다. 커다란 아주까리 나무가 서 있는 밭 근처에 기웃하고 드려다 보니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가을무를 뽑다가 나를 보며 반긴다. 반색을 하며

    "아까 낙엽을 찎던 분이군요^^"
    나도 반가워서
    "여기서 취미 농사를 짓고 계시는군요"
    다른 이웃 밭들에 심긴 무들은 땅위로 불쑥 솟아커서 우람하고 크게 자랐고 배추도 알이 꽉꽉 차서 소담스러운데 이 여인의 밭 무나 배추는  알이 영 덜 커서 총각무도 아니고 아주 소담한 무도 아니게 시원찮다. 이게 좀 무색했는지

    "나는 이대로 감사해요. 큰 손길을 안했는데도 이처럼 수확을 허락해 준 게 얼마나 기쁜지 모르는데 남들은 나를 보고 막 웃어요. 그 무슨 농사를 그렇게 짓느냐고요^^."자기 혼자 묻지도 않았는데 혼잣말을 한다. 따는 팔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이 수확이 되면 일거리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입구에 서 있는 피마자 나무를 보며
    "이 나무 이파리는 나물을 해 먹잖아요?^^" 했더니
    "참 그 잎들을 좀 따다 잡수세요."
    "그래도 되겠어요? 그럼 조금 따 갈께요." 그 이파리를 조금 따고
    "고마워요" 했더니
    "조금 더 따가세요. 우리는 벌써 따서 가져갔어요."
    "예, 미안해서요. 그럼 조금 더 따 갈께요."
    몇 장을 더 따서 배낭 속에 넣고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내가 찍고 싶었던 수수대의 풍경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되 돌아 오는 길에 보니 울타리 위에 걸쳐 무성하던 호박 넝쿨은 벌써 무서리를 맞았는지 후줄근하게 녹초가 되어 그 형상이 처참하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가을은 찾아 왔다가 이처럼 서서히 그 할일을 다 했다는 듯이 떠나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만족스런 촬영을 못한 나는 같은 아파트 다른 동 정원을 통해 지나노라니 건축 당시 단풍이 잘 드는 나무들을 선별해 심은 탓인지 진짜 이곳에 예쁜 단풍을 만날 수 있었다. 멀리 갈일이 아니라 이곳으로 곧 바로 왔다면 예쁜 단풍을 쉽게 볼 수 있었겠네.
    행복은 바로 우리 집 안방에 있듯이 본격적인 가을은 이곳에 찾아 와 있었던 것을...

    2017년 11월5일
















(사진을 두번 클릭하시면 아주 시원한 화면으로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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