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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중한 친구 화초에 물 주듯이 ...            청초 이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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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까지만 해도 회색 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비를 흩뿌리며 으슴프레하던 초겨울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제절로 몸이 움추려 들더니 오늘은 산뜻하게 벗어나 밝은 날씨다.​은행에서 볼일을 마치고 곧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야채 가게에서 채소를 사려고 길을 건넜다.

    송이버섯 가지 부루크리 노상 먹어도 없으면 안 되는 콩나물과 부추...
    초겨울에 들어서면서 부쩍 값이 비싸진 싱싱한 부추가 한단에 2천원.
    단이 무거운 걸로 한참 잘 골라서 한단을 바구니에 집어 넣었다.

    두부 ~ 이집 두부는 강원도 손 두부라나 ...
    값도 비싼 게 한모에 천 칠백원.
    두툼하고 단단한 게 후라이팬에 구워서 먹어 보니 맛이 구수하고 제법 씹을 맛이 좋아서 매번 그것을 사려하나 언제나 매진... 사람들의 입맛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다음에 고른 게 당근, 깨끗하고 정갈하게 씻은 걸 집으니 주인이
    '그건 중국산이라나... '
    바로 옆에 흙이 더덕더덕 묻은 비닐봉지 속 흙 당근  
    '이게 국산인 모양이지 ...'
    '어차피 좀 오래 두고 먹으려면 이런 걸사는 게 낫겠지.'

    어떤 늙스그례한 할머니 주부가 이것저것 들었다 놨다 좀 무거운 걸 고르는 모양.
    나는 그가 고르다가 더 무거운 걸로 갖고 두고 간 봉지를 사기로 했다.  
    그가 한참을 고르다가 낙방을 시킨 것이니 그게 더 무거운 것 일터이니까.

    우리 또래의 나이가 든 주부들은 거의 지금의 젊은 주부들로는 상상을 못하는 고생들을 하고 살아온 터라 다들 이와 같이 하찮은 물건을 살 때도 이렇게 신중을 기한다.

    이따금 젊은이 주부들이 상품을 고르지도 않고 지나는 길 스치듯이 그냥 척 집어 들고 아주 너무나 쉽게 물건을 사는걸 보면 저 사람은 남의 집 살림을 해주는 사람이거나 철이 덜든 터라 저렇게 물건들을 대강 사는 거겠지...
    남편들이 밤낮 없이 왼 종일 힘들게 벌어다 준 돈을 저리 쉽게 쓸 수가 있을까...

    대강 살 것을 골라서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바퀴가 달린 빨갛고 커다란 시장주머니 속에서 먼저 은행에서 받은 새해 달력과 추울까봐서 어깨에 덧 덮울 양으로 가져온 좀 두터운 목도리와 은행통장과 도장을 따로 담은 곤색 냅색도 꺼내 계산대에 한 옆에 함께 올려놓았다.돈을 지불 한 후 물건들을 빨간 시장주머니 속에 차례대로 집어넣었다.

    따로 그 가게 바깥쪽 진열대에 있는 과일 중 무얼 더 사야 되나하고 잠시 주춤 멈추고 서 있었다.
    "지난 일요일에 우리 아이를 시켜 사간 방울토마토가 값도 유난히 비산데다 질도 안 좋았어요"
    "우리도 그런 물건이 들어 올 때가 더러 있는데다 일요일이라 물건이 귀하고 시원찮았어요. 미안 합니다"
    보통은 두 팩에 7천원 인데 그날은 한 팩에 5천원인데 껍질도 얄팍해서 바로  상하게 생긴 것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있는데 ...

    평소 친한 상점사장이 내 곤색 냎색 가방을 들고 나와서 불쑥 건네주는 게 아닌가...
    그만 깜빡 잊고 내가 전혀 챙기지 못 한 채 두고 온 주머니다.
    순간 너무나 소스라치게 놀라서 정신이 아뜩하다. 만약 물건을 사고 곧 바로 그곳을 떠났으면 집에 돌아가서 얼마나 황당해서 고심참담을 했을까...

    오다 가다가는 남하고 실없는 농담도 하고 이런 여유 자적한 시간도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처 농협에 둘러서 서리 태 콩을 더 사서 보태니 제대로 짐이 좀 더 무겁다. 짐을 끌고 한참을 걸어서 동내 아파트 어귀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에서 잠시 동안 한 숨을 돌린 후 다시 아파트로 올라가는 조금 경사진 길을 장바구니 짐을 끌고 힘들게 올라섰다.

    옆으로 바로 꼬부라지면 내가 사는 동(棟)으로 올라가는 조붓한 두세 개의 계단이 있는 길이다. 저만치서 어째 나보다는 조금은 더 늙어 보이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무언가 한손에 들고 주춤주춤 다가오는 게 아닌가...

    좁은 계단 길에 서로 스치며 방해가 될세라 내가 가기를 멈추고 한옆으로 비켜섰다.
    계단 바로 옆에 있는 손잡이 쇠 난간이 아침나절 비가 온 후 커다란 빗물방울이 아직 덜 마르고 흥건히 젖어 찬 기운을 내뿜으며 햇볕에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다.

    이 할머니 이 물방울을 보더니 난간을 붙들지도 않고 맨 몸으로 주춤주춤 비틀거리며 계단 길을 걸어 내려오는 게 아닌가. 나를 보더니
    "말 걸지 말아요. 나 넘어지니까..."
    '세상에 말 건다고 넘어지는 사람도 있구나...
    늙어지면 누구나 다 저런 길을 걷게 되겠지...'

    추적추적 걷는 그 노인 등 뒤를 보니 맞잡은 두 손안에 든 불룩한 비닐봉지 안엔 도대체 무슨 간식꺼리가 들어 있는건지...
    매일 매일이 적적하던 그 녀가 노인정에서 기다릴 또래 친구들에게 베풀려고 가는 길이던 모양이다.
    그래 맞어... 젊은 때는 물론 늙을수록 친구란 더 필요하고 정말 소중한 존재다.

    오솔 길이 잘 나 있던 숲속 길도 사람이 안다니면 풀이 무성해지고 자연히 길은 없어지게 마련이다.평소 화초에 물 주듯이 항상 잊지 않고 사랑을 부어야 화분속 화초가 잘 살고 향기롭고 예쁜 꽃을 피우게 된다.

    물주기를 게을리 하면 그들도 그냥 서서히 말라 죽게 된다. 화분은 바로 그 꽃의 무덤인 셈이다.노상 관심을 두고 보살피다 보면 그 나무는 예쁜 꽃이 항상 피어나고 노후에는'우정'이라는 아주 달콤하고 귀한 열매도 딸 수 있을 터이니까...
                                                          
                                                                 2019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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