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생 / 류시화

by 김 혁 posted Aug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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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생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보고서야

무릎 기도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출처 : 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숲, 2013)

-사진 : 다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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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자신과 낙타를 동일시한다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의 모습에서 자신을 읽어내는 것

우리 사는 세상이 사막과 다를 게 무언가

고독과 그리움

사건의 돌출과 기상이변

쨍쨍 내리쬐는 햇살과 모래 폭풍

독을 가진 것들의 겁습과 밤의 냉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사는 세상의 일들과 다른 게 없다

이것들을 이겨내고 사막을 건너는 일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

 

우리는 기어이 살아내야 한다

등에 난 혹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

옹이처럼 변한 무릎

자꾸 넘어지는 다리

아득한 마음의 벼랑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일

이 무거운 짐을 지고 흔들리며

세상을 건너는 일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강건해야 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