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타의 생
류시화
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를 보고서야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알았다 옹이처럼 변한 무릎을 만져보고서야 무릎 기도드릴 일 많았음을 알았다 많은 날을 밤에도 눕지 못했음을 알았다 자꾸 넘어지는 다리를 보고서야 세상의 벼랑 중에 마음의 벼랑이 가장 아득하다는 걸 알았다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출처 : 시집『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문학의숲, 2013) -사진 : 다음 이미지 -----------------------------------------------------
화자는 자신과 낙타를 동일시한다 사막을 건너가는 낙타의 모습에서 자신을 읽어내는 것 우리 사는 세상이 사막과 다를 게 무언가 고독과 그리움 사건의 돌출과 기상이변 쨍쨍 내리쬐는 햇살과 모래 폭풍 독을 가진 것들의 겁습과 밤의 냉기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사는 세상의 일들과 다른 게 없다 이것들을 이겨내고 사막을 건너는 일이 고난의 길이라는 것
우리는 기어이 살아내야 한다 등에 난 혹 눈썹 밑에 서걱이는 모래 옹이처럼 변한 무릎 자꾸 넘어지는 다리 아득한 마음의 벼랑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일 이 무거운 짐을 지고 흔들리며 세상을 건너는 일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강건해야 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