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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21:54

가을 편지 / 이해인

조회 수 1460 추천 수 26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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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편지 / 이해인 세수를 하다 말고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문득 놀라워서 들여다보는 대야속의 물거울 '오늘은 더욱 사랑하며 살리라'는 맑은 결심을 합니다 그 언제가 될지 참으로 알 수 없는 나의 마지막 세수도 미리 기억해 보며 차갑고 투명한 가을 물에 가장 기쁜 세수를 합니다 늦가을, 산위에 올라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깊이 사랑할수록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노래하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매일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깊은 밤, 홀로 깨어 느끼는 배고픔과 목마름, 방안에 가득한 탱자 향기의 고독, 가을은 나에게 청빈을 가르칩니다. 대나무처럼 비우고 비워 더 맑게 울리는 내 영혼의 기도 한 자락, 가을은 나에게 순명을 가르칩니다. 가을이 파놓은 고독이란 우물가에서 물을 긷습니다 두레박 없이도 그 맑은 물을 퍼 마시면 비로소 내가 보입니다 지난여름 내 욕심의 숲에 가려 아니 보였던 당신모습도 하나 가득 출렁여오는 우물, 날마다 새로이 나를 키우는 하늘빛 고독의 깊이를 나는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을 쉬게 하고 싶습니다. 피곤에 지친 당신을 가을의 부드러운 무릎 위에 눕히고, 나는 당신의 혼魂 속으로 깊이 들어가 오래오래 당신을 잠재우는 가을바람이고 싶습니다 가을엔 언제나 수많은 낙엽과 단풍의 이야기를 즐겨 듣습니다. 페이지마다 금빛 지문指紋이 찍혀 있는 당신의 그 길고 긴 편지들을 가을 내내 읽고 또 읽듯이.... 풀벌레 소리에 잠이 깨는 가을밤, 머리맡에 놓인 성서를 펼쳐들면 귀에 익어 더 반가운 당신의 음성 오직 당신으로 하여 오늘도 푸르고 싱싱해진 이 마음의 뜨락에 당신은 어서 주인으로 오십시오. Cherry Hill / Linda Genti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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