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부자인 사람보다 가난한 사람이 좋고, 건강한 사람보다 아파본 사람이 좋습니다. 가난을 경험한 사람은 가난이 얼마나 아프고 가혹한 것인가를 이해할 줄 알아서 좋고, 많이 아파본 사람은 매사에 겸손할 줄 알아서 좋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가난을 끌어안고 살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라고 가난이 좋겠습니까 만은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은 가난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이 게으르니까 가난한 거야. 왜 이렇게 쉬운 일도 못해? 지금의 가난은 네 탓이야. 그 가난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대물림 될 것이고, 다시 그 가난은 당신의 자식의 자식에게까지 대물림 될 거야.”
평생 건강했던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듯 부자로 사는데 익숙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의 아픔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내가 아파야 남의 아픔을 알 수가 있고, 내가 패배해 봐야 패배자의 마음도 알 수가 있는데 말입니다.
특히 리더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건강해서, 행운을 타고 나서, 시야가 좁아진 리더보다, 가난으로 고생해본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마음까지도 많이 아파 본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타인의 고통을 먼저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강하니까, 내가 영리하니까, 내가 인내심이 많으니까, 너도 강직하고 인내하고 희생하라고 요구하는 리더보다, 그들의 아픔과 나약함을 같이 이해하고 느낄 줄 아는 정서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더욱 좋겠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들의 아픔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면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된다고. 우리도 그리하고 우리의 지도자들도 그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한의원에서 온 몸에 수십 개의 침을 맞고 누워 있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장애인이 아닐까 하고. 마음이 병든 사람도 장애인이고, 권력을 지나치게 탐하는 사람도 장애인이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잃은 사람도 장애인이라고.
그리고 인간 세상을 정작 힘들게 하고 위험하게 하는 사람은 사람의 가면을 쓰고 이중적 모습을 보이며 사는 이러한 장애인들이 아닐까 하고. 몸도 마음도 조금 더 겸손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운 날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