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 간의 세습...
어제는 어느 분이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제법 규모가 큰 병원이어서인지 각층의 병실마다 나이 드신 환자들이 많이 계셨는데 모두가 하나 같이 그냥 누워 계셨습니다. 그냥 누워 계셨다는 표현에는 많은 의미가 들어있지만 그 뜻은 미루어 짐작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여보! 우리, 나이 먹으면 병원에서 저 모습으로 죽지는 말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그러네요.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이러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거예요.”
그랬을 것입니다. 아마도 미래에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큰 아이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습니다.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어쩔 줄 몰라 하는 친구를 바라보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친구의 아버지라 하면 제 나이 또래이고 저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세상을 등졌다고 하니 죽음이라는 것이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주변에도 세상을 등진 제 나이 또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네요.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는 말이 점점 더 가슴에 와 닿은 나이가 된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저도 이제는 어느새 오십대 중반을 향해 걸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엊그제가 10대였고, 엊그제가 20대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오십을 넘어 반백의 나이가 되다니요. 지금도 여전히 가슴은 뜨겁고 마음은 청춘인데 사회에서 조직에서 이제는 저보고 어른 역할을 하라고 강요를 하네요.
먹고 싶지 않아도 먹어야 하는 것이 나이라 했지요. 이렇게 의지와 상관없이 어른이 되어가고, 한 살 두 살 나이가 쌓여간다는 것이 저는 몹시 두렵습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어른 역할을 못할까봐 그것도 두렵습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 보면 어른이라고 하면서 날마다 부정을 저지르고, 탈법을 저지르고, 거짓말은 밥 먹듯이 하고, 남의 것을 빼앗고, 사람을 차별하고 모욕하고, 약한 사람의 자유와 생명마저 유린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청소년들에게 ‘이 사람을 보고 배우라’고 할 사람이 과연 누구입니까?
어제는 어느 교수님이 이런 말을 하데요. 서울의 일류대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룹을 지어서 용접을 배우고 목공일을 배우고 허드렛일을 배우고 있다고. 그리고 그 기술을 배워서 미국이나 유럽으로 이민 갈 준비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현실이라고 합니다. 일류대를 졸업해도 직장 잡기도 어렵고, 아무리 둘러봐도 희망이라는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용접을 배우고 목공일을 배우면 그 나라에 가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으니 기술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너희들이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꾸짖어야 할 자신이 꾸짖지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들만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어디에도 희망을 얘기하는 곳이 한 곳도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 경제, 종교, 문화... 어느 한 분야라도 국민들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것이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미안합니다. 그리고 참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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