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몰랐던 새로운 사실...

5월이 시작되자 연휴가 시작되었고 그 연휴는 길었다. 어제는 부모님의 묘 이장 문제로 형과 마주 앉았다. 셋째 형이다. 나에게는 6형제가 있는데 큰형과 둘째형은 큰 어머니가 낳았고 그 밑으로 4형제는 어머니가 낳았다.
어머니의 첫 번째 남편은 6.25 때 국군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를 해서 현재 국립묘지에 계시다고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20대에 혼자가 되어 지내시다가 큰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시고, 세 살, 다섯 살의 아이를 아버지 혼자 키우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집에 시집을 오셨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4형제를 낳았다. 덕분에 내가 태어났다. 우리 어머니는 복이 얼마나 없으셨는지 그 남편마저도 남겨놓은 재산도 없이 세상을 일찍 떠났다. 그리고 어머니는 혼자서 우리 6형제를 키우셨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편히 쉬고 있는 어머니를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늘 일하는 어머니만 보고 자랐다. 지금도 어머니가 혼자 몸으로 어린 6형제를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어머니로 보면 셋째 형이 장남이다. 어머니가 유일하게 매를 든 자식이 바로 셋째 형이다. 첫째 형과 둘째형에게는 매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넷째 형과 다섯째인 나와 막내인 여섯째에게도 절대 매를 들지 않았다. 오직 셋째 형에게만 매를 들었다.
다른 자식이 말을 듣지 않아 가슴이 아플 때나, 뭔가 속상한 일이 있어 가슴이 답답할 때, 어머니는 셋째 형에게 매를 들어 분풀이를 했다. 그래서 지금도 내 기억에는 ‘셋째 형은 왜 저렇게 맞을 짓만 할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하곤 했다.
그런데 셋째 형만큼 효자가 없었다. ‘어머니’라는 말만 나오면 눈물부터 왈칵 쏟는 형이다. 지금도 동생들 생각하는 것이 끔찍하다. 동생들을 위해서 목숨이라도 내놓으라 하면 두 말도 하지 않고 내놓을 사람이 셋째 형이다.
어제는 그 형과 마주 앉아 긴 대화를 나눴다. 형은 지금 김해에 산다. 그래서 고향에 내려와서도 바쁜 동생들 시간 뺏는다며 얼른 가겠다며 길을 나선 형이다. 어제는 그 형과 오랜 만에 어렸을 적 얘기를 하면서 긴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대화중에 내가 몰랐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나에 대한 얘기였다. 그것도 조금은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집이 너무 가난해서 우리 집에 먹을 것이 떨어졌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어느 분께서 자식 한두 명을 고아원에 보내면 어떻겠냐는 말을 어머니에게 하셨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도 이렇게 못 먹이고 못 가르칠 바에야 그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고아원에 보낼 자식으로 넷째 형과 내가 결정되었고 얼마 후에 넷째 형과 나는 정말로 고아원으로 가게 되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아는 기억이다.
그런데 어제 셋째 형이 이런 말을 했다.
“사실은 그 때 너를 해외로 입양 보내기로 결정이 됐었다. 네가 고아원에 가자 마침 해외 입양을 보낼 아이를 찾던 고아원에서 해외로 입양 보낼 아이로 너를 결정했고,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고민 고민하다가 미국으로 가면 여기보다 잘 먹이고 잘 가르친다는 말에 차라리 그러자고 결심을 하셨다.”
그리고 형은 이런 말도 했다.
“너에게 말은 안 했지만 네가 그동안 혼자서 바동거리며 사는 것을 보면서 그 때 차라리 네가 미국으로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곳에 갔으면 네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던 공부도 맘껏 하고 최소한 지금처럼 고생하며 살지는 않았을 거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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