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내리면 혹시 무슨 생각이 드나요? 내리는 비를 보고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거든 그것은 지금의 삶이 무척 바쁜 증거라고 하네요. 비를 보면 가끔은 어린 시절의 추억도 생각나야 하고, 가끔은 첫사랑의 기억도 떠올라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한 생각은 아마도 우리의 삶에서 약간의 여백이 있어야 떠오르는 생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사랑이라. 누구에게나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은 있기 마련이지요. 가슴까지 따뜻해지는 옛날의 그 기억들 말입니다.
그런데 그 첫사랑의 기억은 왜 비와 관련이 많을까요?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헤어질 때도 그렇고, 첫 사랑의 배경에는 늘 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우산 속에서 비에 젖은 서로의 살갗이 닿을 듯 말듯 한 그 아슬아슬함도 있었지요. 저는 그 때 숨이 멎어서 죽을 뻔 했습니다.
그 여인.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래도 가끔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첫 사랑의 여인은 다시 만나 그 모습을 확인하기보다는 그냥 가슴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막상 만나고 나면 그동안 가졌던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기 때문이라네요. 만나본 분들이 그러데요. 차라리 안 만났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만난 뒤에 가슴 속에 묻어둔 보물 단지 하나가 산산이 부서진 느낌이라고.
조금은 이해되는 말입니다.
지금은 마음에 굳은살이 박여서 어떤 감정에도 무감각해져 지내는 우리지만 한 때는 풋풋했던 감정의 소용돌이에 밤잠을 못 이루던 때가 분명 있었습니다. 전화벨만 울려도 그 사람인가 가슴이 뛰고, 비슷한 뒷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울렁거리던 그 시절 말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내리는 비를 보면서 그렇게 가슴 뛰던 시절의 제가 무척이나 그리웠습니다. 지금처럼 세속에 물들어 있는 저 말고요. 지금처럼 앞머리가 다 빠질 정도로 온갖 잔머리로 무장되어 있는 저 말고요.
그 때는 무척이나 순수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의 모습과 비교하면 때가 끼어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이 안타깝고 슬퍼지기까지 합니다. 마음에 때가 끼어 있다는 것은 마음이 탁해졌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의 탁한 것에 물들다 보면 지난날의 소중했던 기억들이 서서히 바래지고, 지키고 간직해야 할 삶의 원칙들을 잊게 되기도 하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는 날도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나이나 먹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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