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齋晩筆](34-N) 병상일기(病床日記)

by 南齋 posted Jul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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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齋晩筆](34-N) 병상일기(病床日記)

                                                                         심  영  보

 

 

(1)건강(健康)에 방심하다가 경고장(警告狀)을 받다.

 

 

올 정월중순이다. 어느 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오른쪽 손이 몹시 저리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른 팔을 깔고 잔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잠시 기다렸지만 평소 때처럼 가시지 않아 다시 더 살펴보았다. 그제야 오른쪽 팔다리와 얼굴 반쪽의 피부감각도 조금 둔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다행하게도 그쪽 팔다리를 움직이거나 쓰는 데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고 의식이나 언어구사도 멀쩡했다.

 

 

이렇게 시작한 나의 발병은 이어진 응급 () 영상촬영(MRI+MRA)’과 대학병원 신경과 6일간 입원진료를 거치면서 내가 어쩌면 즉사(卽死)하거나 반신불수(半身不隨)가 될 수도 있었을’ <뇌혈관사고(CVA)> “뇌졸중(腦卒中, Stroke)”을 당한 것이었고, 다만 천만다행하게도 좌측 시상부(左側 視床部, Lt.Thalamus) 감각신경이 몰려 있는 곳의 미세혈관(微細血管)에 경색(梗塞, infarction)이 온 것이어서 다소 경미한 후유증(오른 손의 저림 현상)만 남긴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경험은 내가 22년 전에도 한 번 뇌혈관의 일과성 허혈증상(一過性 虛血症狀,TIA)’을 겪었고, 근년의 3~4년간에도 해마다 한두 차례씩 어지럼증(현기증,眩氣症)’을 하루나 이틀씩 앓았던 사실을 되돌아보게 하면서 이번의 사고가 결코 최초의 발병이 아님을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이렇듯 건강에 방심해 온 나에게 이 정도의 엄중한 경고장(警告狀)’으로 그친 너그러운 징벌(懲罰)’은 오롯이 ()의 가호(加護)와 배려(配慮)”란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하였다.

 

 

(2)비로소 사전(死前) 준비(準備)가 미흡함을 깨닫다.

 

 

80평생에 단 한 번도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생애 최초의 병상경험 이었다. 이 경험으로 지난날에 겪은 일과성 증상들이 모두 이번에 찍은 뇌촬영 영상자료에 고스란히 증거로서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 나이가 이미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수명도 훨씬 넘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 하였다.

매우 충격적인 각성(覺醒) 이었다. 그것은 당연히 내가 지금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덤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생명이 끝나거나 사물을 판단할 능력을 잃었을 때를 상정한 준비에는 매우 소홀했음을 깨닫게 한 것이다.

 

 

곰곰이 돌이켜 보니 사전의료의향서(事前醫療意向書)’(공적서식)는 이미 작성해서 관계기관에 등록도 하고 개인적으로 보충한 나 자신만의 사전의료의향서는 소속 홈피에 공개도 해 놓았지만, ‘사전장례의향서(事前葬禮意向書)’만 해도 일부 사항을 가족에게 공개 언급만 해놓은 채로 문서화도 아직 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유언서(遺言書)’ 작성도 성년후견인(成年後見人)’ 지정도 그것이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착수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또한 생명력이 다하기 전에 정리해 두어야 할 일들, 예컨대 자서전(自敍傳)이나 작품집(作品集) 등을 만들 것인가 말 것인가도 정하지 못한 형편이다. 이렇게 거론한 것 말고도 더 살펴보면 아마 빠진 것들이 더 있을 것이다.

 

 

설사 남은 날들이 넉넉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이런 일들은 자신의 판단력이 흐려지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사항들이고 결코 미뤄서는 안 될 일인데 말이다.

 

 

(3)하늘이 내린 계시(啓示)가 이어졌다.

 

 

생전 처음으로 겪어보는 병상생활은 매우 지루하고 답답한 것이었다. 어디가 심히 아픈 것도 아닌데 몸 여기저기에 진료관련 기구와 줄들이 매달려 있어 운신이 불편한 채로 누어있으니 깨어 있다가도 잠들고 잠들었다가도 깨어나는 등 몽매지간(夢寐之間)을 헤매기 일 수였다.

나는 이 어간에 누구로 부터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계시(啓示) ()을 들었다.

 

 

   “성한 모습으로 살아 있을 수 있는 날들은 결코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만 할 때에 미리 준비해 두어야할 사항들을 서둘러 마무리 해 놓으라. 그리고

   내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동안에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베풀라’ ” ...

 

 

절대자(絶對者)가 내린 너그러운 징벌의 참뜻이라고 판단했다.    . (‘20.2.27.)

 

*참고:남산 정상에서 바라 본 서울 도심의 풍경('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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