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버스 안에는 승객이 몇 사람 없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이 반백이 훨씬 넘게
흰 파마끼가 없이 좀 긴듯한 머리를 제비꼬리 모양 고무줄로 질끈 동여매고
등어리에는 세 살은 됨직한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좀 구분이 안가는 눈이
큰 어린아이를 끈이 달린 간단한 누비 포대기에 둘러 업고 있었다.
게다가 양손에는 무언가가 가득히 담긴 흰색 비닐 봉지를 들고 힘겹게 버스에
올라 타서는 얼른 빈자리에 가서 앉더니 아이를 내려 무릎에 안고는 정답게 눈을
맞추며 얼르기 시작하였다.
언듯 보기에도 고단한 삶을 사는 노인 같아 보였다.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시월 초순의 따끈한 햇살이 눈이 부시기도 하고
혹시 주워온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좀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호기심도 생겨서
그 녀의 뒤 빈자리에 옮겨 앉았다.
한참을 그들의 하는 양을 물그러미 쳐다보던 나는 차바닥에 늘어져 있는 띠를
거두어 올려 주면서
` 힘 들지 않으세요?` 하고 물었다.
그러지 않아도 나이를 먹고 보니 한일이 없어도 힘도 들고 무기력해 하던 나는
어찌 저런 사람이 다 있나 싶어 재차 물었다.
` 연세는 어떻게 되셨어요? `
` 나는 예슨여덟인데요, 괜찮아요. 이차를 타려고 얼마나 뛰어와서 탔는지 몰라요`
`그 연세에 손주만 업어도 힘이 들텐데, 짐까지 두 손에 들고 원.....`
` 내 등어리가 한 십 오년은 빌 틈이 없었어요, 내가 업어 키운 외손녀가 지금
고등학교 일 학년이라우, 얘는 친 손녀인데 얘 어멈이 맞벌이를 하니 안 봐 줄수가
없어요. 며느리가 오년만에 또 낳은 아이 이거든요.`
`그러면 용돈이라도 좀 주나요 ?`
요사히 풍조가 늙은 부모를 싫것 부려 먹고도 나 몰라라 하는 일도 종종 있다고
들은 터라 혹시 그런 억울한 노친네는 아닌가 싶은 노파심에서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럼요, 저 (며누리)의 시아버지가 지금 일흔 여섯이 되셨는데 중풍으로
누운지가 육년이 넘었어요. 그 병원비랑 생활비를 몽땅 대지요.``
자랑스러운 듯 그녀는 말했다.
`그러면 안봐 줄수 없겠군요.`
`그래도 이렇게 아이를 업고도 막 뛰어 다닐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나는 의아했다. 도대체 무엇이 행복하담.? 저렇게 힘이 들면서....
` 영감님이 꼼짝을 못하고 누워 있어서 온갖 것을 받아 내야되니 냄새 나는 일거리며
짜증나는 일도 많지만 이 어린 손녀를 드려다 보고 있노라면 시름이 전부 사그러져요.
그래서 이 아이를 키워야 되는 거에요.`
자문 자답하듯이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연신 아이에게 먹을 것을 먹이며 어르던 그녀가 아이를 다시 들쳐업고 거너편 걸상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비닐 봉투....
(버스가 빨리 달리고 있어서 나는 집어주고 싶어도 미끄러져 넘어 질까봐 엄두가
안나서 보고만 있던) 그 보따리를 잽싸게 챙겨들고 버스를 내린 뒤 다시 아이를
추켜 업고는 잽싼 걸음 걸이로 보드불럭이 깔린 길 위를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 하지말고 조심하세요. 노인과 가을날씨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을
해 오듯이, 아무도 앞 일은 예측 할수가 없으니까.) 라고 마음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마다 행복의 척도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오늘 깨달았다.
`그 녀는 그 나름대로 그 속에서도 행복해 하니까 그런 축복이 어디에 또 있을까....`
라고 나는 마음이 좀 편해져서 혼자 중얼거렸다.
2000년 10월 2일 씀.
(作者 注)
이 글을 쓸 시절다는 너무나 사회상이 많이 변해 있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헌신적으로 손주를 보아줄 할머니가 계실는지...
지금 처럼 버스카드를 썼으면은 아기를 업고
버스 타기는 더 힘이 들었겠지요.
그때는 버스에는 에어콘이 안 나왔지요.